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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마이클, 시대를 풍미한 섹시 아이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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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인하고 야속한 2016년의 끝자락에 또 한 명의 뮤지션이 우리 곁을 떠났다. 향년 53세. 조지 마이클은 '공인' 천재 작곡가인 동시에 흑인감성을 품은 빼어난 가수로서 인기차트와 시장에서 독보적인 인기를 누린 팝 스타였으며, 시대를 풍미한 섹시 아이콘이었다. 그가 남긴 멜로디 명작과 보컬 수작은 많다. 이즘이 선정한 스무 곡으로 그의 음악세계를 개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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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ke me up before you go-go
(1984, <Make It Big>수록)

 

소녀의 마음을 제일 먼저 훔친 건 MTV 영상 속 듀오 왬!(Wham!)의 멋진 외모였다. (짧은 반바지와 손가락 뚫린 노란 장갑이 상징이었다.) 둘째로는 부정할 수 없는 리듬과 멜로디. '웨이크 미 업! 비포 유 고고!' 흑인 소울을 발랄한 선율로 터트린 이 곡은 영국과 빌보드 정상을 단숨에 점령했다. 조지 마이클과 대중의 첫 접선! 이 곡의 빅히트 충격은 음악적 견해 차이로 쪼개져 활동하던 두란 두란(Duran Duran)의 재결합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노래는 가볍고 신나는 목적으로 만들어졌지만 순수하리만큼 열정적이었던 1980년대 댄스 팝의 특징을 간직한다. 시원하게 미끄러지는 보컬과 쨍하게 울려 퍼지는 색소폰은 12월이 되면 더욱 반짝이는 서구 코믹 영화들과 닮았다. 그곳이 댄스홀이든 라디오만 덩그러니 놓인 방이든 이 곡을 틀면 행복으로 가득 채워졌다. 왬!은 찬란했던 팝의 황금기를 기억하게 해주는 소중한 듀오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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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reless Whisper
(1984, <Make It Big>수록)

 

'Wake me up before you go-go'에 이은 두 번째 넘버 원 싱글이자 월드와이드 히트곡. 재즈 컬러가 짙게 들어간 왬!의 대표적인 블루 아이드 소울, 소프트 록 넘버로 널리 사랑 받았다. 왬! 시절의 곡이지만 조지 마이클 이름으로 발표(Wham! featuring George Michael)되어 그가 언젠가 필시 솔로로 활동할 것임을 미리부터 암시했다.

 

그루비한 리듬 기타와 부드러운 팝 선율, 공간감 있는 드럼 비트, 깔끔한 사운드 마감 등 매력적인 요소들로 세련미를 자랑한다. 그 가운데서도 곡의 상징, 그룹의 상징, 아티스트의 상징이 되어버린 그 유명한 도입부의 재지한 색소폰 라인은 단연 이 싱글의 백미. 이 인상적인 연주만으로도 곡은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꾸준히 조명되어 왔다. 'Last Christmas'와 더불어 조지 마이클을 떠올리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노래.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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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thing she wants
(1984, <Make It Big>수록)

 

앨범에 수록 된 다른 빌보드 넘버원 곡들에 비해('Wake me up before you go-go', 'Careless whisper') 'Everything she wants'는 상대적으로 한국에 덜 알려진 곡이다. 그럼에도 곡에는 왬! 활동 당시 조지마이클이 선보인 지극히 그다운 사운드로 가득 차 있다. 뽕뽕거리는 신시사이저와 합을 맞춘 통통거리는 베이스라인. 경쾌하게 귓전을 때리는 타악기가 빚어내는 그루브와 비성과 미성을 매력적이게 오가는 보컬라인까지! 원조 아이돌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가사에는 가난한 소년의 구구절절한 사랑이야기가 가득 차 있다.

 

절정의 인기를 안겨준 앨범엔 1980년대 당시의 모든 사조가 담겼다. 그건 뉴웨이브에 따른 신시사이저의 적극 활용이었으며 MTV 등장에 따른 '보이는 음악'의 태동이었다. 말할 필요 없이 그 중심엔 왬!의 핵이자 얼마 전 마지막 크리스마스를 즐기고 떠난 조지 마이클이 있었다. 시대의 상징적 존재가 되어 누군가의 청춘을 빛나게 한 그는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그를 통해 우리의 삶은 '언제나 크리스마스'('Lasting' Christmas)처럼 즐겁고 달콤하게 지속될 것이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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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Christmas
(1986,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 수록)

 

그가 12월 25일에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앞으로 이 곡의 'Last'는 '지난'이 아닌 '마지막'의 의미로 불리게 될 것이다. 솔로 활동 이전 앤드류 리즐리와 함께 왬!의 이름으로 발표한 싱글로,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빌보드의 홀리데이 차트 상위권에 머물러 있는 노래다. 국내 인기도 꾸준히 높아 연령대가 낮은 이들에게도 친숙하다. 종소리를 닮은 신시사이저 멜로디가 은은하게 울리고, 리듬은 잔잔한 듯 경쾌하다. 여기에 조지 마이클 특유의 깨끗한 음성을 더했다.

 

영화 <러브스토리>(1970)처럼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도 하얀 눈밭과 따뜻한 눈빛의 연인이 등장한다. 1980년대 특유의 풍성한 웨이브 머리를 한 왬!의 멤버 두 사람을 만나볼 수 있다. 이제는 마이클이 세상을 떠났기에, 북적거리는 파티 장면조차 왠지 섭섭하다. 소녀의 마지막 순간에 어스름히 타오르던 성냥 불빛, 루벤스의 성화(聖?) 아래 잠든 소년, 그리고 그의 다정한 개. 동화 속 기일이 같은 이들에게 노래를 부쳐본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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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your man
(1986,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수록)

 

빌보드 3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음반 안에서도 특유의 유쾌한 에너지로 독보적 위치를 점하는 곡이다. 가사는 직설적이고, 보컬과 연주는 절제하지 않는다. 악기들이 시종 댄서블한 리듬으로 얽히는 가운데 색소폰과 베이스 솔로가 다채로움을 더한다. 'I don't need you to care, I don't need you to understand(난 네가 신경 쓰든 말든, 이해하든 말든 상관없어)'라며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작업'은 조지 마이클의 노련한 보컬로 멋지게 포장된다. 사실 더 따질 것 없이, 일단 '신난다'. 이 곡을 온전히 즐기는 데에 복잡한 고민은 필요치 않다.

 

이러한 직관적 정서표현은 당시 젊은이들의 취향을 '저격'했고 팀으로 하여금 숱한 팬들을 거느리게 했으나, 동시에 그에게 더 진중하고 성숙한 음악에의 갈증을 부추기기도 했다. 그룹의 정체성이 도리어 그가 솔로작업에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단초가 된 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왬!이 지녔던 쿨함, 트렌디함이 퇴색되는 것은 아니다. 곡의 뮤직비디오에서 그려지는 모두가 즐거움에 취한 댄스 플로어, 그 앞에서 함께 흥분한 채 노래하는 플레이보이 두 명은 분명 시대가 사랑했던 팝 스타의 모습 그대로이기에. (조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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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different corner
(1986, <Music From The Edge Of Heaven> 수록)

 

조지 마이클이 19살 때 작곡한 'A different corner'는 성숙한 고품격 발라드다. 미세하게 떨리는 심장박동 같은 건반, 호숫가에 드리워진 수줍은 새벽안개처럼 신비로운 신시사이저, 그 정적인 분위기에 악센트를 주는 동적인 어쿠스틱 기타, 그 위에 자연스럽게 감정 곡선을 타는 조지 마이클의 보컬은 'A different corner'를 티끌 하나 없는 순백처럼 아름다운 노래로 승격시켰다.

 

1986년에 영국 차트 1위와 빌보드 싱글차트 7위를 기록한 'A different corner'는 조지 마이클이 작사, 작곡, 편곡, 연주, 프로듀싱까지 매만진 그의 첫 번째 솔로 히트곡이다. 이 노래를 들은 조지 마이클의 오랜 친구는 '불쌍하고 청승맞지만 아름다운 곡'이라고 말했다. 정확한 평가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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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Knew you were waiting(for me)
(1986, 아레사 프랭클린의 <Aretha>수록)

 

작곡과 보컬에서 기세등등했던 1987년 조지 마이클은 평생의 우상과 노래호흡을 맞추고 싶었다. 듀엣 파트너는 영원한 '소울의 여왕'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 무거워도 너무 무거운 존재였다. 아무리 차트를 누비는 핫 스타라고 해도 저 한없이 높은 체급의 레전드와 묶이는 것은 저울추가 기운 배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으며 누가 봐도 무모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조지 마이클의 자연스럽고 굽이치는 보이스는 조금도 여왕에게 밀리지 않았으며 솔직히 비등했다. 청출어람이란 표현도 과언이 아니었다.

 

조지 가창력의 개가였으며 노래에만 에너지를 집중하려 했던지 드물게 그답지 않게 남이 쓴 곡을 노래했다. 작곡자는 80년대 영국의 신스팝 듀오 '클라이미 피셔' 출신으로 2006년 이래 에릭 클랩튼 앨범의 프로듀서로 활동 중인 바로 그 사이먼 클라이미(Simon Climie)다. 나중 왬!의 라이벌이었던 펫 샵 보이즈도 이 신구 콜라보 전략에 뒤질세라 영국 소울의 전설 더스티 스피링필드를 섭외했다. 이 곡으로 조지 마이클은 굳혔다. 아이돌을 뛰어넘는 뮤지션쉽과 존재감을, 그리고 '곡 잘 쓰고 노래도 잘하는 음악천재'의 위상을!!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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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your sex
(1987, <Faith> 수록)

 

제목부터 도발적인 이 노래로 조지 마이클은 솔로 활동을 시작한다. 들썩이는 리듬과 브라스의 그루브가 주는 음악적 흡입력으로 곡은 BBC의 방송 금지 처분을 비웃기라도 하듯 차트 상위권을 석권했다. 그는 원래 이 곡을 '리듬'이라는 기준으로 여러 파트로 나누어 발표했는데, 솔로 데뷔앨범 <Faith>에는 'Rhythm one: lust'와 'Rhythm two: brass in love'를 한 곡으로 믹스해 수록했다. 9분에 이르는 긴 러닝타임이 전혀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리듬감으로 그의 음악적 재능이 보컬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음을 증명하는 댄스 명작. 영화 <버버리 힐즈 캅 2>의 사운드트랙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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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th
(1987, <Faith>수록)

 

왬! 해체 이후 솔로로 전향한 조지 마이클. 그를 단번에 전 세계적인 팝 스타로 발돋움하게 해준 슈퍼 싱글이다. 통산 2000만 장을 팔아치운 동명 앨범 <Faith>의 타이틀곡으로 사랑에 대한 신념을 쉬우면서도 중독성 있는 멜로디로 전달한다. 마초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곡 소구력은 10대 아이돌과도 같았던 왬! 때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20-30대 성인 대상의 싱어송라이터로 거듭나게 만들었다.

 

전초 왬!의 'Freedom' 일부를 오르간으로 인용하여 듀엣 시절 향취를 불러일으킨 그는, 분위기를 차근히 고조시키는 펑키(funky)한 리듬 아래 개구진 보컬로 그루브를 속삭인다. 단연 돋보이는 캐치포인트는 간주에 등장하는 스트링 연주와 스캣. 곡의 대중친화적인 속성에 더해진 컨트리 사운드 탓인지 1988년도 빌보드 싱글 차트를 석권하며 미국 시장을 점령하기에 이른다. 뮤직비디오에서의 카우보이 복장도 메가 히트에 한몫했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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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more try
(1987, <Faith>수록)

 

짧지만 화려했던 왬! 이후 홀로서기에 나선 조지 마이클의 기세는 거침이 없었다. 여기엔 화려한 외적 요소도 큰 몫을 했지만, 무엇보다 폭발적 센세이션의 근간은 음악적 완성도였다. 단단한 미성의 블루 아이드 소울, 직접 써 내려간 매끈한 선율은 강렬한 장악력을 행사했다. 그중에서도 최소한의 재료로 빼어난 가창을 부각한 'One more try'는 단연 조지 마이클 표 알앤비 발라드의 진수다.

 

먼저 목소리가 너무 근사했다. 노련하고 섬세한 강약 조절, 표현력이 소박한 음악을 풍성히 꾸몄다. 트레이드마크인 서정적 멜로디의 힘 역시 상당했다. 그 결과, 노래는 빌보드 종합 싱글 차트는 물론 알앤비 차트,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올킬'의 영예를 누렸다. 장르와 세대를 넘어선 진정한 대중스타로 지평을 끌어올렸다. 또한 디바인(Divine), 아이언 앤 와인(Iron & Wine), 머라이어 캐리 등 많은 가수들이 꾸준히 다시 부르며 곡의 가치를 증명했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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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her figure
(1987, <Faith>수록)

 

푸근한 온기를 뿜어내는 신시사이저의 운용이 어린 시절 작곡한 'A different corner'와 묘하게 닮아 있다. 그러나 더욱 자극적이고 도발적이다. 친근한 남동생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젖힌 그는 섹스 아이콘이란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해낸다. '너의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나 '널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싶어' 등, 조지 마이클식 작업용 가사는 이성에게 강력한 성적호감을 자극한다.

 

시종일관 꿈틀대는 그의 섹시함에 소울 풍의 코러스를 덧대어 풍성함을 더했다. 코러스의 명작이기도 하다. 'Faith', 'One more try'와 마찬가지로 빌보드 싱글 차트의 정상에 오른 곡은 후대 뮤지션들에게 음악적 영감과 재료가 되어 코러스 파트는 엘엘 쿨 제이(LL Cool J)의 'Father'로, 매끈한 질감의 사운드는 데스티니 차일드(Destiny's Child)의 'Winter Paradise'로 재탄생했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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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key
(1987, <Faith>수록)

 

음악은 경쾌하다. 그러나 화자의 사정은 반주와 사뭇 다르다. 제목으로 쓰였으며 가사에서 자주 나오는 원숭이는 마약을 가리킨다. 연인이 마약에 빠지면서 주인공은 그(녀)의 관심에서 밀려난 상태다. 주인공은 원숭이를 사랑하지 말고 자신을 선택하라며 하소연한다. 똥줄이 활활 탄다.

 

데뷔 앨범의 다섯 번째 싱글로 출시된 'Monkey'는 'Faith', 'Father figure', 'One more try'에 이어 앨범의 네 번째 빌보드 넘버원 싱글이 됐다. 댄스 팝과 록을 살며시 버무린 밝은 반주가 히트에 주효했다. 더불어 마약중독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연적으로 치환한 것도 곡을 대중에게 가볍게 다가갈 수 있도록 했다. 훌륭한 싱어송라이터의 남다른 표현 감각을 실감하게 된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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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ssing a fool
(1987, <Faith>수록)

 

그를 그저 그런 가벼운 팝 싱어로 치부해버리는 음악팬도 생각 외로 많다. 왬!으로 대표되는 이력 탓이다. 없기를 바라지만, 혹시라도 주변에 그와 같은 친구가 있다면 이 노래를 플레이해 들려주어라. 조지 마이클을 보다 성인 취향의 가수로 인정받게 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곡이기 때문이다. <Faith>가 전체적올 팝-록적인 성향을 가진 앨범이었기에, 재즈적 접근의 이 노래는 앨범 내에서도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이후 마이클 부블레(Michael Buble)가 이 곡을 리메이크한 것도 노래에 녹아든 스탠다드적인 매력을 캐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니 왬! 시절의 댄스 팝부터 솔로 시절의 어덜트 컨템포러리 넘버까지, 커리어를 쌓으며 자연스레 다양한 영역에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모두에 조지 마이클 만의 농밀함을 최대치로 담아냈다. 이 노래로 다시 한 번 느낀다. '그가 다재다능한 가수였음을, 무엇보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진성' 아티스트였다'는 것을!! 그에게 허락된 시간이 야속한 이유다. (여인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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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dom! '90
(1990,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수록)

 

곡 제목에 굳이 '90'으로 친절히 발표년도를 붙인 것은 왬! 시절의 곡 'Freedom'과 구별 짓기 위한 것이며 그것은 왬! 이미지와의 음악적 작별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실제로 왬! 때의 성공을 언급하면서 그것을 잊고 앞으로 자신을 새 사람으로 인식해달라는 당부를 담았다. '자유'라는 곡목에 레코드사에 짓눌린 과거의 노예가수에서 이제부터는 음악적 자유를 행사하겠다는 의지가 흐른다.

 

일반적인 남녀 간 사랑 얘기를 떠나 상기한 창작적 자유를 향해 속에 담아둔 진심을 드러낸 일종의 자아독립선언이다. 차후의 커밍아웃을 시사(示唆)하기도 한다. 음악적으로도 한 단계 점프했다. 베이스 중심에 메시지를 강조하려 보컬에 겹겹이 쌓은 딜레이, 돌림 노래 같은 레이어, 후렴의 합창 등 그의 재기를 맘껏 드러내며 싱어송라이터는 물론 '프로듀서'로도 크기를 키웠다. 조지 마이클의 팬들이 가장 음악적으로 자부심을 느끼는 곡 가운데 하나.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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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iting for that day
(1990,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수록)

 

유례없는 흥행을 기록한 <Faith>를 뒤로하고 3년 만에 새로 내놓은 앨범은 전작과 비교하여 상반된 분위기가 멋쩍은 탓인지 흥행에서는 다소 부진했다. 호평 일색에서도 판매량이 따라주지 않으니 소속 레이블과의 트러블은 당연한 절차였다. 한창 정력적인 모습을 보여줬어야 할 시기에 벌어진 내부 갈등은 결국 기나긴 휴식의 전주이자 향후 활동 방향의 전환점이 됐다.

 

'Waiting for that day'의 공동 작곡가에 조지 마이클을 포함하여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가 함께했다. 군데군데 밴 'You can't always get what you want'(롤링 스톤스)의 잔향은 유사한 코드 진행과 리듬 그리고 페이드 아웃으로 끝나는 부분에서 진하게 묻어난다. 청량한 목소리 가운데 서린 개인 성향은 가사 속 은유를 통해 일찍이 곳곳에 존재했다. 편견 없이 듣길 바랐던 곡들, 기다렸던 그 날을 올해 6월의 끝자락에서 맞이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노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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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aying for time
(1990,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수록)

 

<Faith>이후 거대해진 관심에 부응해 그는 뮤지션으로서의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하길 바랐다. 이런 목표 의식과 책임감 때문이었을까. 3년 만인 1990년 발표된 후속작은 더욱 진중한 분위기로 채색됐다. 'Praying for time'은 그가 야심 차게 내 놓은 <Listen Without Prejudice Vol. 1>의 첫 싱글이다. 조지 마이클은 이 곡에서 복잡미묘 혹은 이해타산 적인 인간 관계에 대해 강한 메시지를 설파했다.

 

나긋한 톤과 상반되게 그는 내적 선함과 달리 조건적이고 이기적인 인간의 형질, 여기에 미디어의 왜곡된 프레임으로 벌어진 세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절절히 노래한다. 그리고 이를 위한 인류의 노력과 지켜보는 초조함을 넘어 "지금이라도 주위를 둘러보라"는 심플한 메시지를 우리 앞에 내놓았다. 올곧은 뚝심이 소속사와의 프로모션 문제로 방향성을 잃은 것이 아쉽다. 특히 연작으로 출시 예정이던 < Vol. 2 >를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성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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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let the sun go down on me
(1991, <Duets> 수록, 엘튼 존 곡)

 

사실 이 곡을 세상에 선보인 이는 따로 있다. 바로 엘튼 존과 버니 토핀(Bernie Taupin), 환상적인 파트너십을 선보이며 1970년대 팝 신을 주름잡던 이들이다. 이 곡은 발매 당시인 1974년에도 미국 차트 2위를 석권하며 대중의 호응을 얻었다. 다시 급부상한건 순전 1991년 조지 마이클이란 이름을 통해서다. 당시 진행 중이던 라이브 투어 <Cover to Cover>에서 원작자 엘튼 존과 함께 불렀던 것이 큰 인기를 얻으면서 라이브 버전으로 발매된 것이다.

 

원곡을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한다. 기존의 음악적, 서정적 요소를 계승함과 동시에 자신의 매끈한 이미지를 녹여 존재감을 드러내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흡인력 있는 선율과 연인이 떠나가는 모습을 바라보며 내뱉는 “내게서 해가 지지 않게 해줘요”라는 애틋한 호소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맞물려 더욱 빠르게 스며든다. 음악적 우상인 엘튼 존을 향한 오마주가 아닌,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을 덧칠해 '또 다른 곡으로' 재탄생시킨 것 또한 천재성이다. (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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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 funky
(1992, <Red Hot Dance> 수록)

 

꽃미남 2인조 왬!의 해체 이후 섹스 심벌로서 성공적인 솔로 커리어를 쌓기 시작한 그는 소니와 계약해 <Red Hot Dance>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Red Hot Blue>에 이어 에이즈 환자를 위한 두 번째 자선 앨범을 통해 발표된 신곡 중 'Too funky'는 싱글 커트 되어 차트 10위권에 올라 앨범 홍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뉴 잭 스윙 비트에 맞춰 상대를 유혹하는 직설적인 가사는 그의 리비도를 여과 없이 표출한다. 관능적인 목소리로 “네 벗은 모습이 좋아”라고 속삭이며 여성 팬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조지 마이클이 커밍아웃을 하기 몇 년 전의 일. 스타카토로 연주되는 건반은 상대에게 다가갈수록 점점 좁혀지는 거리처럼 긴장감을 부여하고, 신음과 앤 밴크로프트(Anne Bancroft)의 대사는 그를 만인의 연인으로 만들기 충분했다. 가질 수 없는 '오빠'이기에 더욱 가슴에 남는, 그만의 섹스어필.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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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sus to a child
(1996, <Older>수록)

 

공백의 터널을 지나 새로운 둥지에서 발매한 <Older>의 수록곡 중 첫 번째로 공개된 싱글. 보사노바풍의 리듬을 띤 이 곡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가슴 절절한 사연처럼 들린다. 허나 당시만 해도 누구를 위한 노래인지 그 의견이 분분했었다. 애인을 남자인 예수에 비유한 부분이 의문을 야기했다. 그러던 1998년, 언론을 통해 동성애자임이 밝혀졌고 모호하기만 하던 이야기의 조각이 맞춰지게 됐다.

 

대상은 바로 브라질 출신의 남성 패션디자이너 안젤모 펠레파(Anselmo Feleppa)였다. 조지 마이클과 연인 관계였던 그는 에이즈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Jesus to a child'는 그를 위한 추모곡이었던 것. 가사에는 '예수가 아이에게 짓는 미소'같이 온화하고 따뜻한 존재였음이 묻어나고, 차분하게 퍼지는 감미로운 목소리가 노랫말에 무게를 더해준다. 성가 곡은 아니되 분위기는 지극히 '스피리추얼'하다. 정확히 20년이 지나 그는 펠레파 뒤를 따라갔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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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tlove
(1996, <Older>수록)

 

왬!과 성공 적인 솔로 활동 뒤, 6년 만에 나온 <Older>의 대표 싱글곡이다. 그는 1992년부터 활동을 중단해가며 소니(Sony)와의 긴 전쟁에 돌입하게 되는데, 치열한 전투 끝에 세상에 나온 앨범이라 더욱 의미가 깊다. 다소 밋밋한 결과물에 대중의 반응은 갈렸지만, 영국 잡지 <큐>는 “주류의 팝 음악에서 진실과 아름다움을 혼합시키는” 앨범이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1996년은 뮤직비디오가 한창 빛을 발하던 시기였다. 'MTV 비디오 뮤직 어워드' 올해의 관객상을 수상한 이 곡의 뮤직비디오는 당시에는 충격적이었을 가상현실과 성을 그렸다. 침대와 특수 의자를 중심으로 사랑의 행위들이 탐닉적으로 등장한다. 'Sony'를 겨냥하듯 중간에 나오는 'Fony'라는 글자는 진흙탕 싸움 끝에 획득한 전리품이기도 하다. 십대 소녀나 대중이 아닌 자신을 향해 노래를 시작한 그는 더욱 솔직하고 당당하게 'Love'를 속삭인다. 천진하게 느껴질 정도로 사랑과 섹스에 대한 집착과 몸부림. 그것이 조지 마이클의 삶, 그리고 노래의 전부였다. (김반야)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일렉트로닉 핫 듀오, 체인스모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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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부터 20년 이상 차트를 장악하고 있는 힙합과 달리, EDM의 흥행사는 길지 않다. 물론 뉴웨이브와 신스 팝, 유로 댄스 등 일렉트로닉을 함유한 댄스 팝은 이전에도 상당한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그러나 현시점의 EDM은 이들과 분명히 구별된다. DJ 문화에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클럽 재생에 특화된 음악. 앞선 일렉트로닉 팝과 목적성부터 그 궤를 달리하는 EDM은 2000년대 후반에 이르러 메인스트림에 떠올랐다. 데이비드 게타, 블랙 아이드 피스 등은 ‘밤의 문화’였던 EDM에 불을 붙인 주역이다.

 

그 이후는 잘 알려진 대로 EDM의 황금기다. 스웨디시 하우스 마피아(Swedish House Mafia), 하드웰(Hardwell), 알레소(Alesso) 등 실력과 개성을 갖춘 DJ들이 대거 등장, 시장의 부피를 빠르게 키웠다. 그중 스크릴렉스(Skrillex), 아비치(Avicii),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 제드(Zedd) 등은 남다른 팝 감각으로 적극적인 차트 공략에 나서기도 했다. 클럽에서 즐기던 마니아의 음악이 대형 페스티벌과 차트의 강자가 되기까지 걸린 시간은 10년 남짓. 그간 각양의 DJ들이 서로 다른 강점으로 신을 풍족하게 채웠으나, 오늘의 주인공인 이들처럼 시작부터 대놓고 인기 차트를 노린 DJ는 많지 않다. 물론 그 뜻을 관철시켜 실제로 차트를 정복한 사례는 더욱 드물다. 중독성 강한 선율과 후렴을 앞세워 현재 일렉트로닉 신은 물론 팝 전체를 통틀어 가장 뜨거운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DJ 듀오, 체인스모커스(The Chainsmokers)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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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류 태거트(왼쪽), 알렉스 폴(오른쪽)


2008년, 알렉스 폴(Alex Pall)과 레트 빅슬러(Rhett Bixler)의 의기투합으로 출발한 팀은 2012년이 되어서야 빅슬러의 탈퇴, 드류 태거트(Drew Taggart)의 합류로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대다수의 신인 DJ가 그렇듯, 이들 역시 음원 공유 사이트 사운드클라우드에 작업물을 올리며 내실을 다졌다.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던 듀오의 운명은 「#Selfie」 한 곡으로 뒤바뀐다. 2013년 12월, 사운드클라우드에 무료로 공개했던 노래는 한 달여 만에 하우스 뮤지션 스티브 아오키(Steve Aoki)의 딤 막 레코즈(Dim Mak Records)를 통해 정식 발매된다. 언뜻 운 좋은 무명 뮤지션의 일화처럼 들리기도 하나, 「#Selfie」 는 히트를 위한 치밀한 계산으로 탄생한 곡이다.

 

보편적인 EDM의 구조를 따르는 노래에는 당시의 사회, 문화적인 트렌드가 다량 녹아있다. 아이폰을 위시한 스마트폰의 폭발적 수요와 인스타그램, 스냅챗 등 사진을 공유하는 소셜 미디어의 유행은 ‘셀피(셀카)’와 ‘해시태그’ 문화를 낳았다. 뿐만 아니라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투브 등 스마트폰 기반의 플랫폼은 유행 형성의 방식과 소요 시간을 변화시켰다. 매우 강한 전파력을 바탕으로 언어의 특수성과 관계없는 보편적, 직관적 콘텐츠가 전 세계에 빠르게 퍼지기 시작한 것. 2011년 엘엠에프에이오(LMFAO)와 2012년 싸이의 「강남스타일」, 2013년 바우어(Baauer)의 「Harlem shake」 등이 그 예다.

 

「#Selfie」 는 이러한 유행의 콤비네이션이었다. 곡에는 선율이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단출한 비트와 전자음, 파티에 간 젊은 여성의 독백, ‘까까까’류 빌드업과 “셀카 한 장 찍자.”(Let me take a selfie)란 말과 함께 몰아치는 드롭이 전부다. 음악적으로는 멜버른 바운스의 전형인 셈. 그러나 노래는 인스타그램 필터를 고르는 모습 등 신세대의 라이프스타일을 포착한 내레이션과 해시태그(#Letmetakeaselfie)를 통해 응모 받은 사진으로 뮤직비디오를 제작하는 등 최신 트렌드를 영리하게 조합했다. 제2의 「Harlem shake」 를 꿈꿨다던 이들의 바람대로, 「#Selfie」 는 각국 차트 10위권에 안착하며 또 하나의 유행이 되었다.

 

트렌드에 편승한 전략, 얻어걸린 성공이란 비판도 팀의 순항을 막을 수 없었다. 「Kanye」 와 「Let you go」 두 장의 싱글 후 내놓은 「Roses」 가 또 한 번 차트를 강타했다. 눈에 띄는 것은 작법의 변화였다. 이전의 빠른 비트를 내려놓은 이들은 여성 보컬 로지스(Rozes)의 입을 빌려 잘 들리는 멜로디를 전개했다. 악기의 질감, 노래의 구성은 분명 최신 퓨처 베이스(Future bass)의 형색인 반면, 코드 진행은 1980년대의 신스 팝을 연상케 했다. 「#Selfie」 의 안일한 프로덕션과는 차원이 다른 고품질 일렉트로니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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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스믹스(Eurythmics)


여기서 잠시, 시계추를 1980년대로 돌려보자. 격동의 펑크(Punk), 포스트 펑크(Post punk) 시대 후 음악팬들을 맞이한 것은 뉴 웨이브(New wave)였다. 펑크의 이념은 견지하면서, 당시 상용화된 신시사이저를 음악의 주 재료로 활용한 ‘새로운 경향’은 시대정신과 접근법에 따라 뉴 로맨틱스, 신스 팝 등으로 나뉘었다. 디페시 모드(Depeche Mode), 아하(A-ha), 소프트 셀(Soft Cell), 유리스믹스(Eurythmics), 펫 샵 보이즈(Pet Shop Boys), 듀란 듀란(Duran Duran), 휴먼 리그(Human League), 컬처 클럽(Culture Club)... 당대를 수놓은 팀들은 최신 악기였던 신시사이저를 활용, 댄서블한 음악을 주조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무엇보다 이들의 강점은 멜로디에 있었다. 그중 유리스믹스, 펫 샵 보이즈 등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활용한 댄스 팝, 보컬 EDM의 조상 격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체인스모커스는 바로 이들의 특성에 맞닿아있다. 2000년대 후반 EDM의 황금기를 견인한 DJ들이 운집한 군중을 위한 음악을 지향했다면, 이들은 방 안에서 혼자 듣는 ‘감상용 EDM’의 지평을 끌어올렸다는 의의를 가진다. 매끄러운 멜로디 전개와 선명한 후렴, 듣기 편한 음역대 안에서 이루어지는 중독적 댄스 브레이크가 듀오의 주 무기. 물론 이 지점에서 캘빈 해리스, 아비치 등 앞선 DJ들의 공로가 적지 않으나, 체인스모커스는 속칭 ‘쌈마이’(혹은 ‘뽕’), 전문 용어로 ‘팝’과 작금의 EDM을 근사하게 결합시킨 대표 주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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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Roses」 와 첫 EP <Bouquet>로 강한 인상을 남긴 이들은 이듬해 마침내 자신들의 해를 만들었다. 신인 여가수 데이야(Daya)와 함께한 「Don’t let me down」 이 빌보드 싱글 차트 3위까지 오른 데 이어, 또 다른 신인 여가수 할시(Halsey)와의 합작 「Closer」 가 미국과 영국, 호주와 캐나다 등 10개국 이상에서 차트 정상을 차지한 것. 특히 「Closer」 는 12주 연속 빌보드 정상을 지키며 대세 자리를 굳혔다. 거부할 수 없는 캐치한 진행과 좋은 멜로디, 부담 없지만 허술하지 않은 사운드로 빚어낸 승리였다. 비록 「Closer」 가 더 프레이(The Fray)의 「Over my head (Cable car)」를 표절한 것으로 밝혀져 커리어의 오점이 되었지만, 노래가 팀을 인기 대열에 확실히 올려놓은 것만큼은 부정할 수 없다.

 

최고의 한 해를 보낸 이들 앞엔 여전히 청신호가 반짝인다. 후보에만 올라도 자랑거리가 된다는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신인상, 베스트 팝/듀오 퍼포먼스(「Closer」), 베스트 댄스 레코딩(「Don’t let me down」) 등 3개 부문 후보에 팀의 이름을 올렸다. 연타석 히트를 노린 새 싱글 「Paris」 는 발매 직후 실시간 판매 차트 정상에 등극했고, 미국과 영국을 포함한 주요 국가들 대부분에서 주간 순위 톱 10에 들었다. 이번에도 밀도 높은 비트 구성과 감수성을 자극하는 선율이 핵심이다. 전작의 성공 패턴을 무난하게 이어가는 EDM이지만, 아직까지 작법의 파괴력은 유효하다.

 

「#Selfie」 로 얕잡아 봤던 체인스모커스가 2년도 채 되기 전에 ‘냈다 하면 1위’가 되었다. 트렌드를 읽어내는 눈과 함께 음악적 내실 다지기에도 공을 들인 덕이다. 유독 일렉트로닉 계열에는 ‘명품’ 남성 듀오가 많았다. 「Video killed a radio star」 의 버글스(The Buggles)부터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 펫 샵 보이즈, 다프트 펑크(Daft Punk), 저스티스(Jus†ice) 등. 현재도 허츠(Hurts), 디스클로저(Disclosure), 나이프 파티(The Knife Party) 등이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불과 5년 전만 해도 EDM을 좋아하는 뉴욕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이들은, 어느새 일렉트로닉 듀오 계보에 도전하는 ‘핫 루키’로 성장했다. 과연 그 전통에 체인스모커스가 족적을 남길 수 있을까. 첫 정규 앨범 발매를 예고한 팀의 앞날에 대중의 관심이 쏠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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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민재(minjaej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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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차트, 문제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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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원 사이트가 바뀌었다. 정확히 말하면, 이들이 운영 중인 '실시간 차트'가 일대 변화를 맞이했다. 개편은 지난달 27일 0시부로 적용됐다. 음원 발매 직후 한 시간 단위로 집계, 발표하던 실시간 차트를 부분 수정, 오후 12시부터 6시 사이에 발표한 음원에 한해서만 실시간으로 집계하고 차트에 반영한다는 것이 그 골자다. 즉, 시스템 변경 후 자정에 발표된 음원은 13시간이 지난 후인 오후 1시에 실시간 차트에 진입할 수 있다. 물론, 기존에 출시된 음원과 오후 12시에서 6시 사이에 발매된 곡들은 계속해서 실시간 차트에 머물게 된다.

 

변혁의 시발점은 지난해 12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에 보낸 '건전한 음원 유통 질서 확립을 위한 협조 공문'이다. 0시 음원 발매가 차트를 교란시킬 수 있으니 집계 시간 조정 등 대책을 고려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 측은 음원 사업자 측에 자발적 개선안 강구를 요청했고, 여기에 대한 해법으로 실시간 차트 집계 방법의 변화가 도출된 것이다. 관련 보도가 나온 2월 15일 이후, 관계자는 물론 마니아와 대중 사이에서도 끝없이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이미 새로운 규정은 적용됐고 발매 시간대 또한 달라졌지만, 여전히 의견이 분분한 주요 쟁점들을 짚어본다.

 

◆ 실시간 차트, 무엇이 문제였나

 

문체부와 음원 사이트가 팔을 걷어붙인 근본 이유는 기존 실시간 차트가 팬덤에 의해 좌지우지됐기 때문이다. 자정에서 새벽 사이에 상대적으로 음원 사이트 이용자 수가 적다는 점을 이용, 거대 아이돌 팬덤이 자정에 발매된 음원을 조직적으로 대량 구매하고 반복 스트리밍 함으로써 차트를 일시에 점령했다는 것이 이들의 말이다. 이른바 불공정한 '줄 세우기'로 인한 기존 음원의 차트 아웃으로 음악 생태계가 파괴당했다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이참에 아예 실시간 차트를 없애자고 아우성이다. 일부 언론 보도, 칼럼은 이러한 현상이 한국만의 일이며, 실시간 차트를 운용 중인 국가 자체가 거의 없다고 꼬집기도 했다. 이는 명백한 거짓이다. 세계 최대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 스포티파이(Spotify)가 일간, 주간 차트만을 공개하고 있지만, 미국의 대표적 음원 판매처인 애플의 아이튠즈(iTunes)와 이들이 지난해 론칭한 스트리밍 서비스 애플뮤직은 실시간 차트를 두고 있다. 아이튠즈가 서비스되는 국가가 전 세계 150개국을 능가하는 만큼, 실시간 차트 역시 대부분의 국가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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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메인스트림 대형 가수의 컴백으로 일어나는 차트 줄 세우기가 정말 한국에만 있는 일일까. 이 역시 그렇지 않다. 2014년 10월에 발표된 테일러 스위프트의 5집 <1989>, 2015년 11월 아델의 3집 <25>, 2016년 4월 비욘세 6집 <Lemonade>등 역시 미국 아이튠즈 차트 줄 세우기를 달성했다. 탄탄한 팬 베이스와 고도의 대중성을 갖춘 스타라면 외국에서도 차트 점령은 당연한 결과다. 물론 다운로드 수요의 감소로 과거보다 적은 판매량으로도 아이튠즈 차트 등극이 가능해진 것은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대중 수요가 큰 스포티파이의 차트가 팬덤 수요만으로 동요하지 않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유독 한국에서 '줄 세우기'가 문제되는 이유는 현상의 지속성에 있다. 발매 직후의 차트 점령이 오래가지 않는 해외와 달리 한국의 '기현상'은 밤마다 재현된다. 이용자 수가 많은 아침에서 낮 시간대에는 힘을 발휘하지 못하다가, 일반 사용자가 빠진 밤에는 팬덤 간 전쟁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팬덤이 작은 주류 팝, 인디 가수의 노래는 차트를 이탈하게 되고, 혹여나 유달리 '화력'이 좋은 아이돌 음원이 오전까지 차트를 차지하고 있다면 차트의 다양성은 더욱 파괴되니 문제라고 여길 만하다. 언뜻 순위에 이성을 잃은 팬들의 무분별한 공격으로 음악계가 앓고 있는 것으로도 보인다.

 

이쯤에서 조금 달리 생각해보자. 차트에 조작을 가하는 것이 아닌 이상, 차트는 음악계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그것이 실시간 차트라면 더욱 그렇다. (지난 2013년과 2015년, 일부 기획사가 중국 등 어둠의 경로를 통해 집단으로 스트리밍을 하며 차트 왜곡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현재까지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으니 이에 대한 판단은 잠시 유보하기로 한다.) 차트에 다양한 음악이 공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선 그만큼 음악의 전반적 대중 수요 자체가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그 와중에 (특히 아이돌) 팬의 수요는 줄어들지 않으니 차트에서 아이돌이 부각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인기 드라마의 사운드트랙, 예능 프로그램 삽입곡이 높은 순위를 비교적 쉽게 점하는 것도, 음악 그 자체가 발휘하는 힘이 줄고 미디어의 영향력이 커졌음을 증명한다.

 

아이돌 팬덤은 왜 차트에 집착하나

 

이번 개혁은 아이돌 팬덤의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되었으니, 이들의 행동 배경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팬으로서 응원하는 가수의 좋은 기록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은 자연스럽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판매량을 높이기 위해 같은 음반을 여러 장 사고 콘서트 투어를 쫓아다니는 열성 팬은 대중음악의 역사와 늘 함께하지 않았던가. 문제는 유난히 심하게 경쟁을 부추기는 차트의 현 운영 방식에 있다. 단순히 차트 순위만을 공개하는 해외의 실시간 차트와 달리, 멜론과 지니 등 국내의 일부 음원 사이트는 차트의 자세한 집계 현황을 낱낱이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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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시장 점유율 50%가 넘는 독보적 업계 1위 멜론은 마치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듯 차트를 운영하고 있다. 차트 상위 3곡의 현재 차트 점유율과 그래프, 24시간 누적 이용자 수를 차트 상단에 위치시키고, '경합', '지붕킥' 등의 용어를 동원해 각축 상황을 노출하는 식이다. 특히 3곡의 5분 단위 스코어를 공개하며 다가오는 순위를 예측하는 시스템은 대놓고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거대 팬덤은 좋은 순위를 점하기 위해 이를 체크하고 조직적인 스트리밍, 다운로드 작전을 세우기도 한다. 음악으로 경마하느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이돌 팬덤에게 컴백은 기쁜 일인 동시에 스트레스로 작용한다. 신곡을 마음껏 즐길 틈도 없이 순위에 대한 집념이 올가미로 변한 탓이다. 현재 케이팝 시장의 주 소비층인 팬덤들 사이에는 이미 이처럼 과열된 경쟁 분위기가 만연하다. 음악 자체의 완성도는 뒤로 한 채, 지붕킥이 대단한 홍보 수단이 되고 줄 세우기 자체가 하나의 프로모션 아이템이 되고 있다. 케이팝의 부흥으로 음악 시장과 저변이 확대되는 동안, 정작 음악을 즐기는 음악팬은 크게 늘지 않았다. 과연 이러한 비정상적 상황을 시스템화 한 거대 자본, 기업을 두고 팬에게만 책임을 전가할 수 있을까. '아이돌 팬이 차트 망쳐놨다!'는 말은 '섀도복싱(shadow boxing)'인 셈이다.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나

 

고착된 비정상을 바로잡기 위해 손봐야 할 곳은 한두 개가 아니다.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것은 무분별한 경쟁을 부추기는 현 시스템이다. 5분 차트, '경합'과 '지붕킥' 등을 모두 철폐해야 한다. 실시간 차트를 운영하되 깔끔하게 순위만 공개하자는 것이다. 실시간 차트 자체가 문제 되지 않음은 해외 사례에서 엿볼 수 있다. 근본 원인은 경쟁심을 자극하는 '나쁜' 요소들이다. 팬이든 일반인이든, 편한 마음으로 음악 자체를 감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 힘을 실어야 할 곳은 또 있다. 종합 차트의 개발이다. 해외의 아이튠즈, 애플뮤직이 실시간 차트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를 주요 차트로 삼는 이는 많지 않다. 스포티파이의 일간 차트 역시 마찬가지다. 빌보드 핫 100 차트가 있기 때문이다. 오랜 역사를 거쳐 공정성을 기반으로 형성된 권위를 누구나 인정하고, 이 차트의 순위만이 유의미한 기록으로 남는다. 애당초 차트의 집계 기준이 다양해 팬덤의 움직임만으로 차트가 바뀌지 않으니, 불필요한 경쟁심이 생길 여지도 없다. 현재 국내에는 이를 표방한 가온 차트가 존재하나, 제대로 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시간과 자본이 소요된다 해도 음원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방송 에어플레이와 유튜브 조회 수 등 다양한 인기 지표를 반영하는 제대로 된 종합 차트를 만들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멜론 등 음원 사이트에 집중된 차트 파워를 줄이고 권위를 가져와야 하는 것이다. 현재 한국은 내세울 만한 공식 차트가 없어 음원 사이트의 차트를 대표 삼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다양한 음악의 공생과 대중의 청취 경험 확대를 위한 근본적 방안의 강구는 음악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오랜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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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지난달 27일을 기점으로 차트 체계는 바뀌었고, 러블리즈와 태연 등 이에 발맞춰 발매 시기를 조정한 사례도 나왔다. 분명 '줄 세우기' 막겠다고 내놓은 방안이었으나 태연의 차트 점령은 막지 못했다. 시행 1주일이 채 되지 않았다지만, 차트의 다양성이 전에 비해 비약적으로 회복되었나, 이 또한 아니다. 단순하게 실시간 차트 조금 손봐서 될 일이 아니다. 차트에서 다양한 음악을 접하지 못하고 있는 일반 소비자도, 이를 악물고 순위 높이기에 동조하던 아이돌 팬덤도, 그 팬덤마저 없으면 차트에 발도 못 붙이던 음악인도, 모두 시스템의 피해자다. 이제는 적소에 메스를 대야할 때다.


정민재(minjaej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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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과 피부색을 드러낸 마녀, 비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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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그래미는 비욘세에게 또 하나의 레몬을 내밀었다. 9개 후보 중에 주요 부문을 뺀 ‘베스트 어반 컨템퍼러리 앨범’과 ‘베스트 뮤직비디오’상은 마치 노골적으로 선사한 모멸처럼 보인다. 그래미가 외면했어도 ‘누가 세상을 이끄는가? (Who Run The World? (이는 비욘세의 노래 가사기도 하다))’ 라는 질문의 답은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팝의 아이콘 ‘비욘세’다. 지난 20년 동안 그가 보여준 음악의 진보성과 확고한 신념, 스케일이 다른 퍼포먼스는 그를 살아있는 전설, 팝의 역사로 추앙하게 만든다.

 

중세부터 마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힘있는 다수의 기준과 다른 신념을 내비치고, 약한 소수의 편에 서게 되면 반대편에서 돌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비욘세도 이를 피할 수는 없었다. ‘섹시함’과 ‘건강함’을 발산하던 디바는 어느새 ‘페미니즘’과 ‘피부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가 기존의 유통 체계와 발매 방식을 거부하자 시스템과 언론이 발톱을 세운다. 보수적인 메커니즘을 거부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다른 이름을 갖다붙여 낙인을 찍는다. 시대가 아무리 변했어도 이땅에선 여전히 마녀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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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power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는 흑인 음악의 미래를 제시하는 여성그룹으로 데뷔했다. TLC와의 차별점도 작곡과 프로듀싱 능력을 보여주며 아티스트로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선두에는 비욘세가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음반기획자 겸 매니저였던 아버지에 의해 엄격한 가수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아왔다. 그의 가창력은 과격한 댄스에도 흔들리지 않게 단련되었다. 음역과 음색도 단단하고 표현력도 풍부하다. 「Listen」이나 「47);>XO」에서 내지르는 비욘세 보컬은 고음보다 더 짜릿하다. 음악을 컨셉, 댄스, 의상, 영상 등 비주얼로 구현해내는 능력은 가히 최고다. 육감적인 몸매와 화려한 외모는 단번에 이목을 집중시키면서도 흐트러짐이 없다. 탄탄하고 역동적인 건강미는 누구도 함부로 넘지 못하는 카리스마를 만든다.

 

음악으로도 새로운 시도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어떤 장르에 귀속되는 일 없이, 그렇다고 어려운 장벽 없이 대중을 매혹시키는 팝 그 자체이다. 그 스스로도 “내 음악은 알앤비도 아니고 전형적인 팝도 아니며 록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섞은 모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왔다. 최근에 발매한 <Lemonade>의 경우 백인의 중심의 컨트리부터, 록, 힙합, 레게까지 그야말로 전 방위의 장르를 씹어먹는 위엄을 보여준다. 이런 진화가 그의 새앨범을 기대하고 열광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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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몸이 하나의 거대한 기업이다 보니 자기 중심의 주체적인 시장 접근을 모색하게 시작했다. 남편인 제이지(Jay Z)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타이달(Tidal)을 열면서 앨범을 이곳에 독점 제공했다. 이런 비욘세의 판매 전략은 음악씬의 관행에 변화를 부추겼다. ‘그래미의 결과는 심사위원단의 보복’이라는 말도 이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는 음반 제작사보다는 가수에게 더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데, 그래미의 심사위원단은 대부분 음반업계의 종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비욘세가 마케팅이나 매체의 입김이 닿지 않는 시스템 밖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별다른 홍보 없이 SNS로만 새앨범 소식을 올려도 하루 만에 40만 명이 다운을 받고, 「Formation」 에 언급된 레스토랑은 이미 인기가 폭발해버릴 정도다. 전주 40초만 듣고 넘겨버리는 시대에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컨셉 앨범을 내놓는다. 백그라운드 뮤직이 아닌 제대로 집중해서 듣고 보지 않으면 그 진가를 알아채기가 힘들다. 이는 음악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자, 시대를 역행하는 선전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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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the World (Girls)


그는 데스티니스 차일드때부터 여성에 대한 노래를 불러왔다. 「Independent woman Part. 1」에서는 외모의 해방을 주장했고, 「Single ladies」에서 여성의 당당함, 「Run the world (girls)」 는 우먼파워를 표방한다. 그는 스스로를 현대판 페미니스트(Modern-Day Feminist)라고 칭하며,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차임 포 체인지 (Chime For Change)’를 구찌와 공동으로 설립했다. 슈가 마마(Suga Mama)라는 여성으로만 구성된 투어 백밴드를 만들 정도로 여성에 대한 관심과 행동이 두드러진다.

 

재밌는 점은 그녀가 독보적인 ‘섹스 심볼’이라는 것이다. 성행위가 연상되는 몸짓과 몸매를 다 드러낸 패션은 "예쁜 건 상처를 주지. 그 고통을 없앨 수 있는 의사나 약은 없어. 그 고통은 마음속에 있어. 수술이 필요한 건 바로 영혼이야" (「Pretty hurts」 중에서)라는 가사와 어울리지 않아보인다. 육체의 미를 내세운 퍼포먼스와 기존의 페미니즘 사상은 물과 기름처럼 대비된다. 하지만 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너무나 이분법적인 기조기도 하다. 긴 머리에서 해방되는 것이 반드시 삭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 아니면 이것이라는 구도를 깨는 것. 이것이 비욘세가 페미니즘 앞에 ‘모던’을 붙이는 이유다. 「Partition」에서도 “남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섹스를 싫어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것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아주 흥분되고 본능적인 행위야”라며 편협한 생각들을 따끔하게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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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변화는 블루를 낳으면서 더욱 가속화된다. 「Blue (Feat. Blue Ivy) 」에서 그는 “가끔은 이 벽들이 내 위로 무너질 것 같지만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게 느껴져”라며 딸에게 속삭인다. 노래의 영상은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흑인의 소박한 일상들인데, 평온한 비욘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는 자식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마주한다. 사실 미국 대중에게 비욘세는 흑인으로 인지되지 않았다. 백인과 비슷한 외모는 한 때 흑인 청소년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게 만든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흑인 여성에 대한 관심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과 같은 뿌리를 가진 여성들에게도 눈길을 돌린다. 「Don’t hurt yourself」에서 인용된 “미국에서 가장 방치되어 있는 존재는 바로 흑인 여성들이다.” 라는 말콤 엑스의 연설은 자각에서 튀어나온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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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unk In Love


“넌 우리 아버지를 떠올리게끔 하는 마법을 부렸지.” (「Pray you catch me」의 내레이션 중에서)

아버지인 매튜 노울스(Matthew Knowles)는 비욘세에게 지대한 영향과 끔찍한 상처를 남겼다. 그녀를 교육하고 후원하며 스타로 만들었지만 잦은 외도로 가족에게 수난을 주었다. 잔인하게도 그의 남편 제이지도 비슷한 스캔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Lemonade>는 그런 고통을 승화시키는 경로를 노래한다. 직감, 부정, 분노, 무관심, 허무, 책임, 개심, 용서, 부활, 희망, 구원의 단계적 변화는 비욘세의 처절한 성찰이 서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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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사랑받는 세계문학전집에는 『여자의 일생』이라는 소설이 있다. 남성의 배신을 인내하고 그 속에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자의 이야기. 사실 수십 년 전만해도 이는 현모양처의 당연한 숙명이었다. 단장의 고통이지만 이를 떳떳하게 드러낼 수도 없었다. 그의 2008년작 「If I were a boy」에서 이런 남성 중심의 가치관은 그대로 쓰여있다. "내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할거야. 그리고 나만의 원칙을 세울 거고. 왜냐하면 그녀가 나에게만 충실할 것을 아니까. 집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하지만 그저 참고 견디기에는 사랑의 배신은 영혼을 매몰시킨다. 「Hold up」에서는 “너를 사랑하는 여자에게 어떻게 그렇게 못되게 굴수 있니? (중략) 질투하는 거와 미친 거 중에 뭐가 더 창피하니?”라고 읊조린다. 그리고 뮤직비디오에서는 야구 배트를 들고 거리를 쑥대밭을 만드는 모습이 그려진다. 사랑은 천하의 비욘세도 미치게 만든다.

 

"만약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그걸 레모네이드로 만들어내라."


그는 2006년 「Irreplaceable」에서부터 나쁜 남자에게 당당히 맞서라고 이야기 해왔다. 「Don`t hurt yourself」와 「6 Inch」를 통해 “나를 놓치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비욘세는 제이지를 떠나지 않았고 쌍둥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서도 용서와 화해를 선택한다. 역시 인간의 삶과 사랑은 게임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다만 확실한 건 우리가 시들 때까지 레몬은 계속 만들어진다는 것. 아픈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 수 있다. 눈물과 땀으로 만든 레몬에이드는 레몬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와 부딪힐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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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의 아버지’ 척 베리, 그의 남은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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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명의 전설이 떠났다. 록의 아버지 척 베리. 그 무게감과 영향력은 어떤 가수보다 육중하고 거대하지만 우리나라에서 그에 대한 평가와 대우는 안쓰러울 정도로 미약하고 척박하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서 마이클 J. 폭스가 'Johnny B Goode'을 불러도, 'Sweet little sixteen'을 재해석한 비치 보이스의 'Surfin' U.S.A.'가 매년 여름 울려 퍼져도, 김수철이 무대에서 기타를 연주하며 오리걸음 퍼포먼스를 재현해도 우리는 '위대한 로큰롤 작가' 척 베리에 대한 조명에 늘 인색했다. 아니, 이 모든 것이 척 베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는 것이 더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아티스트 척 베리는 단지 주름 많고 그리 볼품없는 아프로 아메리칸 뮤지션일지 모른다. “그와 그의 음악은 분리할 수 없다. 둘 다 전적으로 새로웠고 참으로 '미국적'이었다. 그렇게 척 베리는 우리나라와 대중음악의 역사를 바꿔놓았다.”는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진심 어린 헌사가 말해주듯 서구는 음악가든 일반 음악인구든 가릴 것 없이 모두 가벼이 여기기는커녕 총력으로 그를 숭배한다. 그 자체로 록 음악의 역사이자 선구자였던 척 베리가 2017년 3월 18일, 90세의 나이로 영원히 눈을 감았다.

 

척 베리는 음악으로 흑백의 화합을 실천했다. 대중음악의 역사에서 그가 영원히 기억될 가장 중요하고도 위대한 업적이다. 흑인음악과 백인음악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따로 놀던 195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흑인음악을 부르고 연주하는 백인은 있었지만 백인음악을 하는 흑인 뮤지션은 거의 없었다. 척 베리는 이 보이지 않는 금기를 깬 최초의 로큰롤 싱어송라이터다. 컨트리의 고전 'Ida red'를 기초로 해서 척 베리가 직접 만든 'Ida May'가 그 용기와 배짱의 실체다. 체스 레코드의 사장 레너드 체스가 'Ida May'를 듣고 20대 후반의 흑인이 어떻게 이런 컨트리풍의 노래를 만들고 불렀는지 놀랐다고 할 정도로 'Ida May'는 당시에는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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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Ida May'는 척 베리의 데뷔 싱글이자 첫 히트곡이 되는 'Maybellene'의 원형이다. 이후 발표한 'Johnny B goode'과 'Roll over Beethoven'의 기타 리프는 록의 형태를 확립한 연주로 격상되었고, 척 베리의 오리걸음이나 다리 하나를 들고 기타를 연주하는 쇼맨십은 리틀 리차드, 제리 리 루이스,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다른 가수들에게도 암암리에 영감을 주었다. 10대의 감성을 담은 세심하고 예리한 가사와, 독창적인 음악 그리고 독보적인 제스처는 '로큰롤다운 것'을 확립하는 데 결정적이었다.

 

흑인처럼 노래를 부른 엘비스 프레슬리도, 자신의 노래를 만들고 불렀던 버디 홀리도, 컨트리 노래를 리메이크해서 흑과 백의 조화를 이룬 레이 찰스도, 'Rock and roll music'을 커버한 영원한 1인자 비틀즈도 척 베리에겐 채무자가 아닐 수 없었다. 흑인의 블루스와 백인의 컨트리가 잉태한 로큰롤은 척 베리를 통해 거대한 '협치'의 장을 열었고 흑과 백의 진정한 문화적 대연정을 완수했다.

 

하지만 1959년에 14살짜리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사건이 불거지면서 1962년 2월부터 1963년 10월까지 18개월 동안 수감되는 바람에 음악적 영감은 타격을 입었고 자신의 음악에 영향을 받은 영국 뮤지션들의 대공세와 미성년자 성추행범이라는 주홍글씨는 척 베리의 음악 활동을 제약했다. 10여 년이 흐른 1972년에 알앤비 가수 데이브 바솔로뮤의 원곡 'My ding-a-ling'을 부른 라이브 버전이 싱글로 나와 빌보드 정상을 차지하면서 비로소 그동안 잊고 있었던 전설에 대한 예우가 드러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걸로 척 베리의 인기 퍼레이드는 종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아티스트도 척 베리의 영향권에서 벗어난 뮤지션은 없다. 존 레논은 “만약 로큰롤에 다른 이름을 붙인다면 그것은 '척 베리'일 것이다”라고 했고, 밥 딜런은 “척 베리는 로큰롤 음악계의 셰익스피어다”라고 칭송했으며 기타리스트 테드 뉴전트는 "척 베리를 모르면 기타를 연주할 수 없다"라고까지 언급했다. 위대한 로큰롤 작가가 세상을 떠난 직후 빌보드지는 '척 베리는 로큰롤을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로큰롤을 '세상을 변화시키는 태도'로 형체를 바꿔놓았다'라며 그의 업적을 명료하고 단호하게 정의했다. 2017년 3월 18일, 우리는 록의 대부를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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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베리(Chuck Berry)와 함께 '흑백의 화합물' 로큰롤은 웅비의 도약을 시작했다. 가수가 중심이던 1950년대에 그는 거의 모든 곡을 직접 쓰고 가사를 붙이고 노래하는, 위대한 로큰롤의 작가였다. 또한 그의 음악에는 굴레를 벗어나고자 하는 서구 베이비붐세대의 자유 정서와 재기 발랄한 호흡이 깔려있었다. 그가 나타나고서 로큰롤은 제대로 예술적 형체를 완성했다. 후대의 로큰롤 뮤지션들이 일제히 영향을 받고 그의 궤적에서 움직이는 것은 당연했다. 그는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음악으로 록을 인도한 일등공신, 메신저, 산파술사 그리고 대부이자 영웅이었다. 영원히 잊힐 수 없는 척 베리의 명곡 10곡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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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aybellene (1955)
밥 윌스의 컨트리 송(정확히 말하면 웨스턴 스윙)인 '아이다 레드'를 경쾌한 부기우기로 창의적 변형을 일궈낸 것부터가 경이와 충격을 불렀다. 여기서 체스 레코드 사장 레너드의 유명한 한마디가 나온다. “흑인 사내가 이 같은 컨트리 송을 쓰다니 믿을 수가 없다!” 그게 로큰롤이었다. 이 한방으로 로큰롤은 '컨트리'와 '리듬 앤 블루스' 즉 흑백의 결합 즉 회색임이 공표되었다. 차트 데뷔였음에도 빌보드 5위로 점프하면서 언더그라운드의 '신상' 로큰롤은 단박에 주류로 솟아오르게 된다. 블루스(컨트리지만 이 곡은 기본적으로 12마디 블루스)를 베이스에 담아낸 사운드도 귀를 잡아끌지만 <롤링스톤>은 '로큰롤 기타가 여기서 시작된다'고 정의했다. 척 베리는 록 역사의 중요한 기타리스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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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Roll over Beethoven (1956)
로큰롤은 미국, 구체적으로는 '너나 나나 다 같은' 미국의 대중을 대변하면서 성장했다. 성질상 당연히 유럽의 백인 귀족들이 듣는 '클래식'과는 대척점에 선다. 위대한 고전음악가 베토벤의 무덤 위를 구른다니 이것은 클래식에 대한 '꼬마'음악 로큰롤의 맹랑한 도전이다. 후대의 로큰롤 뮤지션들은 이 곡을 '로큰롤의 찬가'로 상승시켰다. 나중 대놓고 리메이크한 밴드 몇몇을 꼽자면 비틀스(1963, 미국 캐시 박스 차트 30위)와 제프 린의 그룹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1973년 영국 6위, 미국 42위)가 있다. “척 베리 곡을 커버하지 않으면 로큰롤의 정체성은 내걸지 못한다!”는 말은 허언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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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School day(Ring! ring! goes the bell!) (1957)
엘비스 프레슬리, 리틀 리처드, 제리 리 루이스 그리고 척 베리의 로큰롤은 나이 든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정적이고 축축한 1950년대의 습기를 걷어내며 홀연히 비상했다. 학교의 규율과 성적에 얽매여 숨 막힌 10대들에게 몸을 흔들게 하는 로큰롤은 자유를 향한 축복의 '해방구' 인 동시에 '구원' 아니었을까. 'School days'로도 통한 이 노래가 생생하게 증거한다. 빌보드 알앤비 차트 1위, 핫 100에서도 당당 3위에 올랐다. 갓 태어난 로큰롤은 이미 서구 중고교 키드들을 잠식했다. 누군가 그랬다. “학교와 감옥이 있는 한 로큰롤은 영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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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Rock and roll music (1957)
고인이 된 척 베리 헌정 특집을 게재하면서 빌보드가 “그는 로큰롤을 창조하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세상을 바꾸는 태도로 변환시켜 놓았다”라고 붙인 타이틀은 매우 적절하다. 분명 그가 로큰롤 시조 혹은 최초 시작자는 아니다. 하지만 후대 누구나 그를 로큰롤 대부와 비조로 칭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의 노래가 전미 차트에 오르면서 로큰롤의 실체가 알려졌고 더욱이 로큰롤의 '대표 송가'를 잇달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Roll over Beethoven', 'School days'도 그렇지만 'Rock and roll music'은 제목부터 명시적이다. 비틀스가 왜 이 곡을 리메이크했겠는가. 자신들이 로큰롤 밴드라는 거다. 존 레논의 명쾌한 한마디. “만약 로큰롤에 또 다른 이름을 붙이고 싶다면 아마도 척 베리라고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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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Sweet little sixteen (1958)
여름 그룹 비치 보이스의 브라이언 윌슨은 척 베리의 'Sweet little sixteen'에 다른 가사를 붙인 'Surfin' USA'를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저작권 개념이 흐릿했던 그때 애초엔 비치 보이스의 창작곡으로 알려졌다. 당연 척 베리 곡 출판업자의 압력에 직면했고 결국 저작권 전체를 넘겨야 했다. 'Surfin' USA'의 원곡이란 사실은 뭘 말하는가. 그만큼 춤을 자극할 만큼 곡이 신나게 잘 굴러간다는 것! ('Rock and roll music' 가사 “만약 나랑 춤추고 싶다면 로큰롤이어야 할 거야!” 그대로다) 이 곡에 대한 죄의식이 남았을까. 비치 보이스는 상당한 세월이 흘러 'Rock and roll music' 리메이크 버전을 내놓았고 5위까지 오르는 빅 히트로 다시금 자신들이 척 베리로 시작하는 록 계보에 속해있음을 공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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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Johnny B. Goode (1958)
척 베리 곡 가운데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높은 곡. 아마도 1985년의 유쾌한 SF 블록버스터 영화<백 투 더 퓨처>에 소개되어 대중의 뇌리에 깊이 저장된 덕분일 것이다. 1980년대 대중문화 소비자들은 이 순간으로 척 베리를 '30년 전의 로큰롤 개척자'로 재(再) 정의했다. 곡은 한마디로 '시골 소년 인간승리'. “엄마는 말하셨지. '언젠가 커서 넌 큰 밴드의 리더가 될 거야. 전국 각지에서 네가 연주하는 것을 들으려고 사람들이 몰려들 거야'라고” 나중 로큰롤을 하려는, 록밴드를 꿈꾸는 누가 이 노랫말에 현혹되지 않았겠는가. 거의 모든 록 밴드들이 이 주술에 홀려 그를 졸졸 따랐다. '하멜른의 파이드 파이퍼', '피리 부는 사나이'가 록에 있다면 그는 척 베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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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Back in the USA (1959)
척 베리는 침울하고 회의적인 미국 흑인의 이미지와 거리가 멀었다. 도리어 정반대 긍정과 낙천의 정서로 내달렸다. 심지어 뉴욕이나 LA의 백인이 불러야 할 것 같은 '미국 찬가'를 불렀다. 이 곡에 따르면 '미국은 원하는 모든 것을 얻고 모든 것이 옳은 곳'이란다. 국가를 찬양했다고 백인 사회에 대한 굴종으로 내리치기보다는 그들 식의 극복으로 유연하게 해석할 필요가 있다. 노래를 들어보면 안다. 사실 예부터 흑인들은 침통한 블루스를 해도 결코 낙관과 희망만은 버리지 않았다. 여기에 '아프로 아메리칸'의 위대성이 자리한다. 1978년 '미스 로큰롤 USA' 린다 론스태드(Linda Ronstadt)는 이 곡의 리메이크로 차트 16위라는 호응을 얻었다. 나중 1987년, 그는 척 베리의 회갑연 성격의 세인트루이스 공연 무대에 합류해 록의 어른을 경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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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Come on (1961)
척 베리의 거대한 존재감은 상기했듯 1960년대와 1970년대 뮤지션들의 잦은 헌정 커버가 첫 번째 증빙이다. 비틀스가 기량 향상과 단련을 위해 척 베리의 상당수 곡을 취했다면 라이벌 롤링 스톤스는 1963년 말, 아예 데뷔곡으로 척 베리의 'Come on'을 택했다. 영국 차트 21위에 오른 이 버전도 나쁘지 않지만 척 베리의 오리지널 자체가 워낙 수작이다. 후크, 코러스 활용은 물론 전체적 흐름도 견고하다. 그러나 빌보드 100위권 진입은 실패했다. 1959년 매춘금지법인 맨 법(Mann Act)을 위반한 혐의로 체포되어 2년간 옥살이를 하면서 이미지 추락과 차트 장악력 약화에 따른 결과였다. '풍운아' 시절은 마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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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You never can tell (1964)
1970년대에 빼어난 감식안을 자랑하던 <로스앤젤레스 헤랄드-이그재미너> 록 평론가 켄 터커는 록 25년 역사를 장식한 걸작 가운데 하나로 척 베리의 'You never can tell'을 꼽았다. 하긴 복역을 마치고 다시 나왔을 때 세상이 많이 달라졌다고 해도 그 실력이 어디 가겠는가(빌보드 14위). 수인 생활 중 썼다는 곡. 그런데 곡조와 메시지는 '룰루랄라 즐거운 인생'이니 이런 지독한(?) 아이러니가 없다. 부제가 'C'est la vie'(이게 인생이야!)다. 1977년 컨트리 차트를 장식한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는 이 부제를 내건, 케이준 피들 연주가 돋보이는 리메이크 버전을 발표해 찬사를 받았다. 1994년 쿠엔틴 타란티노의 문제작 <펄프 픽션>에서 존 트래볼타와 우마 서먼이 트위스트를 출 때 흘러나온 리듬이 바로 이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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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My ding-a-ring (1972)
대체 뭐에 대한 노래일까. 라이브로 녹음된 곡은 관객들이 키득키득 웃으며 따라 부를 만큼 '재미'가 느껴지는데 뭐가 그리 즐거운지는 노랫말을 경청하면 풀린다. 이중의 의미 함축(double entendre)이라지만 뜻 때문에 엇갈릴 리가 없다. 마스터베이션, 바로 외설이다. 그래서 당대 일각의 방송국들이 금지처분을 내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2주간 빌보드 1위를 점령했을 만큼 스매시 히트를 쳤다(척 베리의 유일한 넘버원 송). 성적 개방의 분위기가 넘쳐흐른, '더티가 아름다웠던' 1970년대라서 가능했을지 모른다. 이번 추모특집으로 척 베리 히트곡을 모은 빌보드는 이렇게 이 곡을 정리했다. “우리가 뭐라 하겠는가. 1970년대는 정말 기이한 시대였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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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킹 온 노벨스 도어, 밥 딜런의 베스트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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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노벨문학상 발표 이후, 밥 딜런에 대한 관심과 논쟁이 쏟아지고 있다. 노랫말이 문학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계속 되고 있지만, 그가 미친 영향력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1959년 이래로 밥 딜런이 써 내려간 문장들은 음악과 시대를 바꾸었다. 그는 음표에 사상과 철학을 부여한 최초의 인물이다.

 

사실 밥 딜런의 가사는 중의적이고 이해하기 힘든 문장이 많다. 괴팍하기로 소문난 그는 인터뷰에서도 모호하게 답해 사람들을 더욱 헷갈리게 만든다. 우리나라 말이 아니다 보니 오역의 가능성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의 노래와 기록들을 뒤져, 심드렁하고 무뚝뚝한 사내의 자취를 따라 가보려고 한다. 그의 뒤를 좇다 문득 뒤를 돌아보니 그가 남긴 발자국이 록이 걸어온 길과 크게 다르지 않다. 록의 궤적이 된 25곡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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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win' in the wind (1963)

 

밥 딜런의 시작이자 1960년대 베이비붐 세대가 품은 새로운 가치의 선언적 울림! 미국 민주주의 토대인 자유, 평등, 평화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밥 딜런의 모던 포크 출반선인 이 곡이 대변했다. 그게 반전(anti-war)과 인권(civil rights) 운동과 맞물리면서 밥 딜런은 단숨에 세대의식과 시대정신의 총아로 솟아올랐다. 지구촌 곳곳에 청년문화와 저항(protest)의 기수들이 속출했다.

 

브라질에는 카에타노 벨루주와 질베르토 질이, 쿠바에는 실비오 로드리게즈가, 세네갈에는 이스마엘 로가 출현했다. 빅토르 하라는 칠레의 딜런, 도노반은 영국의 딜런, 김민기는 한국의 딜런이었고 1990년대에 벡(Beck)은 최신판 딜런으로 분했다. 1999년 <디테일> 잡지의 표현에 따르면 '거대한 짐머만(딜런 본명)의 글로벌 저항 빌리지' 구축!

 

그들은 노랫말로 전에 한 번도 접하지 못해본 언어들이 경이롭게 전개, 배치된 것에 일제히 넋을 잃었고 “대중음악의 노랫말로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라는 집단 영감 세례를 받았다. 사랑과 이별이 전부이던 대중가요는 이후로 사회적, 사색적, 성찰적, 철학적 메시지로 심화를 거듭했다. 시대를 갈랐던 1970년대 초반 '영 포크', '청통맥' 등 '메이드 인 코리아 청년문화'의 출발 총성도 이곡이었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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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think twice, it's alright (1963)

 

1962년 녹음해서 이듬해 <The Freewheelin' Bob Dylan>에 실어 발표한 밥 딜런 초기 명곡 중 하나. 그 해,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and Mary) 커버 버전이 빌보드 싱글 차트 9위까지 올라 초기 유명세를 다지는데 이바지했고, 우리나라에서는 포크가수 양병집이 창의적인 가사의 '역(逆)'으로 개사한 버전을 다시 김광석이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로 제목만 바꿔 발표해 인기를 끌었다.

 

음악의 역사와 그 선상의 진화 과정이 잘 드러난다. 미국 전통 민요 「Who's gonna buy you chickens when i'm gone」의 멜로디를 포크 가수 폴 클레이튼(Paul Clayton)이 1960년 차용했고, 그 선율과 가사 일부가 밥 딜런에게 옮겨가 영감이 되었다. 딜런 자신이 핑거스타일로 주조해낸 찬찬히 흘러가는 기타 리듬 또한 하나의 고전으로 남아 수많은 리메이크 버전을 탄생시켰다.'괜찮으니, 두 번씩이나 고민하지마'라는 가사로 1960년 그 시절뿐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도 숨고를 시간을 부여하는 아름다운 곡.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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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imes they are a-changin' (1964)

1960년대에 들어서며 미국의 청년들은 변화를 꿈꿨다. 희망과 달리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흑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는 계속됐고 베트남 전쟁의 공포는 점점 현실로 다가왔다. 설상가상, 패기에 찬 젊은 리더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암살됐다. 답답한 실상을 견디다 못해 여기저기서 자유와 평등, 평화를 향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격동의 한가운데에 이 노래가 있었다.

 

'지금 정상에 선 자들은 훗날 끝자락이 되리라.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노래 제목 중 '변화(changin')'에 고전적 강조법인 'a-'를 붙인 것만으로도 이 곡이 지향하는 바를 알 수 있다. 딜런은 간단명료한 구절들로 명징한 메시지를 제시하는 대곡(大曲)을 원했다. 창작 의도는 시대 상황과 적확히 들어맞았다. 그는 시종 매서운 어조로 '바뀌어야 함'을 역설한다. 사람들, 작가와 비평가들, 국회의원과 정치인들, 세상 모든 부모들, 지금 정상에 선 자들이 모두 경고의 대상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기 때문에 흐름에 발맞추지 않는다면 이내 가라앉고 패자가 될 것임을 일갈한다.

 

가려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낸 노래는 당대 쇄신의 찬가(anthem)가 되었다. 노래는 「Blowin' in the wind」 등과 함께 전 세계 대중음악의 가사 풍토를 바꿔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다른 명곡들처럼 이 노래 역시 수많은 후배 가수들에 의해 재해석 되었다. 피터, 폴 앤 매리(Peter, Paul and Mary), 사이먼 앤 가펑클, 비치 보이스, 셰어(Cher) 등 그 이름을 일일이 나열하기 벅찰 정도다. 여전히 대표적인 저항 송가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노래는 변화하는 시대에 가속 페달을 가한 역사적 유산이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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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terranean homesick blues (1965)

 

초기 포크(Folk) 진영에 자리 잡고 있던 딜런은 비틀스(Beatles)의 로큰롤 스타일에 영향을 받아 크나큰 스타일의 변혁을 가한다. 기존 포크송에 강렬한 일렉트로닉 기타 사운드를 가미한 싱글 곡 「Subterranean homesick blues」은 포크 록의 시작을 알렸다. 〈Bringing It All Back Home〉의 대표곡으로써 빌보드 차트 39위에 오르며 그에게 첫 대중적 히트를 안겨주었다.

 

노래는 여러 아티스트의 창작물로부터 영감을 받아 구성되었다. 우디 거스리(Woody Guthrie)와 피트 시거(Pete Seeger)의 「Taking it easy」 가사 일부분을 인용하고, 척 베리(Chuck Berry)의 「Too much monkey business」 멜로디와 스타일을 참조했으며, 소설 『The Subterraneans』에서 제목을 따왔다. 계급 갈등에 대한 은유와 사회 풍자, 희화화로 가득 채운 노랫말은 당시의 부조리를 공개 석상 위로 올린다.

 

투어 다큐멘터리 <Don't Look Back>의 오프닝 영상으로 쓰인 이 싱글의 뮤직비디오는 딜런이 직접 단어 카드를 넘기면서 키워드를 보여주는 내용으로 화제가 되어 많은 패러디를 생성시키기도 하였다. 의도적으로 틀리게 적은 스펠링과 의미에 따라 다르게 꾸민 캘리그래피(Calligraphy)는 가사의 위트를 더욱 맛깔나게 덧칠한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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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ke a rolling stone (1965)

 

'Rolling Stone'은 밴드명이나 잡지를 떠나 록의 가장 큰 상징물이다. 이 노래 덕분에 1965년은 밥 딜런에게 가장 큰 변화기이자 전성기가 펼쳐진다. 그의 앨범 중 최고로 꼽히는<Highway 61 Revisited>에 수록되어 발매 당시에도 큰 사랑을 받았다. 미국 빌보드 싱글 차트 2위, 영국 차트 4위에 올라 밥 딜런의 노래 중 가장 대중적이고 상업적으로 성공한 곡이다.

 

이 노래는 결코 달콤한 러브송이 아니다. 오히려 어둡고 냉소적이다. 사실 이런 가사를 가진 노래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은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었다. 표면적으로는 '명문학교를 나와 상류층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하던 여인의 추락을 조롱하고 비아냥거리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한때 세상을 발밑에 둔 것 같았던 여인은 한순간에 모든 걸 잃어버린다. 뼈아픈 교훈이지만 손에 쥔 것이 없을때 온전한 자유를 얻는다는 깨달음도 내포되어 있다.

 

다른 노래들과 마찬가지로 특정인을 겨냥한다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장 물망에 오른 것은 앤디 워홀(Andy Warhol)과 그의 뮤즈였던 에디 세즈윅(Edie Sedgwig)이다. 혹자는 진보가 패스트 패션처럼 가벼워져 버린 미국 사회를 저격했다는 설도 제기했다. 하지만 밥 딜런은 “내 노래 속에 등장하는 그(he)와 그것(it), 그리고 그들(they)은 대부분 나를 얘기한 거다”라며 화살을 본인에게 돌린다.

 

전설은 해가 갈수록 더욱 공고해졌다. 「Like a rolling stone」은 <롤링스톤>지가 선정한 팝 음악 역사상 가장 위대한 1위(2010), <피치포크>에서 1960년대 최고의 노래 4위(2006)에 선정되면서 여전히 후대에도 회자되고 있다. 노래 자체의 멜로디나 구성이 매력적이지만 이것만으로는 명곡으로 추앙되기 힘들다. 새로운 장르의 시발점. 그러니까 포크가 아닌 록의 편성으로 만들어져, 한 장르의 포문을 열었기에 이토록 뜨거운 환대를 계속 받고 있다.

 

당시에는 포크 히어로였던 그가 통기타가 아닌 일렉트로닉 기타를 쥐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다. 곡이 뜨기 직전인 1965년 5월 '뉴포트 포크 페스티벌'에서 그가 일렉트릭 기타를 연주했다는 이유만으로 관객들에게 계란과 '유다'라는 야유 세례를 받는다. 포크 팬들에게 전기를 사용하는 기타는 '물질주의'와 '배신'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공연은 흥분과 박수가 아니라 증오와 질책으로 가득했다. 음악평론가 데이브 마시(Dave Marsh)는 “이것은 공연이 아니었다. 이건 전쟁이다.”라고 표현할 정도였다. 하지만 이런 도전과 반목을 겪은 후, 공연은 록 역사상 가장 유명한 순간으로 기록된다.

 

이후 평론가들은 포크와 록을 뒤섞은 새로운 노래에 '포크록'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런 '포크록'은 프랭크 자파 등 동시대 뮤지션에게도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같은 시기에 활동했던 폴 매카트니는 “그는 음악이 더 새로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Like a rolling stone」의 탄생은 한 장르의 출발일 뿐 아니라, 세상에 없던 소리를 만들어낸 새로운 발명이었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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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llad of a thin man (1965)

 

가사에 등장하는 'Mr. 존슨'에 대한 추리는 어렵지 않다. 노래는 계속 주류 문화와 기성세대의 보수성과 모순을 신랄하게 비판하기 때문이다. 가사에 '연필을 들고 있는'이라는 표현이 있고, <아임 낫 데어>에서 이 노래가 나올 때 언론인이 등장하기 때문에 '존슨'은 '언론'을 상징한다는 추측이 많다. 반면 당시 대통령이었던 존슨 대통령을 겨냥했다는 설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하지만 밥 딜런은 “당신은 그를 알고 있지만 그 이름으로는 아니다”라고 말하며 끝내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았다.

 

Mr. 존슨'의 정체는 묘연할지 몰라도 그의 행태와 태도는 분명하다. 연줄이 많고 소득공제가 되는 자선 단체에서 교수들과 함께 지내는 사람. 그들은 새로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기 자리 지키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하지만 딜런도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부서질듯 내리치는 건반은 분노를 대신하고 낮게 반복하는 후렴구가 의미심장하다. '여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데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지요. 존슨씨?' 노래 안에는 새로운 변화에 대한 열망이 가득하다. 비록 비주류의 독설이지만 노랫말은 뾰족한 송곳이 되어 세상의 'Mr. 존슨'들을 관통한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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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 day women #12 & 35 (1966)

 

<Blonde on Blonde>의 포문을 알리는 곡이자 대중성과는 거리가 멀었던 밥 딜런의 빌보드 차트 최고 히트 싱글(2위). 「Everybody must get stoned」라는 코러스 라인 구절이 노래 중간 웃음을 터뜨리는 자유분방함에 더해 마약을 찬미하는 암시라 논란을 낳았으나, 그는 '절대 약물 노래(Drug song)는 가까이하지 않는다.'라며 강하게 부정했다.

 

마칭 밴드 혹은 구세군을 연상시키는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관악기 세션을 풍성히 초청해 일종의 빅 밴드를 구성했고, 실제로 의도된 혼돈 가운데 녹음되어 초기 포크-사이키델리아 곡이 탄생했다. 마지막으로, 의아함으로 가득한 곡 제목의 의미는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레코딩 도중 잠시 비를 피하기 위해 스튜디오에 들어선 두 여성, 그 모녀의 나이가 어렴풋이 12세, 35세였다는 것. (이기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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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nt you (1966)

 

하모니카의 경쾌한 음색, 백 비트, 보헤미안의 솔직한 사랑과 컨트리풍 음악, 패티 스미스 창법의 원류가 된 독특한 싱잉이 만난 작품 「I want you」, 이 곡은 올해 50주년을 맞은 그의 대표작 <Blonde on Blonde>에 수록되어 있다. 평론가 로버트 쉘튼은 이 곡뿐만이 아니라 밥 딜런의 7집 전체가 사라 딜런(셜리 마를린 노츠니스키, 사라 로운즈)과의 '웨딩 앨범'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딜런에게 배우자의 존재는 축복이었다.

 

그러나 '당신을 원해요'는 시간이 지나 처음의 뜻을 보존할 수 없게 된다. 1966년 당시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는 문장 그대로의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나, 이후 두 사람이 이혼을 하며 더 이상 예쁘기만 한 텍스트로 남을 수 없었다. 바쁜 톱스타 남편의 뒤에서 홀로 가정을 돌봐야 했던 사라 딜런에게 결혼 생활은 밥 딜런이 추억하는 것만큼 아름답진 않았다고 한다. 딜런을 다룬 영화 <아임 낫 데어>(그곳에 나는 없다)의 타이틀이 또 한 번 설득력을 얻는 순간이다.

 

물론 음악가의 개인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관점으로도 「I want you」의 가사는 쉽게 웨딩 송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 평범하지 않은 단어의 합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죄 많은 장의사는 한숨을 쉬고, 외로운 악사는 눈물을 흘리고, 은빛 색소폰은 당신을 거부하라 말한다' 식의 오묘한 문법은 동시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비틀스나 비치 보이스와는 또 다른 형태였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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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 (1966)

 

2007년 영화 <아임 낫 데어>의 시작을 알리는, 미들 템포의 리듬 감 넘치는 이 곡을(사실 딴 곡도 다 그랬지만)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솔직한 생각. “아니, 이렇게 절(節)마다 완전 다른 가사를 밥 딜런은 외우기나 할까, 한 번 해놓고 다음엔 까먹는 거 아냐?” 시간이 더 흐르면서 감탄이 하나 더 붙었다. 가사도 가사지만, 그게 아무리 빼어나도 곡조와 맞지 않으면 소용없는 짓! 밥 딜런을 노랫말 술사에만 초점을 둘 게 아니라 '곡 메이킹'의 천재라는 점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부분을 인정하지 않으면 '거기서 거기 같은 포크'의 범주에 속한 딜런의 앨범이 왜 무더기로 20세기 명반에 꼽히는지 이해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가 '록의 구세주(Rock's messiah)라는 호칭을 얻은 이유가 이거다. 뒷얘기지만 밥 딜런도 곡과 가사를 입에 맞추느라 재 편곡 등 녹음 작업에 무진 애를 썼다고 한다. 올해로 50년 된 역사적 더블 LP <Blonde on Blonde>의 한 곡. 정확한 의미도 몰랐지만 그럼에도 이 곡을 듣는 게 축복임은 젊었을 때, 그때 이미 알았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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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pard-skin pill-box hat (1966)

 

포크의 대명사 혹은 대부로 알려진 딜런은 뛰어난 블루스 싱어이자 연주자로도 유명하다. 어릴 적부터 포크와 함께 전통 블루스에 심취한 그는 데뷔작 <Bob Dylan>부터 음반마다 한두 곡의 블루스를 수록해왔다. 그의 어깨에 전기 기타가 메어진 후에 제작된 <Blonde on Blonde>의 수록곡 「Leopard-skin pill-box hat」 또한 전기 기타로 연주한 일렉트릭 블루스이다. 곡은 후에 벡(Beck)과 라파엘 사딕(Raphael Saadiq)에 의해 재탄생되기도 했다.

 

「Just like a woman」와 마찬가지로 에디 세즈윅(Edie Sedgwick)에게 영감을 받은 곡이다. 노래는 연인에게 퇴짜 맞은 이가 느끼는 불쾌감을 서술하는 동시에, 1960년대 초반 존 F. 케네디의 부인, 재클린 케네디(Jacqueline Kennedy)가 유행시킨 패션인 '표범 무늬의 모자'를 고급 패션의 상징으로써 사용하여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했던 당시의 세태를 풍자한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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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 like a woman (1966)

 

여성(woman)이 누구인지 불명확하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의 핀업 걸이자 당시 연인이었던 에디 세즈윅(Edie Sedgwick)이란 소문이 가장 유력하지만, '나는 굶주렸고, 세상은 너의 것이었어'라는 가사 때문에 당시 딜런보다 조금 더 인기 있었던 동료 가수, 존 바에즈(Joan Baez)라는 추측도 있다.

 

그러나 난데없이 마리화나를 뜻하는 속어인 퀸 메리(Queen Mary)가 2절의 첫 부분에 등장한다. 때문에 해석은 또 다른 애매모호함 속으로 접어든다. 안개(Fog)와 암페타민(Amphetamine), 그리고 진주(Pearl)의 특성을 모두 갖춘 'Woman'이 마리화나, 즉 약물을 빗댄 단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혹은 'woman'이 그저 단순한 섹스를 뜻한다는 풀이도 있다. 이는 1절과 중간 마디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비(Rain)가 당시 딜런의 성욕이 최고조에 도달했음을 뜻하는 단어라는 추측과 함께 동반되는 해석이다.

애매모호함(Ambiguity). 딜런이 쓴 가사들의 상당수는 난해하고 실험적이다. 그저 들으면 사랑스럽게 혹은 애절하게 느껴지는 「Just like a woman」의 가사는 딜런의 특성을 대표한다. 그는 단어 하나하나에 이중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딜런의 가사가 갖추고 있는 문학적 성질은 이러한 애매모호함뿐이 아니다. 1절의 가사를 살펴보자.

 

'Nobody feels any ①pain
Tonight as I stand inside the ①rain
Everybody ②knows
That Baby's got new ②clothes
But lately I see her ribbons and her ②bows
Have fallen from her ②curls'

 

'pain'과 'rain', 'knows'와 'clothes' 등 딜런은 단순한 단어들을 배치하여 시적 압운(Rhyme)을 만들어낸다. 종이에 옮겨지지 않았을 뿐, 한 편의 시와 다를 바 없다. 이 정도면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반대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반박 거리가 되지 않을까.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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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d eyed lady of the lowlands (1966)

 

사람들은 '숨은 인물 찾기'를 좋아한다. 이 노래 역시 'Lady'가 누구인지가 뜨거운 화두였다. 존 바에즈가 리메이크를 했었고, 두 사람의 특수한(?!) 인연, 그리고 그녀의 유독 슬퍼 보이는 눈빛 때문에 존 바에즈가 'Lady'라는 설도 많았다. 하지만 이 노래만은 사라 로운즈(Sara Lowndes)를 위한 곡이라는 증거가 명백하다. 가사를 살펴보면 '그냥 떠나버렸던 너의 잡지사 기자 남편'이란 대목이 있는데 실제로 사라 로운즈의 전 남편은 기자였다. 게다가 제목 자체도 '사라 로운즈'의 스펠링을 변형시켜 만들었다. 결정적으로는 그의 노래 「Sara」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그러고보니 이 노래 제목은 더욱 노골적이다.) '첼시 호텔에 머무는 동안 널 위해 'Sad eyed lady of the lowlands'를 만들었다' 가사나 분위기가 밝은 노래는 아니지만 곳곳에 애절한 마음이 묻어난다. 이상하게도 사랑이란 건 빠지면 빠질수록 더욱 심란해지는 법이니까.

 

당시는 라디오가 가장 힘있는 매체였고, 라디오의 특성상 노래가 길게 나가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3분 이하의 밝은 노래가 많았고 실제로 인기도 있었다. 이 노래는 무려 11분 19초다. 마음 내키는 대로 만들고, 자기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는 그의 고집은 이 '장대한 길이'에서도 잘 드러난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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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along the watchtower (1967)

 

영화 <포레스트 검프>를 본 사람이라면 지미 헨드릭스 익스피리언스(Jimi Hendrix Experience) 버전이 더 익숙할 테다. U2, 폴 웰러, 닐 영 등 수많은 아티스트가 리메이크했지만 포털 사이트에서 곡을 검색하면 지미 헨드릭스 버전이 가장 상위에 노출될 정도니 원작을 넘어선 인기는 실로 대단하다. 둥둥거리는 베이스와 지미 헨드릭스의 연주 스킬로 지루할 틈 없는 곡은 싱글 차트 20위까지 올랐고 딜런조차 헨드릭스 편곡으로 공연할 정도로 완성도 높은 곡이다.

 

원곡은 굉장히 심플하다. 기타와 하모니카로만 사운드를 꾸리며 처음부터 끝까지 세 개의 코드로 곡이 진행된다. <Blonde on Blonde>,<Highway 61 Revisited>, <Bringing It All Black Home>을 통해 포크록을 탄생시키며 로커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그가 오토바이 사고 이후 종적을 감춘 뒤 발매한 <John Wesley Harding>에서 다시 통기타로 돌아왔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사고 이후 밥 딜런의 공백기에 사이키델릭이 융성하며 환락적이고 쾌락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만연해 있었다. 딜런은 이에 편승하지 않고 다른 방향을 모색하며 미국의 뿌리를 찾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고 결국 컨트리의 고장 내슈빌에서 앨범을 완성하게 된다. 때문에 음반엔 「All along the watchtower」을 비롯해 「Drifter's escape」, 「I'll be your baby tonight」과 같은 컨트리 넘버들이 가득하다. 노래에서 어쩐지 시골 분위기가 느껴졌다면 제대로 들었다는 증거. 그는 로커빌리의 전설 자니 캐쉬와 「Girl from the north country」를 함께 부르며 확실히 대세와는 다른 노선을 걸었고, 포크록에 이어 컨트리 록의 탄생에 기여한다.

 

전작보다 사운드의 규모가 작아지고 단순해졌지만 가사의 의미는 너무나도 방대하다. 조커와 도둑의 대화문으로 시작하는 1절, 2절은 3절에서 외부 묘사로 바뀐다. 문학에서 내러티브가 먼저 등장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딜런의 곡에선 순서가 역전된다. 일차적으로 조커는 상인과 농부가 자기 소유의 무언가를 탐하고 있다며 도둑에게 탈출을 제안한다. (“There must be some way out of here", “Businessmen, they drink my wine, Plowmen dig my earth”) 그러자 도둑은 침착한 말투로 (탈출하는 것은) 운명이 아니며 시간 또한 많이 지체되었으니 탈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No reason to get excited", “And this is not our fate”, “The hour is getting late”) 이어지는 3절에선 계속 감시탑에서 밖을 지켜보는 지배자와 두 명의 말 탄 자들이 등장한다. (“All along the watchtower princes kept the view”, “Two riders were approaching”)

 

이에 대해 기독교적 해석, 그에게 익숙한 묵시록적 해석도 등장했고 바빌론 멸망의 과정 자체를 풀어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 외에 시기적으로 가사가 베트남 전쟁의 내용을 암시한다는 주장도 있다. 조커는 국민, 도둑은 미국 정부로, 혼란스러워하는 국민에게 그만둘 이유가 없다고 설득하는 정부와 감시탑에 올라가 베트남을 주시하는 프랑스라는 해석이지만 어느 것이든 정답일 순 없다. 밥 딜런이 기독교 신자임을 밝힌 <Slow Train Coming>의 행보를 생각해 본다면 기독교적 풀이가 나름 합당하다는 견해가 있지만 그것도 '일각에서는...'으로 끝나고 만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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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y lady lay (1969)

 

써 내려간 문장의 가치가 반짝였을 때 딜런은 세상을 뒤로하고 내면으로 파고든다. 오토바이 사고 후 회복을 위한 휴식이었지만, 저항운동 때문에 소란한 밖으로부터 자신만의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는 전자 기타와 록 비트를 내려놓고 조용한 내슈빌에서 쉼을 택한다. 마음의 안정에서 나온 소박하고 여유로운 소리는 컨트리 록 앨범 <Nashville Skyline>으로 이어진다.

 

「Lay lady lay'는 아내 사라에게 들려주는 사랑의 곡이다. '침대에 몸을 뉘어 나의 곁에 머물러줘요.' 노랫말만큼 부드러운 저음의 보컬, 스틸 기타가 구애송을 젠틀하고 중후하게 꾸며놓는다. 이 시점의 딜런은 사회적 메시지를 넘어 보다 많은 이의 사랑을 얻고자 하는 영역으로 옮겨간다. 분석이 필요했던 가사는 공감을 지향했고 선율의 힘이 더해져 이 곡은 1969년 싱글 차트 7위에 안착한다. 태동의 시기 젊은이들이 듣기에는 점점 차분해졌지만, 컨트리 록의 새싹은 1970년대 무성히 자라 이글스, 잭슨 브라운 같은 대표 가수들에게 영향을 준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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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ockin' on heaven's door (1973)

 

대중적으로 (특히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은 밥 딜런 곡이다. “이게 밥 딜런 노래였어?” 그를 잘 모르는 사람들조차 이 노래의 제목과 멜로디는 대부분 기억한다. 어쩌면 이 곡은 밥 딜런의 명성과 구별된 자체적 지분 속에 팝 역사의 명곡으로 기억되고 있는지도. 빌보드 싱글 차트 12위까지 올랐고, 밥 딜런은 이 노래로 1973년 그래미상 최우수 남성 록 보컬 퍼포먼스 후보에 선정되었다. 에릭 클랩튼(레게 풍)과 건스 앤 로지스(하드록)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다채롭게 리메이크했지만 원곡의 처연한 감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건스 앤 로지스 버전은 미국 한 매체에서 역대 최악의 리메이크로 선정되기도 했다.)

 

곡이 시작되면 심플한 기타와 오르간, 그리고 노래 전반에 깔리는 허밍과 코러스 가운데 딜런의 무심한 보이스가 시작된다. 단 4개의 코드 속에 전개되는 단순한 멜로디, 반복된 가사, 2분 30초 남짓한 미니멀한 구성이지만 이 노래는 듣는 이의 귀와 가슴을 파고드는 멜랑콜릭한 신비로움이 있다. 가스펠적 느낌과 제목으로, 또한 이후 그의 종교적 회심으로 인해 일부 사람들은 이 노래를 종교적 노래로 오해하기도 한다.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제작된 영화 <Pat Garrett & Billy the Kid>의 주제곡이지만, 2절 가사에서 '어머니 이 총을 땅에 내려놓게 해주세요. 나는 더 이상 아무도 쏠 수 없어요'에서 느껴지듯 당시 베트남전에 참전해 죽어가는 군인의 심정을 노래한 대표적인 반전 가요로 더 잘 알려져 있다. 한 편으로는 당시 저물어가는 1960년대 히피 문화와 저항정신에 대한 씁쓸한 엘레지(elegy)로, 또는 밥 딜런 자신의 황폐해진 내면세계의 자화상으로도 느껴진다. (윤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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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ngled up in blue (1975)

 

밥 딜런은 말했다. “「Tangled up in blue」를 완성하는 데, 사는 것 10년, 곡 쓰는 데 2년 걸렸다.” 대게 좋은 곡은 힘들 때, 밝고 행복할 때보다 우울함을 가득 품고 심연의 늪을 헤엄칠 때 나온다. 이 곡이 그런 것처럼 또 그가 말했었던 것처럼 「Tangled up in blue」의 가사에서 느껴지는 생체기 난 마음은 고통의 시간과 비례했다.

 

사라 로운즈와의 결혼 생활이 그 끝에 다다랐을 때 밥 딜런은 「Tangled up in blue」의 첫 구절을 적었다. 앨범 명부터 심리적인 고통의 길을 걷고 있었던 심리를 엿볼 수 있는  <Blood on The Tracks>의 첫 트랙을 담당하고 있는 이 곡은 앨범의 전체적인 스토리를 부분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마치 한 편의 콜라주처럼 시점들이 뒤얽혀 있는 가사는 항상 외로웠던 남자와 그를 떠난 한 여자의 스토리를 뒤죽박죽 붙여놨다.

 

이해하려고 두세 번 곱씹어도 제대로 해석할 수 없는 가사에 난감하다가도 당시 곡을 써 내려갔던 그의 심경을 가늠한다면 해석은 필요치 않다. 그저 아픔과 추억의 흐름을 따라 펜을 움직였을 테다.

 

'모든 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직 길 위에 있다.'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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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twist of fate (1975)

 

'피에 젖은 노래들'. 비록 그 자신은 부정했다지만, 노래가 수록된 앨범  <Blood on The Tracks>(1975)의 면면은 분명 자전적이다. 당시 부인 사라 로운즈와 불화를 겪고 있던 정서가 음반 곳곳에 배어있다. 그러나 이 곡만큼은 예외다. 노래에는 당초 '4th Street affair'라는 부제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4번가는 바로 뉴욕 정착 초기에 사귀었던 연인 수즈 로톨로(Suze Rotolo)와 함께 살았던 아파트가 있던 길. 수즈 로톨로는 <The Freewheelin' Bob Dylan>표지 속 딜런과 팔짱 낀 여인이다.

 

퍼즐을 맞추다 보면 언뜻 이들에 관한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노래의 대부분은 한 남성에게 일어난 하룻밤의 '단순한 운명의 장난'을 제3자의 입장에서 서술하는데 주력한다. 반전은 말미에 드러난다. 화자의 시점이 1인칭으로 바뀌자, 그는 잃어버린 그녀가 여전히 자신의 반쪽이라 믿는다며 떠나간 연인을 그린다. 그리고는 결국 '단순한 운명의 장난'을 탓한다. 정황상 10여 년 전 연인이었던 수즈 로톨로를 모델로 한 것으로 의심되나, 이번에도 원작자는 적극 부인했다. 이렇듯 진실은 알 수 없지만 복잡한 연애사를 간직한 노래 속 명문(明文)은 단연 이것. '운명의 단순한 장난을 탓하는 수밖에'.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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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iot wind (1975)

 

앨범 제목 <Blood on The Tracks>처럼 당시 딜런의 상황은 가혹했다. 아내와의 이혼, 음악적으로도 잘 풀리지 않았던 시기. 음반에는 고통의 날이 서있다. 「Idiot wind」는 그때의 쓰라림을 담아내듯 수록곡 중 가장 목 놓아 부른다. 가정을 지키지 못했다는 자신에 대한 자괴감은 멍청이(Idiot)라는 단어에 담겼다. 마음속에 딱딱하게 응고된 상처와 외로움이 냉소적인 노랫말로 표현된다.

 

행복으로 가득 찬 결혼 앨범 <Blonde on Blonde>와 반대로 이별의 음반은 밟혀 부서진 가을 낙엽처럼 황량하다. 이 시기의 문구는 가장 힘들었던 삶의 바닥에서, 숨길 수 없는 애수 속에서 피어났다. 자기 고백적인 가사를 따라 음악 스타일 또한 초창기 어쿠스틱 포크로 되돌아간다. 대중은 록에서 포크음악으로 귀가한 밥 딜런을 열렬히 환영했다. 뛰어난 창작은 다양한 굴곡으로부터 발현되었고, 그를 다룬 전기 영화 <아임 낫 데어>에서는 밥 딜런 역에 6명의 배우가 등장해 각각의 순간을 연기한다. 거장의 삶을 다층적으로 다루어준, 명곡을 다시 듣는 기쁨이 담긴 영화였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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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rricane part I (1976)

 

미국의 프로 복서로서 공격적인 경기 스타일 덕에 허리케인(Hurricane)이라는 별명으로 명성을 날리던 루빈 카터(Rubin Carter)는 1966년 뉴저지의 한 식당에서 백인 세 명을 살해했다는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루빈은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복역 중 자서전을 출간하는데, 이를 읽고 감명 받은 딜런은 교도소로 직접 찾아가 그를 면회하고 싱글 「Hurricane」을 발매하기에 이른다.

 

루빈이 겪어야만 했던 비극은 8분여간의 러닝타임을 통해 온전히 전개된다. 뮤지컬을 연상시키는 구체적인 대사와 스토리텔링은 당시의 현장감을 그대로 전한다. 백인의 부당을 고발하는 딜런의 어투는 조소를 머금고 있다. 빠른 템포 아래 리듬감을 형성하는 어쿠스틱 기타와 스트링 사운드의 긴박함이 사건의 무게감을 밀도 높게 채운다. 기결(起結)에 자리 잡고 있는 절(節)은 이야기의 운율을 형성한다. '이것은 허리케인에 대한 이야기예요.'

 

노래는 대중들에게 루빈의 사연을 알리는데 일조하였고, 1985년 산고 끝에 그는 누명을 벗고 석방된다. 이 곡은 후에 그의 사연을 다룬 영화 <허리케인 카터>의 OST로도 활용되기도 한다. 실질적인 현실의 사태를 음악으로 녹여내어 문제 해결의 원동력이 되었음에 단순한 예술 이상의 투쟁가(鬪爭歌)로써 가치를 형성한다. 순수 노랫말이 만들어내는 메시지의 시적 표현력 또한 문학적인 의미 생성의 주요 원천으로 작용한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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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more cup of coffee (1976)

 

1976년에 발표한 앨범 <Desire>에 수록한 곡으로 국내에서는 선망과 핫의 대상인 커피가 들어간 덕에 줄기차게 전파를 타면서 애청되었다. 라디오 프로에선 커피 사연을 받으면 어김없이 선곡했다. 딴 곡 다 제치고 이러한 멜로딕하고 처연한 노래만이 우리 팝팬들의 편애를 받나 싶었지만 밥 딜런의 자아를 영화화한 <아임 낫 데어>에 '뜻밖에' 이 노래가 깔리면서 괜히 다행이다,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걔네들도 이 곡을 좋아하는구나!'

 

노랫말은 역시 풀이가 쉽지 않다. 집시 방랑자 집안의 소녀와 '아래 계곡'으로 떠나는 자의 얘기인데 그 관계는 버림, 관계의 종말인 동시에 재(再) 도래 등등 온기와 습기의 은유들로 엉켜있다. 매력적인 부분은 역시 하모니를 이루는 여성 보컬로 주인공은 당대 '여성 컨트리 록의 다크호스'였던 에밀루 해리스(Emmylou Harris)다. 남녀가 호흡을 맞췄다는 것도 국내 팬들의 꾸준한 청취를 자극하는 요소로 작용했다. 많은 남자들이 흠모하는 여성에게 커피와 이 곡을 묶어 애정을 실어 날랐다. '내가 저 아래 계곡으로 길 떠나기 전에 커피 한 잔 더 부탁해요!'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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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nging of the guards (1978)

 

'명색이 대학생인데 매달리면 해석을 왜 못하겠어? 아무리 밥 딜런이라지만 그래봤자 팝송 아냐?' 어렵사리 가사를 구했다. '근데 이게 뭐지?' '하지만 에덴은 불타고/ 그러니 마음 다잡고 제거하든가/ 아니면 경비를 바꿀 용기를 가져야 할 거야'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가. 안 되다 보니 자위가 필요했다. 나중 들었지만 존 레논도 '밥 딜런은 언제나 가사의 의미가 불분명하다'고 살짝 투덜거렸다는데 나야 당연한 거 아닌가.

 

서구의 전문가들의 의견도 분분했다. 누군가는 16년간의 음악 여정, 결혼, 종교성 등에 대한 심도의 묘사라고 누군가는 묵시록적 견해라고 했다. 딜런 자신도 “부를 때마다 의미가 달라진다. 「Changing of the guards」는 천년 묵은 노래다!”라고 했다 한다. 사정이 이런데 오래 붙잡고 있다고 해결이 되겠는가. 결론. “포기하자. 노랫말 의미 파악을. 모른다고 음악의 감동이 줄어드는가. 이럴 때는 포기가 상책이다!”

 

히트곡 모음집에 실리지 않다가 1994년 발매한 세 번째 히트곡집(Greatest Hits Volume 3)에 수록되었을 때 정말 보상받은 기분이었다. 뭔지 모른 채 (1978년 나왔으니) 40년 가까이 듣고 있는 의리와 수절을. 그리고 곡은 잘 고른 것 아니냐는 걸, 가끔 들러 자리에 앉으면 잠시 후 무조건 이 곡을 매번 그리고 10년간 틀어주시는 홍대 롤링홀 근처의 카페 '별이 빛나는 밤에' 사장님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올린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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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tta serve somebody (1979)

 

“이상적인 방향으로 문학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띄는 기여를 한 사람에게 수여해라”라는 유언에 따라 올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밥 딜런이 선정되었다. '음악인 최초 노벨문학상', '포크 록의 전설'이라는 다양한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밥 딜런의 이번 수상에 대중들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그는 시적인 가사 외에 새로운 장르를 빗어낸 인물이라는 점에서 그 수상에 의미를 더한다.

 

포크록을 창시했던 것처럼 「Gotta serve somebody」를 통해 CCM의 기원을 만들었다. 1970년대 후반 기독교에 빠지며 눈에 띄게 짙어진 밥 딜런의 신앙심은 <Slow Train Coming>, <Saved>, <Shot of Love>등 여러 앨범을 낳았고 그중 CCM의 시초가 된 이 곡은 교회에서 불리는 종교적 의식이 가득한 가스펠에 대중음악적 요소를 접목해 탄생했다.

 

'신인지 악마인지는 몰라도
그래도 누군가를 섬겨야만 해.'

 

기독교에 심취해 있던 당시 그는 가사에 성경 한 구절 한 구절을 써 내려갔다. 어떤 사회적 위치나 상황에 있든지 주를 받들고 섬겨야 한다고 말하는 밥 딜런은 아이러니하게도 포크록으로 청년들을 저항의 띠로 엮었던 것과는 반대로 가스펠을 대중이라는 영역에 옮겨 놓으며 크리스천들을 신앙의 힘으로 단합하게 했다. 그렇게 그는 기독교에 전도자 적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박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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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dark yet (1997)

 

밥 딜런은 딱히 눈에 띄는 성과가 없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 중반까지 슬럼프를 극복하지 못한다. <Under The Red Sky> 이후 7년간 그저 과거의 작품들을 연주하며 시간을 보내는 그에게 새로움이란 없었고 밥 딜런이라는 이름은 그렇게 대중의 머릿속에서 잊히는 듯했다. 그러나 1997년 딜런은 <Oh Mercy>의 다니엘 라노이스(Daniel Lanois)와 다시 한 번 팀을 꾸려<Time Out of Mind>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당시 그의 나이는 56세. 몸 상태도 악화되었던 딜런은 결코 좋지 않은 환경에서 그의 수작을 탄생시켰다. 음반은  <Blood on The Tracks>의 독백적, 성찰적 메시지와 신앙 또는 신화를 컨트리 블루스에 녹여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를 형성한다. 대중은 노장의 돌아온 음악적 감각에 환호했고 앨범은 차트 10위라는 상업적 성공과 그래미 수상의 영예를 모두 거머쥐게 된다.

 

「Not dark yet」은 앨범 내에서 가장 차분한 곡이다. 화자는 죽음을 몸으로 느끼고 머리로 사색한다. 해가 지고 있지만 잠이 오지 않고, 시간은 흘러만 간다. 자신의 영혼은 죽어가고 있다. (“It's too hot to sleep and time is running away”, “Feel like my soul has turned into steel”) 남아있는 인간미는 아름다움을 뒤로 한 채 희미해지고 (“My sense of humanity has gone down the drain”, “Behind every beautiful thing there's been some kind of pain”)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며 거짓으로 가득 찬 세계의 끝에 도달했다. (“I've been down on the bottom of a world full of lies”)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죽음은 다가온다. (“I was born here, and I'll die here against my will”) 감각이 점점 흐려지고 죽음이 다가온다. (“Every nerve in my body is so vacant and numb”, “Don't even hear a murmur of a prayer”)

 

딜런은 죽음을 둘러싼 생각을 의식의 흐름과 감각 작용을 통한 묘사로 서술했고, 그가 존 키츠의 '나이팅게일에 부치는 노래(Ode to a Nightingale)'의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은 이를 근거로 한다. 시의 1절 1구와 3구를 살펴보면 '내 가슴은 저리고, 졸리는 듯한 마비가 내 감각에 고통을 주는구나.', '혹은 어떤 감각을 둔하게 하는 아편의 찌꺼기까지 들이켜'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여기서 흐릿해지는 감각과 그 묘사를 빌려왔다는 것이다.

 

노래는 딜런이 생사의 고비를 겪기 전 완성되었지만 가사는 흡사 죽음의 순간을 예견한 모양새다. 혹은 항상 죽음을 가까이하고 있던 것은 아닐지. 순례자가 행진하는 분위기와 단순한 리듬은 성스러운 감정마저 촉발한다. 해는 저물고 그림자는 드리워진다. 그러나 아직 어둡지 않다. 온몸의 신경이 숨을 죽여가지만, 그래도 아직 어둡지 않다. 죽음의 순간에 역설적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절망의 끝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아직 어둡지 않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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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e you feel my love (1997)

 

'비바람이 그대 얼굴을 적시고 온 세상이 당신을 버겁게 할 때,
내가 그대를 따뜻하게 안아줄게요. 당신이 내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거장의 창작력은 1990년대에도 빛났다. 사회 참여적, 자기 성찰적 가사뿐 아니라 로맨틱한 글짓기에도 능했던 그는 지천명이 지난 나이에 세기의 러브 송을 남겼다. 상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언제고 무엇이든 하겠단 달콤한 고백은 아름다운 선율에 실려 힘을 발휘했다. 비록 젊은 시절의 미성은 간데없이 까끌까끌한 목소리였지만, 또 다른 매력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사실 노래는 빌리 조엘의 세 번째 베스트앨범<Greatest Hits Volume III>를 통해 세상에 첫 선을 보였다. 간발의 차이로 밥 딜런 오리지널 버전이 그의 30번째 정규 앨범 <Time Out of Mind>에 실려 공개됐고, 곧이어 노래의 진가를 알아본 후배들에 의해 커버가 이어졌다. 특히 요즘 청취자들은 이 노래를 아델의 버전으로 기억한다. 그는 데뷔 앨범 <19>(2008)에서 곡을 취입했는데, 해당 음반에서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고도 밝힌 바 있다. 뛰어난 이야기꾼이자 멜로디 메이커인 딜런의 내공이 유감없이 발휘된 명곡.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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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gs have changed (2006)

 

특유의 파동이 큰 스네어 드럼으로 곡이 시작되고, 마이너 스케일의 가라앉은 공기 안에서 딜런은 대화하듯 가사를 읊는다. 여기서 그의 보컬은 거칠면서도 은근히 세련되었다. 타코 버전의 「Putting on the ritz」를 듣는 것처럼 생동감이 느껴지면서도 왠지 모르게 쓸쓸하고, 무심하게. 영화감독 커티스 핸슨의 팬심(?)으로 성사된 작업에서 딜런은 기존의 곡을 삽입하는 대신 영화 <원더 보이즈>만을 위한 새 노래를 작곡했다. 이 곡으로 딜런은 2001년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 두 곳에서 주제가상을 수상했다.

 

그의 노래가 영화에서 흘러나온 건 이때가 처음이 아니다. <포레스트 검프>(1994)에서는 1966년 <Blonde on Blonde>앨범에 수록된 「Rainy day women #12 & 35」가 삽입되었고, 좀 더 늦게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2001년 작 <로얄 테넌바움>, 여기엔 딜런의<Self Portrait>(1970) 앨범에 수록된 「wigwam」이 있다.

 

우리는 종종 현재진행형의 전설을 체험한다. 데뷔 직후부터 음악계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인물이 된 밥 딜런은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식지 않은 창작열을 보여주었다. 발전하는 클래식 아이콘. (홍은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콜드플레이 내한공연의 여운, 이 곡으로 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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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최대의 록 스타이자 영국 록의 새로운 자존심인 콜드플레이의 내한공연 소식에 수많은 국내 팬들이 설레고 열광했다. 티켓 예매 사이트의 서버가 다운될 정도였다니 그 가공할 인기는 두 말 할 것도 없겠다. 브릿팝의 불꽃을 다시 지피고 수많은 '워너비'를 만든 '공룡' 콜드플레이, 놓쳐서는 안 될 그들의 10곡을 선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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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llow (2000, <Parachutes>수록)
찰랑이는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몽글몽글하게 드라이브를 건 일렉트릭 기타 리프, 가성과 진성을 오가는 크리스 마틴의 부드러운 음색이 찰떡같은 궁합을 자랑한다. 연인에 대한 사랑을 멋지게 은유한 가사와 경쾌한 비트 위로 흐르는 왠지 모를 처연한, 불균형의 균형을 이루는 멜로디라인이 핵심이다. 첫 앨범 수록곡이지만 아직까지도 팬들의 절대적인 사랑을 받는 아름다운 연가이자 전 세계에 콜드플레이의 이름을 알린 초창기 명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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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my place (2002, <A Rush Of Blood To The Head>수록)
전보다 단단하고 밀도 있는 사운드를 추구한 두 번째 앨범의 지향을 대표하는 곡. 심장을 뛰게 하는 파워풀한 드럼 비트가 흐르고 곧이어 몽환적인 기타가 휘감아 들어온다. 신시사이저와 밴드 사운드로 두껍게 채운 공간감, 그것과 여린 감성의 배합이 절묘하다. 이게 그들의 특기다. 상실을 노래하는 섬세한 가사와 천천히 감정을 고조시키는 구성으로 곡은 4분의 황홀경을 창출한다. 기가 빠지고 있던 브릿팝의 불꽃을 다시 불태운 것은 바로 이 부드럽지만 강한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사운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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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cientist (2002, <A Rush Of Blood To The Head>수록)
노랫말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를 타고 흐르는 가사는 이성과 계산, 논리로 사랑을 대했던 남자를 과학자에 비유하며 이별 후 느끼는 뼈아픈 후회를 덤덤하게 그려낸다. 'Yellow'가 설렘과 환희의 영역에 있다면 'The scientist'는 고독과 그리움을, 애잔함과 노스탤지어를 대표한다고 할까. 감정을 찌르는 부드러운 중저음 음색과 리와인드 기법으로 촬영한 멋진 뮤직비디오로 곡은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는 모든 실연남녀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콜드플레이 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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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cks (2002, <A Rush Of Blood To The Head>수록)

적은 악기 구성으로도 풍성한 소리를 만들어내는 이들의 사운드메이킹 능력이 빛난다. 웅장한 신시사이저를 배경으로 긴박함을 배가하는 드럼 비트와 반복되는 피아노 멜로디가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며 묘한 긴장의 세계를 꾸린다. 확장된 사운드와 크리스 마틴의 몽롱한 가성이 만들어낸 꿈같은 세계에 대중은 열광했고, 브릿팝 진영에 유독 인색하던 그래미마저 이 곡에 '올해의 레코드' 상을 바치며 영국 록에 백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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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x you (2005, <X&Y>수록)

이 곡엔 어떤 강인한 철벽도 단번에 무장해제 시키는 힘이 있다. 마음을 편안히 감싸는 오르간 소리와 참 예쁜 노랫말이 포근하게 위안을 전한다. 콜드플레이 음악의 영원한 화두인 공감과 힐링 코드가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곡. 크리스 마틴이 이혼한 전 아내 기네스 펠트로가 아버지의 죽음으로 슬픔에 빠져 있을 때 그를 위로하기 위해 작곡한 나름 사연 있는 곡이기도 하다. '힐링 송' 부문 넘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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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lk (2005, <X&Y>수록)
드라이브가 잔뜩 걸린 시원하고 캐치한 기타 라인이 먼저 귀를 사로잡는다. 어찌 보면 음악의 생명이라 할 수 있는 멜로디를 누구보다 멋지게 뽑아내는 밴드의 음악적 역량이 꽃핀 곡. 주로 얌전한(?) 음악들을 만들어 온 콜드플레이의 색다른 매력은 이후 이들 사운드의 폭발적 확장을 예고한다. 영국 일렉트로 댄스의 대들보 자크 뤼 콩(Jacques Lu Cont)의 리믹스 버전이 그래미 베스트 리믹스 상을 수상하기도 했을 만큼 흥겹고 매력 있는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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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a la vida (2008,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수록)
얼터너티브와 브릿팝의 세례를 받은 록 밴드가 뜬금없이 들고 나온 웅장한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모두가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음악은 충격을 열광과 탄성으로 바꿔 놓았다. 캐치한 멜로디에 담은 가사는 권좌에서 쫒겨난 왕의 입을 빌려 돈과 명예의 덧없음과 쓸쓸함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여기에 오케스트라와 혼연일체를 이루는 행진곡 풍의 북소리와 멤버들이 입고 나온 18세기 풍 제복, 들라크루아의 유명한 그림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을 차용한 앨범 커버까지 모든 요소가 조화롭게 뭉쳐 곡의 메시지를 한층 강화한다. 콜드플레이 전미차트 첫 1위의 대박 넘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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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rs in Japan (2008, <Viva La Vida Or Death And All His Friends>수록)
밴드는 네 번째 앨범의 프로듀싱을 '사운드 장인' 브라이언 이노에게 맡기며 사운드와 작법의 발전을 꾀했다. 명곡 'Lovers in japan'에 흐르는 은은한 앰비언트는 분명 그의 영향이겠지만, 곡을 지탱하는 청량한 건반 리프와 유려한 멜로디라인은 밴드 고유의 역량 덕임을 증명한다. 명인의 노련한 내공과 젊은 밴드의 샘솟는 창조력, 그 합(合)의 산물. 한 트랙에서 이어지는 서정적인 'Reign of love'도 신나는 리듬에 들뜬 마음을 잘 갈무리하는 훌륭한 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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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adise ( 2011, <Mylo Xyloto> 수록)
웅장한 공간감을 자아내는 신시사이저의 운용이 눈에 띈다. 마치 큰 캔버스에 원색의 물감들을 화려하게 칠한 느낌이다. 따라 부르기 쉬운 중독성 있는 후렴에 들어서면 거대한 아레나 라이브의 풍경이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지며 황홀한 낙원에 서 있는 듯한 즐거운 간접체험을 경험한다. 록 밴드의 틀을 넘어 4인조 사운드 메이커 집단으로 발전한 이들의 최근 경향을 대표하는 환상적이고 시원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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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enture of a lifetime (2015, <A Head Full Of Dreams>수록)
일렉트로 댄스 음악의 영향을 받아 댄서블한 그루브를 적극 차용했다. 개성 있는 기타 리프와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베이스, 디스코 스타일 드럼의 결합으로 만들어낸 흥겨운 에너지가 감성적인 보컬과 의외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 '떼창'을 부르는 포인트들과 노련하게 완급을 조절한 리듬감은 20년차를 향해 달려가는 밴드의 능숙한 송라이팅 능력을 뽐낸다. 발전을 멈추지 않는 현재진행형의 전설 콜드플레이, 그들의 내한 공연에서도 이 곡이 모두의 흥을 책임질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과연 다음 내한 공연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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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염원하던 콜드플레이의 첫 내한공연이 성황리에 끝나고 '과연 다음은 누구?'에 음악팬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U2, 롤링 스톤스, 마돈나와 다프트 펑크 등, 매년 수십 개의 페스티벌과 행사들이 주최됨에도 아직 대한민국 땅을 밟지 않은 뮤지션들이 줄을 선 지금, 이즘의 필자별로 보고 싶은 뮤지션의 공연을 선정해보았다.

 

*글 하단의 송 리스트는 필자가 예상하는 공연의 하이라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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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투 (U2)

 

“이 공간 안에 신이 운행하는 것 같았다. [U2의 공연은] 일종의 종교집회(sacrament)였다.” - 빌 프래니건 (롤링스톤 편집장)

 

1987년 의 대성공 이후 시사 매거진 <타임즈>는 "The Hottest Ticket"이란 타이틀과 함께 커버에 U2를 올렸다. 이후 30년 동안 U2의 콘서트 열기는 늘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2010-11년의 “360? 투어”는 역대 최고의 흥행 성적을 거두었다. U2의 공연은 엄청난 규모의 세트와 다양한 영상 테크놀로지의 극치를 보여준다. 또한 무대와 관객석을 종횡무진하는 프론트맨 보노의 탁월한 보컬 액팅과 카리스마는 청중들에게 일종의 유사종교 체험을 제공한다. 이들의 공연이 더 특별한 이유는 음악적 감흥을 넘어 현대사회의 제반 병폐, 특히 폭력과 인권 문제에 대한 문제의식과 윤리적 결단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U2의 팬들은 음악 뿐 아니라 그들의 사회활동의 든든한 지원군이 된다.

 

한 인터뷰에서 보노는 오랜 분단과 전쟁의 아픔을 겪은 아일랜드인으로서 한국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부르고 싶은 노래가 “One”이라고 말했다. “One"은 분명 내한 공연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할 것이다. 이 노래 이후 물결치는 디 엣지의 유니크한 기타 인트로가 작렬하며 펼쳐지는 “Where the Street has no name"이 이어진다면, 관객들은 시공을 초월한 미지의 거리를 질주하는 환상을 느낄지도... (윤영훈)

 

One
With or without you
Where the street has no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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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링 스톤스 (The Rolling Stones)

 

혓바닥 티셔츠를 가진 이들의 공통된 꿈! 만남이 실현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반세기를 지나 여전히 록의 전방에서 자리를 지키는 이 거장들을 아직 한국으로 초대하지 못했다. 비틀즈의 독주를 견제했던 그룹의 위상은 물론이고, 일흔 넘은 나이에도 관객을 사로잡는 믹 재거와 키스 리처드의 꿀 조합은 내한에 대한 염원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다.

 

롤링 스톤스의 라이브를 경험한 모두가 엄지를 치켜들었다. 믹 재거의 보컬과 블루스 록 특유의 지글지글한 기타는 현장에서 더욱 맹렬히 전달된다. 생동하는 사운드 앞에서 이들이 굴러온 세월과 언어의 장벽은 잊게 된다. 전성기를 열어준 '(I can't get no) Satisfaction'을 비롯해 'Paint it black' 같은 빛나는 명곡은 더 늦기 전에 이 전설 팀을 마주해야하는 근거를 더해준다. 친근한 정서로 내게 인상을 남겼던 발라드 'Angie' 또한 관중을 다른 분위기로 물들일 테다. 바래진 혓바닥 티를 꺼내 입은 사람들의 환호와 롤링 스톤스의 노익장 담긴 공연이 이뤄지길 소망한다. (정유나)

 

(I can't get no) Satisfaction
Paint it black
Ang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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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 (Madonna)

 

올해 마돈나가 환갑이 되었다. 그러니까 그가 대중음악씬을 종횡무진한지가 35년이 된 것이다. 마돈나의 무기는 음악이지만, 그 중에 라이브와 공연은 자신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전법이다. 이것을 증명하듯 그의 공연은 수익이나 내용면에서도 남들이 넘볼 수 없는 기록을 남겼다.

 

“이 사회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말고 나이에 대한 차별도 같이 겪고 있다. 사람이 어떤 나이 이상이 되면 더 이상 모험을 하거나 심지어 섹시해지는 것도 금지되는 것 같다. -마돈나”

 

마돈나의 공연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그의 파격적인 퍼포먼스가 아니다. 그가 던지는 '화두'가 먼저다. 그는 공연을 통해 자신의 메시지와 의견을 피력해왔다. 'Re-invention tour'에서는 부시 정부를 대놓고 비판했고, 'Confessions'에서는 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매달려 노래를 불러 교황청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의 메시지는 '우리는 모두 예수와 같이 타인을 도와야 한다.' 였다.)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세계의 많은 이들이 마돈나에게 영감을 받았다. 한국에서도 금기와 싸워나가는 수많은 마돈나들이 존재한다. 안타깝게도 국제 정세와 여러 이유 때문에 대한민국은 그녀의 투어 리스트에서 제외되어 왔다. 더 늦기 전에 도발의 축제가 필요하다. (김반야)

 

Rebel heart
Material girl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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펄 잼 (Pearl Jam)

 

동영상으로 확인한 펄 잼의 공연에는 광기의 에너지와 뜨거운 열기가 교차한다. 에디 베더의 신들린 가창과 무아지경으로 빠져드는 멤버들의 연주, 이들의 주술적이고 광적인 무대에 도취되는 관객의 몰입도는 펄 잼의 공연을 단순한 음악 향연이 아닌 거대하고 경건한 의식으로 승격시킨다. 1990년대 대중음악을 정의한 펄 잼은 아직도 사회참여적인 태도를 견지하며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임무를 수행하기에 이들의 무대는 가볍고 흥겨울 수 없다.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 젊은 세대의 좌절, 동서갈등, 세대 간 분리, 남북분단 등 여러 문제가 산적한 대한민국에서 펄 잼의 진중한 메시지와 육중한 사운드, 돌처럼 단단한 의지로 축적된 음악은 이 문제 많은 사회에 전파되고 스며들어야 한다. 펄 잼의 내한공연이 요구되는 이유다. 1990년대에 함께 경쟁했던 스매싱 펌킨스나 콘,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등이 우리나라에서 공연했고 소위 시애틀 4인방이라 불렸던 사운드가든, 앨리스 인 체인스, 너바나가 전설로 승화한 상황에서 펄 잼의 내한공연은 답답한 현실에 대한 통쾌한 일갈이자 후련한 카운터펀치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내 인생의 록, 'Jeremy'와 가사에 'Fuck you'가 등장하는 'Not for you'를 직접 들으며 함께 따라 부르고 싶다. (소승근)

 

Jeremy
Not for you
Al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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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니예 웨스트 (Kanye West)

 

사실 카니예 웨스트는 내한했었다! 그것도 서울이 아닌 양양군에. 낙산 해수욕장에서 열린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선 그는 공연 후 식당에 들러 '불고기'까지 먹고 갔다. 당시 사진은 전설로 남아 지금도 각종 커뮤니티를 떠돌며 그와 한국 사이의 끈끈한(?) 인연을 되새기고 있다. 여러 가지 의미로 인상적이었던 내한 이후 발매한 앨범은 빌보드 1위로 데뷔해 플래티넘을 달성했다. 그의 최대 역작으로 손꼽힌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는 평단의 열렬한 찬사를 받았고 외로움에 몸부림치던 2010년 연말, 내게 구세군의 종소리로 다가왔다.

 

음악을 넘어 패션, 브랜딩, 영상 등 문화 산업 전반에 걸친 그의 영향력은 뮤지션으로 한정하기 어려운 수준이 됐다. 현재 그의 위상은 종합 예술인에 가깝다. 손길이 닿는 것마다 성공적이니 본업만 하기엔 아쉬울 만도 하다. 'The life of pablo tour' 콘서트 활동을 미국 한정으로만 진행한 것도 월드 투어를 진행하기에는 그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 아닐까. 언제할지 모르지만, 혹시나 외국 공연을 계획 중이라면 솔깃한 제안을 하고 싶다. 그의 히트곡들에 참여한 유명 가수들의 목소리를 대체할 수만 명의 관객 떼창이 기다리고 있다고!


마지막으로 그가 디자인한 신발 '이지부스트'를 신고 공연에 갈 내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

 

요, 칸예, 난 네가 잘되는 게 기쁘고, 네가 (쇼를) 마무리하게는 해 주겠는데 너의 5집은 역대 최고의 앨범 중 하나였어! 최고의 앨범 중 하나라고! (MTV 뮤직비디오 대상 시상식 무대난입 사건) (노태양)

 

Through the wire
Runaway (Feat. Pusha T)
Only one (Feat. Paul McCartn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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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 (Blur)

 

오아시스가 2009년에 왔고, 스웨이드는 2011년을 시작으로 무려 세 번이나 내한했다. 브릿팝 팬들에겐 이제 블러를 만나는 것이 가장 큰 소망일 테다. 마침 다가오는 7월에 데이먼 알반의 또 다른 그룹 고릴라즈가 '지산 밸리록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 초청되었으니, 블러와의 재회 역시 허황된 꿈은 아닌 셈이다. 그래, '재회'다. 사실 그들은 1997년에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수용 인원 3천여 명 정도의, 지금은 사라진 정동문화체육관에서 열린 그들의 단독 콘서트는 밴드의 이름값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규모였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지금은 해외 아티스트가 라인업에 즐비한 록 음악 전문 페스티벌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양질의 음향과 무대 세트를 구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들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기다림에 지친 팬이라면 2012년 런던 올림픽 폐막식 무대를 담은 라이브 앨범을 청취해보자. 최고의 명반으로 꼽히는 <Parklife>를 살짝 비틀어 이름 붙인 <Parklive>에는 블러가 얼마나 관객과 뜨겁게 교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답변이 생생하게 녹음되어 있다. 음악적으로 디테일의 강자인 블러는 그와 동시에 화끈한 퍼포먼스도 가능한 팀이다.

 

한국 관객에게는 '떼창' 포인트가 확실한 'Girls and boys', 그리고 'Song 2'가 맞춤이겠고, 히트곡인 'Coffee and TV' 정도는 외워서 부르겠지. 'Pyongyang'은 조금 위험할 수도 있을 텐데. 팬서비스로는 'London loves'를 'Seoul loves'로 바꿔 불러주지 않을까……. 참 부끄러운 수준의 상상력이지만, 선물상자 리본을 풀기 직전의 마음을 떠올려 공감과 이해를 구한다. (홍은솔)

 

Girls and boys
Coffee and TV
This is a 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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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 페리 (Katy Perry)

 

내한을 바라는 아티스트는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보고 싶은 가수는 단연코 케이티 페리다. 학창 시절 'I kissed a girl'의 가사를 보고 깜짝 놀랐던 소녀는 어느새 훌쩍 자라 그의 '19금' 공연만 기대하고 있더란다. 분명 가사는 도발적인데, 그걸 전달하는 가수 특유의 발랄함 때문에 노래가 남녀노소 즐길만한 팝으로 둔갑하는 마법. 케이티 페리만의 능력이다. 실제로 <Teenage Dream>은 트랙의 반이 검열대상이지만, 알록달록한 탑과 글리터 수영복을 입고 시원하게 목소리를 내지르는 아티스트 덕분에 여름에 제격인 세트 리스트를 연출한다.

 

이렇게 다소 가벼운 분위기로 예열된 무대는 'Waking up in vegas'류의 록 넘버로 후끈 달아오르고 'Roar'에서 비상하지 않을까. 프리즈매틱 투어와 슈퍼볼 하프타임 쇼에 등장한 말, 사자상, 그 위에 우뚝 서 있는 아름다운 여신. 무대에서만큼은 세상을 지배했던 클레오파트라의 현신이다. 대미는 누가 뭐래도 'Firework'일 수 밖에! '당신은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자체입니다. 당신은 불꽃이니까요.' 듣는 이와 부르는 이 모두 용기를 얻어가는 희망 찬가다. 노래 제목처럼 스스로 빛나는 케이티 페리. 다음 투어 때는 꼭 와주길! (정연경)

 

E.T
Firework
Ro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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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스 스프링스틴 (Bruce Springsteen)

 

물론 이제 빨간 띠를 이마에 매고 분노를 토해내는 '노동계급의 대변인'을 기대하지 않지만, '록의 보스'임을 말해줄 전성기의 강성 무대도 재현이 어렵겠지만, 그래도 1970년대와 1980년대에 걸쳐 드물게 미국인으로서 미국을 비판하는 그 반국가주의와 반골의 진정성을 음반 아닌 라이브로서 확인하고 싶다. 영국의 평론가 찰스 샤를 머레이는 그의 음악을 '백인 알앤비'의 진수로 규정했지만 사실 'Born to run', 'Thunder road', 'Born in the USA', 'Streets of Philadelphia'는 펑크(punk), 포크, 컨트리, 하트랜드 등 다종(多種) 장르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스타일. 그가 왜 뉴 딜런, 뉴 스톤스이었는지를 공연이 말해줄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선 미국적이고 포크 컨트리 색채가 있는 음악을 꺼리는 통에 전성기에도 그의 음반은 잘 나간 편이 못되었다. 화염과도 같은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내한공연이 그런 청취 관행에 카운터펀치가 되기를 열망한다. 미국으로 이민 간 친구가 1985년 가을 즈음, 자신이 사는 워싱턴 디씨에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왔다면서 공연을 '용암의 분출' 운운하며 자랑했을 때 얼마나 부러웠던지.. 30년도 더 흘렀지만 정말 나도 내가 사는 이곳에서 그의 무대를 보고 싶다. (임진모)

 

Born to run
Hungry heart
Brilliant disgu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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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빈 해리스(Calvin Harris)

 

포브스 선정 4년 연속 DJ 수익 1위를 차지한 남자, 캘빈 해리스(Calvin Harris)는 다프트 펑크, 데이비드 게타 등의 유려한 프랑스 일렉트로닉 명사들과 맞서 브리티시 특유의 감성을 전 세계 대중음악계 전반에 걸쳐 퍼뜨리고 있다. 지난해 전 연인 테일러 스위프트와 한 차례 소란을 겪기도 한 그는 2007년 '디스코를 창안했다!(<I Created Disco>)'라는 패기만만한 선언을 시작으로 전자음악 신에 침투하였다. 디스코와 팝, 하우스를 거쳐 오늘날 힙합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만능 프로듀서로서의 기량을 마음껏 뽐내고 있는 그는 그야말로 현재진행형 슈퍼스타이다.

 

데뷔 초 내한 전력이 존재하지만 3집 <18 Months>기점의 팝 성향이 이전 음악과는 사뭇 다르기에 더욱 보고 싶은 뮤지션이다. 독창적인 음악적 감각을 바탕으로 리아나, 엘리 굴딩 등 매력적인 팝 보컬을 기용하여 유럽 전역에 이름을 알리고 대서양을 건너 빌보드 차트까지 점령한 성공신화가 그러한 욕구의 원유를 방증한다.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이 한창 지분을 높이고 있는 시의에 발맞춰, EDM 트렌드를 대표하는 그의 히트곡들을 국내 페스티벌 현장에서 함께 즐길 수 있길 바라본다. (현민형)

 

The girls
I need your love (Feat. Ellie Goulding)
This is what you came for (Feat. Rih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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닐 영 (Neil Young)

 

'닐 영'하면 통기타와 하모니카를 매고 가녀린 목소리로 'Heart of gold'를 부르는 모습이 가장 먼저 기억난다. 그리고 육중한 기타 리프에 떼창을 유발하는 'Hey hey, my my (Into the Black)'이 떠오른다. 그 외에도 전자 음악, 로커빌리 등과 같이 기나긴 활동에 비례한 스타일의 변화무쌍함이 누구보다 그를 잘 말해준다. 이미 거장 반열에 올랐지만, 2016년에도 변함없이 앨범을 내며 이름을 따라 아직 건재함을 증명하는 중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 휘트니 휴스턴, 밥 딜런, 폴 매카트니를 비롯한 전설급 뮤지션들의 공연으로 국내 분위기가 뜨거웠다. 그들이 만든 대중음악의 역사를 영접하는 그 시간과 공간은 천국에 다다랐다. 그에 반해 최근 프린스, 척 베리, 데이비드 보위를 위시해 내한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별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의 건강을 헐뜯는다기보다는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한국 나이로만 벌써 73세에 이른 지금 혹시나 그를 기다리는 소망이 영원한 기다림으로 바뀌지 않길 바랄 뿐. 어서 빨리 날아와 들려줬으면 좋겠다. 로큰롤에 생명을, 살아있음을. Rock and roll can never die! (임동엽)

 

Heart of gold
Like a hurricane
Hey hey, my my (Into the bl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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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케이드 파이어 (Arcade Fire)

 

아직 내한 공연을 가진 적 없는 뮤지션이 누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각 분야의 레전드로 박제되어있는 존함들보다 이 밴드의 이름이 먼저 떠올랐다. 캐나다 출신의 인디 밴드로 시작하여 으리으리한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성장한 아케이드 파이어는 데뷔 이래 15년이 넘는 기간 동안 한 번도 한반도를 밟은 적이 없다.

 

한동안 이들의 라이브 영상들을 찾아보는 것이 일상일 때가 있었다. 애수와 고양이 공존하는 음악과 유랑극단을 연상시키는 퍼포먼스, 특히 윌 버틀러(Will Butler)의 광기가 서려있는 드럼 퍼포먼스에 매료되었던 나는, 만약 이들의 <The Suburbs>가 그래미 어워즈의 올해의 앨범 부문을 수상하지 못하고 그저 평단의 수혜만을 받는 밴드로 남았다면 아마 한 번은 오지 않았을까. 라는 이기적인 상상을 해보기도 했다. 아아. 오기만 한다면 떼창 한 번 지대로 해줄 수 있는데! (듣고 있나요?) (이택용)

 

Rebellion(Lies)
Sprawl II (Mountains beyond mountains)
Here comes the night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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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니 미첼 (Joni Mitchell)

 

도심 한복판에서 모든 사람이 지워지고 오직 둘만이 존재한다는 느낌을 가져본 적 있는가? 난 있다. 바로 조니 미첼의 <Blue >를 들었을 때. 그 순간 세상엔 나와 조니 미첼뿐이었다. 처음엔 목소리에 반했다. 맑으면서도 서늘하고, 수줍으면서도 깊이 있는 그것. 푸른빛 감도는 앨범 자켓은 또 어찌 그리 멋지던지! 듣는 내내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그의 내한을 기다리는 이유가 또 있다. 많은 이들과 시대를 공유한 세대불문 가수이기 때문. 너울거리는 옷과 노래의 담긴 메시지는 우드스탁 세대를 대표했고, 매 시즌 '소환'되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 명장면에는 그의 CD와 노래가 등장한다. 몇 년 전 열린 70주년 콘서트에서는 '스웨그(Swag)'넘치게 리듬을 타며 여전히 젊음을 보여줬다. 중장년, 청년 모두를 아우르는 능력 덕분에 어쩌면 콘서트 장에서 '세대 간 통합'이 이뤄질지도! 다만 우려스러운 건 그의 건강. 부디 아프지 말길, 어느 시의 제목처럼 멀리서 빈다. (강민정)

 

Woodstock
Both sides, now
Free man in 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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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

 

사실 저스틴 팀버레이크는 한국에 방문한 적이 있다. 엔싱크의 막내였던 1997년, 그는 열일곱 나이에 팀의 아시아 프로모션 일환으로 국내 팬과 마주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된 찰나의 만남으로부터 20년. 당대를 양분했던 백스트리트 보이스와 엔싱크에서 성공적으로 솔로 커리어를 쌓아올린 이는 오직 그뿐이다. 'Sexyback', 'Suit & Tie'와 지난해 'Can't stop the feeling' 등 글로벌 히트곡도 만만찮다. 탄탄한 가창력과 댄스 스킬, 근사한 옷맵시까지! 이제 그의 위상은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팝 아이콘에 이른다.

 

그의 공연이 댄스 일색일 것이란 지레짐작은 금물. 특유의 유려한 팔세토와 매력적 블루 아이드 소울이 듣는 재미를 확실히 책임진다. 역동적 춤사위에도 흔들림 없는 라이브는 아무리 봐도 놀랍다. 최근 투어에는 풍성한 브라스 사운드가 특기인 25인조 백밴드 테네시 키즈(The Tennessee Kids)가 합류해 음악적 밀도를 높였다. 밴드와의 빈틈없는 호흡으로 공연장에는 흥겨운 펑크(funk) 그루브와 역동적 에너지가 끊이질 않는다. 감히 마이클 잭슨에 비견될 만큼 시청각에 두루 강한 그를 늘 간접 경험해야 했던 것이 못내 한스럽다. 이제는 그의 독보적 퍼포먼스를 피부로 느끼고 싶다. (정민재)

 

Like I love you
Mirrors
Can't stop the fee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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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레이(Glay)

 

일본 뮤지션이라면, 비주얼계 만큼 수요가 확실한 분야도 없다. 엑스 재팬도, 라르크 앙 시엘도, 루나 씨도 - 비록 카와무라 류이치 홀로이긴 했지만 - 내한했으니, 남은 건 이 팀 정도가 아닌가 싶다. 요시키가 진두지휘하던 <Extasy Records>에서 데뷔한 이래 20년이 넘도록 높은 인기를 구가중인 네 명의 록 대디, 글레이 이야기다.

 

1988년 당시 고등학생이던 테루와 타쿠로가 홋카이도에서 활동을 시작해 도쿄로 근거지를 옮겨 지금의 라인업을 완성한 후 인디즈 활동을 이어나간 그들. 이 때만 해도 생업을 전전하며 어렵게 무대에 서던 상황이었으나, 공연장을 찾은 요시키의 눈에 띄어 염원하던 메이저 데뷔를 완수하게 된다. 이후 보위를 전담했던 사쿠마 마사히데를 프로듀서로 섭외, 음악적 골격을 완성함과 동시에 팝록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굳혀나가며 승승장구. 13장의 정규작과 54장의 싱글, 수없는 라이브 개최를 통해 살아있는 전설로 록 신에 군림하고 있는 중이다.

 

2013년에 한차례 내한공연이 취소된 전례가 있는 만큼, 한국을 찾아 그때의 아쉬움을 날려버렸으면 하는 바람이 한 가득이다. 여전히 하드한 공연 스케줄을 이어가고 있는 만큼 퀄리티에 대해서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될 듯. 관록이 붙을 대로 붙은 멤버들의 연주, 세월이 지나도 전혀 폼이 떨어지지 않는 목소리를 들려주는 테루의 보컬은 지금이라는 시대에 글레이의 영역이 선명히 남아있음을 증명할 것이다. 글레이의 퍼포먼스가 국내 내한공연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될 수 있기를, 일본음악 마니아로서 기다리고 또 기다릴 뿐이다. (황선업)

 

(음역대가 높아 쉽지 않겠지만) 떼창이 예상되는 시그니쳐 'However'
분위기를 띄우는 데 적격인 라이브 대표곡 '彼女の”modern..."'
싱글이 아닌 앨범 수록곡이었음에도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듣고 있으면 마음이 뭉클해지는 'Pure s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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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드릭 라마 (Kendrick Lamar)

 

시간이 지나 진가가 와 닿는 게 몇 있다. 개인적으로는 '소주'가 그렇고, 지긋지긋했던 '학창시절'이 그렇고, '켄드릭 라마'가 그렇다! 힙합 문외한이었던 내게 켄드릭 라마는 도무지 감 잡을 수 없는 난해한 이름의, 그래미 시상식에 자주 노미네이트되어 들어는 봐야겠으나 잘 듣지는 않는 뮤지션이었다. 그와 나의 연결고리는 우연히 본 2014년 그래미의 공연 영상에서 시작된다.

 

“이건 우리(켄드릭 라마와 나) 안의 소리다!” 나는 넋을 놨다. 인디록 밴드 이매진 드래곤스(Imagine Dragons)와 함께 한 무대는 속사포처럼 내뱉는 강렬한 그의 래핑과 밴드의 퍼포먼스가 어우러져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곧바로 분해한 앨범은 내 심장을 뜨거운 기름에 넣어 단숨에 튀겨낸다. <To Pimp A Butterfly>에는 처절한 흑인 사회가, <DAMN.>에는 불안한 자신의 삶이 빼곡히 녹아있었다. 이 압축된 가사는 다름 아닌 답답한 일상에서 내가 소리치고 싶은 것이었다. 그가 한국에 오면 달콤한 소주를 반주 삼아 그의 목소리를 안주 삼아 'mad city'를 주제로 프리스타일 랩을 선보일 테다. 진짜로. (박수진)

 

M.A.A.D city (Feat. MC Eiht)
DNA.
The blacker the be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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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로스미스 (Aerosmith)

 

록의 후끈후끈한 에너지를 온몸으로 느끼기에 에어로스미스의 공연장만한 곳이 또 있을까. 치렁치렁한 스카프를 잔뜩 두르고 쉴 새 없이 무대 위를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러대는 '입큰이' 보컬 스티븐 타일러, 그에 뒤질세라 몸을 마구 흔들며 돌처럼 땅땅한 기타를 들려주는 영혼의 파트너 조 페리, 두 야생마의 거친 질주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몸이 달아오른다. 거기에 흥이 넘쳐나는 록 사운드의 융단폭격은 그야말로 '지금 즐기지 않으면 모두 유죄!'다. 이게 아메리칸 하드록 국가대표다!

 

1973년 데뷔 이후 크고 작은 부침은 있었지만 단 한 번도 로큰롤을 손에서 놓지 않은 이들이다. 'Mama kin', 'Sweet emotion', 'Back in the saddle' 같은 초창기 명곡들의 다듬어지지 않은 매력부터 'Love in an elevator', 'Eat the rich'처럼 능숙하게 리듬을 타는 곡까지 그들의 걸음걸음은 '로큰롤 종합 카탈로그'다. 수많은 명곡 중 최고는 역시 능글맞은 기타 리프와 짐승 같은 샤우팅이 인상적인 'Walk this way'! 런 디엠씨와 콜라보한 리메이크 버전도 유쾌한 뮤직비디오와 함께 크게 성공했다.

 

신나는 하드록과 더불어 감성적인 발라드도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영화 '아마겟돈'의 OST로 유명한 'I don't want to miss a thing'은 물론, 처연한 'Dream on'과 'Angel', 'Cryin''과 'Crazy' 같은 록발라드들은 시원시원한 로큰롤 사운드와 함께 에어로스미스 음악을 대표하며 이들이 '놀기만 하는' 그저 그런 양아치가 아님을 증명한다. 록 팬과 팝 대중 모두의 마음을 휘어잡는 초대형 로큰롤 비행선. 그 거대한 비행의 경유지에 'Seoul'이 찍힐 날을 기다린다. "COME THIS WAY!" (조해람)

 

Walk this way
Love in an elevator
I don't want to miss a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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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프트 펑크(Daft Punk)

 

일렉트로닉 뮤직 신에서 빠질 수 없는 존재이자 전설! 콜드플레이 이후 단독으로 주 경기장을 채울만한 주인공으로 이들이 떠오르고 있다. 'Alive'라는 이름을 걸고 투어를 하는 로봇들은 드디어 2017년을 맞이했다. 올해 'Alive 2017'이 있지 않겠냐는 루머가 돌아다녔던 것도 지구 팬들의 숙원이 담긴 결과일 테다. 이런 세계적인 들썩임(?)이 일어나는 건 수많은 명곡과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본 사람들이 정작 별로 없기 때문이다.

 

휴머노이드들의 투어 방식은 이렇다. 1997년엔 1집, 2007년엔 2집과 3집에서 주로 선별한 리믹스곡으로 세계를 돌아다닌 후, 실황을 녹음해 앨범으로 발매한다. 이로 미뤄보아 2017년엔 그래미 5관왕을 차지했던 4집과 그간의 작품 위주가 아닐까. 무엇보다 퍼렐 윌리엄스가 내한 때 'Get lucky'를 불렀던 것처럼, 다프트 펑크의 'Get lucky'도 필수 리스트인 건 당연지사! 우리는 이들의 공전 주기가 10년인 걸 알았으니, 오작동이 없다면 'Alive tour'의 상징인 'LED 피라미드 무대'도 함께 올 거라는 소망을 품어보자.

 

아래는 2집과 <Alive 2007>에 수록돼 있어, 비교해서 들으면 좋을 추천곡이다. 주로 강렬한 전자음과 중독적인 후렴구가 등장하는 부분을 믹스해 앨범 버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Something about us'를 제일 좋아하지만 이건 역시 혼자 듣는 게 최고니까 제외. (정효범)

 

One more time
Aerodynamic
Harder better faster stron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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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청춘으로 남아있을 크리스 코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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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죽음이 그러하겠지만, 어떤 이의 죽음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 때가 있다. 갑작스러운 죽음이 그러할 테고, 개개인의 단편들로 박제되어버린 자의 죽음이 그러할 테다. 데이비드 보위가, 프린스가, 조지 마이클이 세상을 떠났을 때, 수많은 이들이 슬퍼한 이유는 단지 그들의 새로운 행위를 포착할 수 없다는 아쉬움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자가 남긴 족적들이 남은 이들의 순간순간에 깊이 스며들어있기에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기리고 되새긴다.

 

2017년 5월 17일. 크리스 코넬이 공연 후 인근 호텔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감시관들은 자살로 추정하고 있다. 향년 52세, 죽기엔 너무 이른 나이었다. 그는 1990년대를 풍미한 그런지의 아이콘이기 이전에 멈춤 없이 록을 탐구하고 해석한 로커다. 음역을 자유로이 넘나드는 탁월한 보컬과 하드 록에 최적인 거친 음색은 후대에 등장하는 록 밴드들에게 귀감이 되었다. 록이 침체기에 빠져든 지금, 그의 죽음이 시사하는 바가 더욱 크다.

 

사운드가든(Soundgarden)과 오디오슬레이브(Audioslave) 그리고 틈틈이 정진했던 솔로 활동으로 우리에게 끝없이 록을 들려주었던 크리스 코넬. 누군가의 청춘으로 남아있을 아홉 곡으로 그를 되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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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garden ? Flower (1988, <Ultramega OK>)

 

크리스 코넬은 뛰어난 보컬리스트이기 이전에 그런지의 특징이 되는 어둡고 염세적인 정서의 기반을 마련한 작가이다. 1988년에 발매된 사운드가든의 1집 <Ultramega OK>의 첫 트랙이자 1960년대 사이키델리아와 1970년대의 헤비메탈을 접목한 듯한 「Flower」는 자존감을 약물에 의지하는 당시 젊은이들의 황폐한 실상을 그려낸다. 뚜렷한 서사 없이 추상적인 화법으로 가사를 적는 작법이 두드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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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garden ? Jesus Christ Pose (1991, <Badmotorfinger>)

 

사운드가든의 음악은 펄 잼과 너바나의 것과 결이 달랐다. 이들의 음악엔 하드 록과 헤비메탈로부터의 받은 영향, 즉 금속 냄새가 진동하다. 1991년에 나온 그런지 음반들, 펄 잼의 <Ten>과 너바나의 <Nevermind>그리고 사운드가든의 <Badmotorfinger>을 비교해보면 그 차이가 명확히 드러난다. 「Rusty Cage」과 'Outshined' 등 명곡들이 수록된 음반은 멤버마다의 출중한 연주 실력에 기반을 둔 팀임을 입증한다. 특히 스래시 메탈 특징인 속도감 있는 기타 리프가 어우러진 「Jesus Christ Pose」는 음반의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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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garden ? Black Hole Sun (1994, <Superunknown>)

 

현재까지 천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밴드에게 상업적인 성공을 가져다준 <Superunknown>은 하드 록에 깊은 뿌리를 둔 전작들과는 다른 면목을 보인다. 좀 더 매끈하게 정제된 사운드에 그런지 특유의 음울함이 스며들었다. 그중에서도 묵직하게 떨어지는 드럼과 기타 사운드, 음침한 코러스를 장착한 「Black hole sun」은 여타 곡들에 비해 선율감이 상당한 록발라드 트랙. 곡을 들은 당시 너바나의 드러머, 데이브 그롤(Dave Grohl)은 '비틀스와 블랙 사바스를 완벽히 섞어냈다.'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절망을 품고 살던 당시 젊은이들의 송가이자 밴드의 최고 대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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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ndgarden ? Fell on black days (1994, <Superunknown>)

 

밴드의 그런지가 좀 더 세련되고 정제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곡. 크리스 코넬은 절제된 리듬과 블루지한 기타에 맞추어 담담한 음성을 통해 자신의 인생사에 고여 있는 공포와 실망감을 거리낌 없이 표출한다. 생에 대한 환멸과 비애감이 특히 두드러진다. 「Black hole sun」만큼이나 대중적인 소구력을 갖춘, 멋진 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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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oslave ? Like a stone (2002, <Audioslave>)

 

1997년 사운드가든이 멤버 간의 의견차로 해체하고 홀로 남은 그가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 RATM)의 새로운 보컬이 된다는 루머가 풍문으로 전해졌을 때, 모두들 갸우뚱한 반응을 보였다. 1990년대 후반의 록은 크리스 코넬의 그런지와 RATM의 랩 메탈로 나눌 수 있을 만큼 상극의 성질이었기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조합이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었고, 크리스 코넬과 톰 모렐로(Tom Morello)를 비롯한 RATM의 멤버들은 오디오슬레이브(Audioslave)라는 신선한 이름의 밴드로 새 출발을 꾀한다. 결과물 또한 신선했다. 명 프로듀서 릭 루빈(Rick Rubin)의 도움을 받아 제작된 첫 정규음반 <Audioslave>은 사운드가든과 RATM의 중간지점을 정확히 짚어낸다. 특히 크리스 코넬의 거친 음성과 톰 모렐로의 신랄한 기타 리프가 환상적인 합을 이루는 「Like a stone」은 그의 커리어 중 가장 높은 차트 순위를 기록하며 또 다른 대표곡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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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dioslave ? Be yourself (2005, <Out of Exile>)

 

오디오슬레이브의 소포모어 <Out of Exile>의 첫 싱글인 「Be yourself」이 함축하고 있는 메시지는 사운드가든의 것도 RATM의 것도 아니었다. 그는 메시지가 뚜렷한 가사를 쓰는 작가가 아니었기에 '너 자신이 되라'라는 상당히 보편적이고 교훈적인 어구가 조금은 어색하다. 그런지를 계승한 포스트 그런지 풍의 멜로디 진행과 톰 모렐로의 사이키델릭한 기타 플레이가 두드러지는 「Be yourself」는 크리스 코넬의 가장 희망적인 곡으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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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 Cornell ? You Know My Name (2006)

 

크리스 코넬은 그런지와 얼터너티브 록이라는 범위 안에 국한되지 않는 뮤지션이다. 그는 밴드의 단위가 아닌 솔로 활동으로 사이키델릭 록과 포크 록 심지어는 댄스 팝까지 시도하는데, <007 카지노 로얄>의 주제가인 「You know my name」은 현악이 가미된 하드 록 트랙으로 시리즈의 여타 주제곡들이 그러했듯 상당히 고풍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곡은 후에 솔로작 <Carry On>에 수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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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 Cornell ? Dead Wishes (2015, <Higher Truth>)

 

2015년에 발매된 <Higher Truth>은 그의 유작이 되었다. 음반은 그의 디스코그래피 중 가장 유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동시에 역시 그가 탁월한 보컬리스트였음을 다시금 증명한 작품이다. 어떠한 스타일과 장르에도 잘 어우러지는 그의 목소리는 「Nearly forgot my broken heart」나 「Through the window」 등 부드러운 트랙들에서 색다른 진가를 발휘한다. 특히 「Dead Wishes」는 그의 음성이 30년이란 세월에도 무뎌짐이 없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트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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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mple of the dog ? Say Hello 2 Heaven (1991, <Temple of the dog>)

 

다시 1990년대로 돌아가, 사운드가든과 펄 잼의 멤버들은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한 마더 러브 본(Mother Love Bone)의 보컬 앤드류 우드(Andrew Wood)를 추모하기 위해 템플 오브 더 독이란 프로젝트 그룹을 결성한다. 그룹의 유일한 음반<Temple of the dog>엔 「Hunger striker」과 「Reach down」 등 초창기 사운드가든의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트랙들이 수록되었지만, 그중에서도 평소 앤드류 우드와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던 크리스 코넬이 친구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쓴 「Say Hello 2 Heaven」이 리스트의 끝자락에 가장 적합하지 않을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앨범 커버, 누가누가 제일 멋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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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 커버만 봐도 음악의 양질을 알 수 있다!'라는 대중음악계의 오랜 믿음은 여전히 유효하다. 앨범 커버가 실제 음반의 포장지로 쓰이던 LP 시절은 물론이고 뒤를 이은 CD매체, 이제는 커버의 물리적인 기능이 사라진 디지털 음원에 이르기까지. 앨범 커버는 눈으로 볼 수 없는 사운드 감촉을 형상화하며 음악 감상의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뮤지션들은 각자의 음악적 정체성을 사진, 그림, 일러스트 등 다채로운 분야의 아트워크를 활용하여 뽐내곤 한다. 국내에선 한대수의 <멀고 먼 길> (1974)이 그 효시 격. 앨범 커버에 대한 그들의 정성을 찬미하며, 2000년대 이후 매력적인 감상을 선사한 국내 앨범 커버 21선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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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 <Tai Ji> (2000)

 

서태지는 음반을 내고 활동하면서 음악뿐 아니라 패션, 춤 등 비주얼적인 부분과 전체 콘셉트까지 고려한 최초의 뮤지션이었다. 앨범 아트워크도 예외는 아니다. 데뷔반을 빼고는 앨범의 주제나 심벌을 이미지화했다. 그는 앨범마다 독특한 구성을 추구했는데 재질로 보면 투명한 필름지로 제작된 7집 <Issue>가 압권이다. 아트워크의 내용과 파격적인 면에서는 6집을 단연 꼽을 수 있다. 이 앨범은 특별한 제목이 없기 때문에 <Tai Ji> 혹은 타이틀곡인 <울트라맨이야>로 불린다. 케이스는 강렬한 빨간색으로 (5집은 파란색이었다.) 태양처럼 불타는 이미지가 곡의 수록곡들인 뉴메탈 장르와 잘 어울린다. 디자인은 뮤직 비디오는 물론이고 음반 디자인을 오랫동안 맡아왔던 전상일이 담당했다. 그는 “서태지는 멸균적 클린업을 하는 완벽주의자”라고 표현한 적도 있어 그의 작업 스타일을 짐작케 한다. 한자도 한글도 아닌 '태지체'가 등장하기도 하고, 기하학적인 상징이 많이 쓰는데 이는 신비주의 서태지가 팬에게 보내는 신호이자 선물이기도 하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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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스파이스 - <D> (2001) 


소속사와의 갈등이 첨예하게 드러났던 3집을 뒤로하고, 연료를 채워 다시 비행에 나선 4집의 커버이다. 먼저 엔진 소리('Drrrr!')와 비행기 그림은 팝 아티스트인 로이 릭턴스타인(Roy Lichtenstein)의 <꽝!>을 떠올리게 만든다. 전체적으로 오렌지 계열의 색상을 사용해 활기찬 감정을 전면에 나타냈고, 촘촘한 망점의 사용으로 기계적인 명암 효과를 더했다. 음반의 표지는 먼저 대표곡이자 타이틀 송인 '항상 엔진을 켜둘께'를 정하고 나서야 최종 확정됐다.

 

경쾌한 브라스 편곡, 새로운 악기의 도입으로 명랑한 매력을 되살린 델리 표 '모던 록'과 난해하지 않고 명쾌하게 다가오는 대중 예술 '팝 아트'는 서로 꽤 닮아있다. 이러한 연결고리는 이들의 음악 세계를 효과적으로, 미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는 통로가 되어줬다. 둘의 인연은 '아토마우스'로 유명한 이동기 작가와 <聯 '연'>의 앨범 커버에서도 이어진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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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 - <琉璃假面(유리가면)> (2004)

 

꽤 직설적으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녹슨 철제 같은 색감의 부채꼴을 등지고, 붉은 드레스를 입은 채 고고하게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이 말이다. 눈가에 내려앉은 맑은 톤의 섀도는 게이샤의 것을 빌린 듯하나, 힘이 서린 눈동자는 분명 누구의 것도 아닌 그 자신이다. 적어도 김윤아에게는 작가와 작품을 동일시하는 게 무리가 아니다.

 

흥미로운 건 그토록 자의식 강한 작품임에도 사진에서 정면 응시가 부재하다는 것. 포토그래퍼 김우영이 포착한 그는 두 팔의 방향과 시선이 도달하는 지점이 서로 정반대를 이룬다. 그에게는 손끝조차 가면이다. 그러나 결국 그 가면은 '유리'로 만들어졌으니, 외피는 투명해지고 진실을 드러낸다. 그리고는 심홍(深紅)의 이미지와 꼭 어울리는 강렬한 비가가 흘러나오자 마침내 지울 수 없는 인상이 새겨진다. 2004년의 봄, 인간 김윤아의 혼에 내재한 불안, 증오, 절망, 열망, 애상, 그리고 광기의 색은 온통 적갈빛이었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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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 - <순간을 믿어요> (2004)


공전의 히트를 남긴 전작 <꿈의 팝송>이후 자신들에게 규정된 시선에 대한 반발로 만들었다. 전에 없던 강한 에너지와 단순한 가사. 심지어는 영어를 사용하지 않던 특징까지 스스로 깨버리나 잘 주조한 대중 지향적 입맛과 안정적인 곡 만듦새로 폭발적 관심의 연타 홈런을 날린다.

 

견고함은 커버에서도 드러난다. 결성 초기 함께했던 키보디스트 류한길의 손을 빌려 탄생한 표지는 쓸쓸하고도 영롱한 음악 여정을 무리 없이 표현한다. 2집 <후일담>, 3집 <꿈의 팝송>역시 그의 작품. 원래 이소라에게 갈 뻔했지만 결국 선점했다는 후문이다. 그만큼의 욕심과 일편의 반발심으로 무장한 앨범.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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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 <눈썹달> (2004)

 

독특한 질감의 헝겊에 수 놓인 초승달, 그 옆에 작은 물방울 모양의 별 몇 개. 전체적인 색조는 회색이다. 음악을 듣기 전, 상상의 나래로 들어서는 입구의 모양새 정도 일까. 그 앞에 서서 느끼는 두근거림과 기대감이 한데 어우러져 묘한 긴장감을 조성한다. 트랙의 흐름이 '별'에 닿을 즈음 자연스레 커버 이미지가 연상되는데, 이는 앨범의 시작이 소리에만 국한되지 않음을 뒷받침한다. 전체 이야기를 그대로 축약해 놓은 아트워크는 부드럽게 굽이치는 고유의 무드를 강화한다. 음력 초사흗날 저녁, 서쪽 하늘에 낮게 뜬 눈썹달이 보일 무렵, 어김없이 앨범 수록곡들이 떠오르는 것은 탁월한 이미지 메이킹 덕분이다. 명반이 가진 특유의 매끄러운 내러티브를 뒷받침하는 건 히든 트랙이라 할 수 있는 표지에서부터 시작할지도. (노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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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넬 - <Healing Process> (2006)

 

건조하고 음울한 앨범의 감성이 커버를 통해 가감 없이 드러난다. 아트워크를 맡은 이는 일레스트레이터 아이완. 그의 미적 시그니처인 회푸른 색감은 음악 전반의 아득한 형질을 그대로 닮아 있다. 검게 물든 인연의 끈이 두 사람을 연결하고 있지만 그것은 가슴을 꿰뚫는 창이 되어 서로를 죽음으로 내몬다. '관계'는 생사를 쥐락펴락하는 양날의 칼임을 형상화한 셈이다. 이러한 악성 우울을 겪는 이들을 위해 넬이 내세운 전략은 동질감. 김종완이 표출해낸 지독히도 솔직한 절망은 여럿 대중과 공감대를 형성하며, 역설적이게도 '힐링'을 불러일으켰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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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정치마 - <201> (2008)

 

'디자이너가 사퇴해서 그림판으로 그렸어요'라고 해도 믿을 법한 초기 앨범커버. 해적판 앨범인 양 묘하게 싼 티 나는 것이 B급 감성을 자극한다. 핑크 플로이드의 키치적 해석인가, 싶어 호기심에 음반을 들어보면 이거 완전 물건이다. 좋아해달라며 성의 없이 내지르는 조휴일의 목소리와 정제되지 않은 개러지 사운드, 디스코의 재치까지 즐기고 커버를 다시 보니 검정치마의 음악 세계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가 있을까 싶다. 음반사 문제로 교체된 아트워크에는 검정치마가 없다. 조휴일만 있을 뿐.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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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하이 - <魂: Map The Soul> (2009)

 

마이크를 집어 들고자 하는 소년. 세상에 삿됨 없는 목소리를 전하고자 하는 에픽 하이를 상징하고 있다. 기존 소속사인 울림 엔터테인먼트에서 나와 독립 레이블 '맵더소울'을 창립한 그들은 '혼'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북앨범 <魂: Map The Soul>을 발매했다. 음악 안에 오롯이 결집된, 순수를 좇는 열망을 순백색 커버와 어린 아이를 통해 형상화하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이 의연히 마이크를 들지 못하는 까닭은 여전히 자본주의 원칙 아래 삶을 살아나가는 사회 구성원이기 때문이다. 책 후면, 어른이 된 아이 손에는 서류가방이 들려 있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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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믹 듀오 - <Band Of Dynamic Brothers> (2009)

 

군 입대를 앞둔 힙합 듀오는 안 가면 '죽일 놈'이 되는 그곳을 정면으로 돌파한다. 미국 전쟁물 <밴드 오브 브라더스>와 군대 프라모델을 주로 제작하는 아카데미사 특유의 구식 표지를 패러디한 제목과 커버로 피할 수 없는 운명을 재치 있게 맞이한다. 가장 재미있는 커버 중 하나지만 가장 슬픈 커버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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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프림 팀 - <Supremier> (2010)

 

키아누 리브스 주연의 B급 영화 <빌과 테드의 엑설런트 어드벤처> 포스터를 패러디한 커버디자인은 당시 수직상승중이었던 '언더그라운드 루키'의 정체성을 반영하고 있다. 디자인 담당자 이기백(a.k.a. SXIVA)은 영화 주인공이 록을 좋아하는 '너드'였듯 사이먼D와 이센스를 홍대 B급 너드로 보고 패러디 모티브를 잡았다. 회화 전공답게 사진이 예쁜, 약간은 화려한 그림으로 빚어졌다.

 

이기백은 의뢰를 받았을 때 이상하게 언젠가 본 서양야동의 초기 페스티벌 장면도 떠올라 거기 묘사된 가두행진, 풍선과 공룡 등으로 들뜬 분위기를 담아냈다고 밝혔다. 이건 신예 슈프림팀이 인정받기를, 타이틀곡 대로 'Step up'을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뒤에는 빈지노, 도끼, 프라이머리 등이 보인다. 이기백은 'Step up'의 뮤직비디오도 감독했다. 커버만으로 풋풋하나 자신감에 충만했던 슈프림팀의 데뷔시절을 전하는 '리얼' 아트웍이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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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운 아이드 소울 - <Browneyed Soul> (2010)

 

이름을 내걸었다. 그래서인지 앨범에 쏟은 마음이 상당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이들의 정성과 손길이 머물러 있다. 제일 먼저 눈에 보이는 앨범 커버 역시 멤버 나얼의 작품. 나얼은 화가로도 활동하며 전시회를 여는 등 미적 감각을 인정받은 인재다. 또한 그의 참여는 브라운 아이드 소울의 멤버로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것을 커버에 녹여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소울은 본디 흑인의 음악이다. 후에 소울 음악을 하는 백인들이 생겨났고, 이것을 블루 아이드 소울이라 불렀다. 브라운 아이드 소울이라는 작명은 여기서 기원한다. 거칠게 말하면 황인이 부르는 소울 음악이라는 뜻이다. 이를 알고 나면 연필 사이 노란 색연필 4자루가 이들을 뜻함을 알 수 있다. 소울이 대중적이지 않던 시기, 우직하게 밀고 온 이들의 시간을 보여주듯 손 때 묻은 연필에서 세월이 느껴진다. 오랫동안 그 자리를 묵묵하게 지켜온 장인들의 음악. (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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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투애니원 - <2nd Mini Album> (2011)

 

팝아티스트 마리킴의 대표작 '아이돌(Eyedoll)' 시리즈가 앨범 커버를 장식한다. 투애니원 멤버들의 개성이 적절히 반영된 캐릭터는 표지와 속지, 삽입곡 'Hate you' 뮤직비디오에 등장한다. YG엔터테인먼트 대표 양현석은 강남의 한 수입 가구매장에서 마리킴의 작품을 보고 흥미가 생겼고, 이후 컬렉터를 통해 그에게 단독으로 앨범 작업을 의뢰했다. 팀을 상징하는 숫자인 21에 맞춰 앨범에는 총 21장의 일러스트가 담겼다. 앨범 아트가 단순히 장식에 머무르지 않고 팀의 전체적인 이미지 메이킹에 주도적으로 활용된 건 유례없는 일이었다. (노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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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니 - <Chapter 1. 'Dream Girl - The Misconceptions Of You'> (2013)

 

하나의 암호다. 낙서처럼 뒤엉킨 연두색 선 위로 멤버들의 사진과 이미지를 콜라주 기법으로 표현했다. 이와 대조를 이루는 건 빛 잃은 슈트. 의미를 단숨에 파악하거나, 이미지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사실 이 무질서함은 의도된 은유와 상징이고, 앨범 커버는 전체를 설명하는 '스포일러'다.

 

쉽게 눈치채기는 어렵다. 앨범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의 단서 역할을 하기 때문. 이 '큰 그림'의 설계자는 SM Ent의 민희진 실장으로, “SM은 민희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주얼 분야에서 큰 변화를 일궈낸 인물이다. 커버 안에는 수록곡 뿐만 아니라 <Chapter 2. The misconceptions of me>의 힌트도 들어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노래와 이미지를 병치해보며 맞물릴 때의 쾌감을 느껴보시길. (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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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 - <Hello> (2013)

 

2013년은 단연 조용필의 해였다. '가왕'은 전작 <Over The Rainbow> 이후 10년 만에 발표한 19집 <Hello>로 대중과 평단을 완벽히 사로잡았다. 예상치 못한 역공이었다. 일렉트로니카와 힙합, 정통의 록 사운드를 다채롭게 구성한 '트렌디 세트'가 여유롭게 세대를 아울렀다. 차트를 뒤흔든 메가 히트 'Bounce'와 'Hello'는 그의 또 다른 대표 곡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제는 초등학생도 조용필이 친숙하다.

 

새로운 문법을 적극 수용한 음악만큼이나 아트워크도 독특했다. 1979년 발표한 1집 이래 표지에 그의 얼굴이 없기는 처음이었다. 대신 무대를 연상케 하는 까만 배경에 형형색색의 조명 광선을 배치하고, 자신이 직접 쓴 'Hello' 문구를 큼지막하게 박았다. 사전 정보 없이는 그의 앨범임을 인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모험적인 디자인이었다. 환골탈태한 음악의 시각화! 내용물을 명료하게 반영한 커버 아트는 그 해를 기억하는 하나의 상징이 됐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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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 <Modern Times> (2013)

 

복고풍 스윙 재즈를 시도한 <Modern Times>의 음악성을 단번에 설명해주는 훌륭한 커버다. 흑백의 색감으로 1930년대 뉴욕의 이미지를 그대로 담아냈고, 정면을 응시하는 아이유의 뚱한 표정은 시크한 매력으로 다가온다. 모노톤 배경과 대비되며 고전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금색 폰트는 커버의 멋을 확 살려주는 포인트. 고급 패션 잡지의 표지처럼 튀지 않는 배경과 선의 조화로 인물에 시선을 집중시킴과 동시에 앨범의 음악적인 색채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아트 디렉터의 빼어난 미적 감각만큼 앨범에 담은 음악도 훌륭했다. 스윙 재즈 풍 타이틀곡 '분홍신'이나 'Modern Times', 기타리스트 박주원과 함께한 집시 재즈 '을의 연애', 보사노바 'Havana'까지 가요시장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스타일이 트랙리스트를 밀도 있게 채우고 있다. 물 만난 듯 반주 위를 뛰노는 아이유의 곡 해석력도 일품이다. 흑백 표지 아래에 품은 다채로운 음악으로 아이유에게 당당히 '팔방미인' 타이틀을 안겨 준 듣기 좋은 앨범!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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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달 - <그동안 뭐하고 지냈니?> (2015)

 

밤하늘에 떠 있는 두 개의 달과 그 주위로 피어있는 꽃. 빈센트 반 고흐의 결을 닮아 동적이면서도 따뜻함을 내포했다. 이는 2014년 두 번째 달의 공연에 맞춰 디자이너 오민이 선보인 드로잉 아트워크로 밴드를 시각적으로 아름답게 그려냈다. 작품 자체로도 팀의 정체성이 잘 드러나며 그다음 해인 2015년 발매한 <그동안 뭐하고 지냈니?>의 앨범 커버로까지 자리매김해 소장 욕구를 높였다. 보통 앨범을 구매하면 가장 먼저 표지의 이미지를 마주친다는 점에서 이 그림을 보는 순간 누구나 떠올릴 것이다. 월드 뮤직과 에스닉 퓨전, 최근에는 국악까지 발을 넓힌 크로스 오버 밴드 '두 번째 달'을.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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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이 - <SEOULITE> (2016)

 

서울의 소울, 음반 <SEOULITE>겉면에는 수도의 상징들이 오밀조밀 모여있다. 두 번에 나눠 발매된 앨범이라 커버 또한 낮과 야경 두 버전으로 담겼다. 파랑과 분홍 몇 가지 색으로 채운 서울은 레어버스(Rarebirth)의 그림. 그가 작업한 진보의 'Fantasy'나 딘의 'I'm not sorry' 모두 뚜렷한 색채로 시선을 사로잡은 표지들이다.

 

석양이 뿜어내는 핑크빛 색감은, 진한 보컬 뒤 아직은 수줍은 가수 본연의 모습과 닮았다. 종일 북적거리다 밤이 되면 깊어지는 도시의 풍경 또한 소울 음악과 어우러진다. 분위기에 따라 둘로 나뉜 노래들과 일러스트를 연결지어 듣는 재미가 있다. 과한 화보용 자켓 사진보다 이하이에게 잘 어울렸던 앨범 워크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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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지노 - <12> (2016)

 

빈지노의 아트 크루 'IAB 스튜디오'는 이미 유명하다. 이들은 빈지노의 싱글 앨범과 뮤직비디오, 그리고 최근에는 빈지노와 빼빼로, 던힐 등 기업 콜라보레이션도 함께 했다. 빈지노를 비롯해 김한준, 김동민, 스티브로 구성된 4인조 팀으로 2013년 빈지노의 싱글 'Dali, Van, Picasso'의 아트워크를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이런 협업은 빈지노가 조소과 출신이라는 영향도 크다. 그래서인지 앨범 이미지를 그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실물로 만드는 것이 큰 특징이다. 빈지노는 인터뷰나 방송을 통해 작업 모습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며 자신의 또 다른 정체성을 표출했다. 선명한 색, 심플하고 직관적인 작품들은 피제이, 에디킴, 수란의 앨범에도 등장하며 영역을 뻗쳐나가고 있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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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 - <신의 놀이> (2016)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 부분 수상과 시상 도중 트로피를 경매에 부친 퍼포먼스로 더욱 주목받은 앨범이다. 단정한 옷차림에 무겁게 내리 앉은 검은 배경. 최소한의 조명으로 무표정한 이랑의 얼굴을 부각한 음반은 개인의 일상과 사회에 대한 단념을 무게감 있게 녹여냈다.

 

커버는 밤섬 해적단 등이 소속된 비싼 트로피 레코드의 수장 박정근의 작품이다. 레이블 외에도 조광 사진관을 운영하는 그는 단편선과 선원들, 김사월 x 김해원의 앨범을 비롯하여 곽푸른 하늘과 사진집을 내는 등 인디 뮤지션과 많은 작업을 해오고 있다. 사회를 담은 음반과 그에 상응하는 퍼포먼스. 그 가치의 이미지가 앨범 커버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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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비티비(ABTB) - <Attraction Between Two Bodies> (2016)

 

인디씬 특히 붕가붕가레코드의 수석 디자이너 김기조의 작품이다. 그는 '지속 가능한 딴따라질'을 외치는 레이블 '붕가붕가레코드'의 창립 멤버이다. 장기하와 얼굴들, 눈뜨고코베인, 아침 등의 앨범 작업을 해왔고, 풍자가 가득한 키치와 강렬하게 각인되는 캐치(catchy)함으로 유명하다. 특히 복고풍 타이포그래피 '장방형 글꼴'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

 

'저건 분명 김기조의 작품이다'라는 확신이 드는 강렬한 포스를 가졌던 그가 최근에는 심플하면서 다양한 변주를 꾀하고 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ABTB의 앨범이다. 원래 컨셉은 앨범명대로 서로 카운터 펀치를 날리거나 연인이 껴안은 모습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김기조는 '차의 충돌'로 컨셉을 바꾸어 상징성을 더 부각시켰다. 실제 차 미니어처를 만들어 부딪치는 모습까지 연출한 뒤 그래픽으로 후처리를 했다. 아침의 <Hunch>에 이어 한 땀 한 땀 수작업이 들어간 '노가다 오브 노가다' 작품.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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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디 - <On And On> (2016)

 

SNS에 감성 사진으로 자주 등장할 법한 아트워크. 따듯한 색감의 조합과 그러데이션, 의미를 알 수 없는 오브제는 어딘가 '힙'해 보인다. 후디(Hoody)의 음악도 그렇다. 의미불명이 아니라는 점만 빼고. 앨범의 포문을 여는 'By your side (feat. Jinbo)'를 들어보라. 시작부터 앨범 커버 속 바닷가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할 것이다. 정확하면서도 부드러운 후디의 보컬은 알앤비는 물론, 디스코의 따스함을 계승한 하우스에서도 빛을 발한다. 그의 '힙'은 진짜배기. (정연경)

 

<채널예스> 베스트 기사를 댓글로 알려주세요! (~6월 30일까지)

 

http://ch.yes24.com/Article/View/33720
위 링크 하단에 댓글로 ‘2017년 기사 중  가장 좋았던 기사 1개’를 꼽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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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링크클릭!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가요 속 좋은 가사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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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는 음악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운율을 품은 노랫말은 시가 되기도 하고, 편지가 되기도 하며, 하나의 서사를 이뤄 짤막한 소설이 되기도 한다. 가사의 문학적 가능성은 이미 밥 딜런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동시에 가사는 현실을 반영한다. 희로애락이라는 지극히 보편적인 감성부터 시대를 향한 통렬한 비판까지. 사람들을 위로하고, 때로는 행동을 이끌어내는 말의 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오로지 가사에 의한, 가사를 위한 2000년대 이후의 가요 25곡. 우리의 기억을 휘감은 그 또렷한 언어를 음미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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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 인터넷 전쟁 (2000)

 

은퇴 선언과 번복 후 2000년 돌아온, 단지 가수 아닌 우리의 '사회적 리더'는 지지자들에게 교주와 같은 절대 지존이었다. 지켜주고 찢어주고 닦아준다는 표현이 소외와 억압당하고 있는 젊음에게 그가 당대에 어떤 위상의 위인이었던가를 말해주고도 남는다. “H.O.T와 젝키의 기획사는 들어라!!” 아이돌을 쏟아내며 거대해진 기획사의 음악 산업 독점시대를 겨냥한 한 '음악가'의 맹렬하고도 속 시원한 카운터펀치. 한사코 아버지가 싫어하는 음악만을 추구한 그의 당시 사운드 선택은 '하드코어'였지만 불변의 파워는 언제나 세대를 관통하는 시의적 노랫말에서 나왔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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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진 - 편지 (2000)

 

연이 끝에 다다른 것 같으니 이제는 그만 돌아서겠노라는 한 사람의 고별은 담담하기 그지없다. 이별에 응당 따를 법한 비애의 낱말들은 편지가 끝내 봉해질 때까지도 옮겨지지 못했다. 그 대신, 잠시나마 함께 해주었음에 대한 감사, 앞날의 미래를 향한 축언이 인연이길 바랐던 이에게 바치는 마지막 인삿말로 들어섰다. 이 덤덤한 문체 앞에서 슬퍼지는 사람은 정작 우리가 되어버린다. 울어야 할 단 한 사람은 노래가 끝나는 순간에 이르기까지도 애감을 표하지 않는다. 그 어디에도 슬픔을 적시하지 않은 구절들은 상대가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는 기도, 마음을 접겠다는 다짐이 삼킨 아픔을 우리의 몫으로 떠넘긴다. 다른 어떤 이별 노래보다도 애절함이 거대하게 밀려오는 것은 어쩌면 이 때문이리라. 헤어짐을 겪은 이가 눈물 자국을 감추고 써 내린 담백한 소회. 이 평온한 편지는 4분 40초 만에 '여기까지가 끝인가 보오/이제 나는 돌아서겠소'라는 두 문장을 2000년대 가요사에서 가장 애달픈 이별사로 만들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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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범 - 너를 위해 (2000)

 

사랑을 하다 보면 종종, 스스로 누군갈 사랑할 자격이 없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어두운 단면이 생성해내는 불안정한 마음은 상대방과의 끊임없는 반목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미안한 감정으로 결집된다. 사랑하는 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없음을 깨달을 때쯤이면 '너를 위해' 떠나야 함을 직감한다. 목소리의 주인공이 '임재범'이기에 더욱 처절히 들려오는 노랫말. 처음엔 그저 멜로디가 좋아 따라부르던 나는 철들 무렵, 사랑의 진액(津液)을 맛보고 나서야 진정으로 이 노래를 이해했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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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 힘을 내요 미스터김 (2000)

 

아직 인생의 목표도 찾지 못했건만, 취직하라는 소리에 등 떠밀려 시작한 사회생활. 어느새 꿈은 마음 한구석에 접어두고, 통일된 무채색 정장에 서류가방을 든 채 이름 없는 회사원1이 되어 쳇바퀴만 도는 미스터 김. 결코 낯설지 않은 우리네 삶이다. 하고 싶었던 일, 아직 늦지 않았다니. 일탈을 부추기는 아주 위험하고, 반항적인 노래다. 그렇다면 기꺼이 따라주는 것이 인지상정!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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샵 - 내 입술... 따뜻한 커피처럼 (2001)

 

작사가 원태연의 서정적이고 웹 소설같은 노랫말은 신승훈을 비롯한 여러 히트곡에서 만날 수 있지만, 래퍼만 3명이었던 샵의 노래에서 더욱 생생한 대화체로 전달됐다. 이는 이지혜의 애절한 보컬과 대비되어 이별을 설득하는 이와 관계를 이어가려는 여성의 구체적인 상황으로 끌어당긴다.

커피를 사이에 두고 마지막 말을 나누는 연인, 그사이 식어가는 커피는 끝을 앞둔 두 사람의 관계를 감성적으로 묘사한다. 곡의 분위기와 달리 서지영의 통통 튀는 랩도 귀여웠다. 그 시절 라임다운 '기리~위리~'는 숨겨진 중독 포인트다. 이별의 과정을 담담하고도 부드럽게 표현해 지금 들어도 세련된 노래다.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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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이 - 챔피언 (2002)

 

싸이의 노랫말은 언제나 귀 기울여 듣게 하는 매력이 있다. 영화 '베벌리 힐스 캅(Beverly hill cop)'의 수록곡 'Axel f'를 샘플링한 '챔피언'에는 해학과 통렬한 사회의식이 고르게 배어 있다. 집회 문화부터 분단된 현실까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온갖 것을 그의 시선으로 아우르며 '모두의 축제'로 인도한다. 재생하는 순간만큼은 계층도 대립도 없는 유토피아를 부르짖으며 그저 잘 노는 사람이 '챔피언'이라는 해답을 외칠 뿐이다. 가벼운 라임과 입에 감기는 익숙한 단어 그리고 인류애를 향한 메시지까지! 신라의 고승 원효가 부처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해 지은 '무애가'와 닮았다! 흥 많은 민족에게 제대로 놀 줄 아는 법을 명문화하여 몸소 알린 싸이 표 가사의 기원이 아닐까. (노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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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 Never ending story (2002)

 

김태원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기타리스트이며 뛰어난 작곡가임과 동시에 가장 정확한 단어를 쓰는 훌륭한 작사가이기도 하다. 부활의 침체와 개인적인 아픔 속에서 탄생한 'Never ending story'의 노랫말은 그의 수많은 명가사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헤어짐을 받아들이기 싫은 마음은 떠나면서도 '마치 날 떠나가듯이' 손을 흔드는 연인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상실감과 지독한 그리움은 떠난 이의 빈자리에 '같은 모습의 바람'으로 나타난다. 영화 같은 기적을 바랄 수밖에 없는 모든 실연 남녀의 마음을 처연한 은유로 담아낸 한국 발라드의 보석과도 같은 노랫말. 군더더기 없이 유려한 선율과 무너질 듯 여린 이승철의 애절한 목소리도 곡의 호소력을 높였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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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이발관 - 울면서 달리기 (2002)

 

언니네 이발관의 방향성이 새롭게 수립된 작품 <꿈의 팝송>. 타이틀에 걸맞게 드림 팝적인 면모가 두드러지는 '울면서 달리기'는 환상적인 분위기 덕분에 이별이라는 상황이 실제인지 꿈속인지 분간할 수 없게 만든다. 당신 없는 이 거리에서 달리는 나는 정말 현실 속 존재일까. 나를 잊은 거리는 과연 환상일까. 꿈에서라도 그대를 볼 수만 있다면.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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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 No. 1 (2002)

 

'달'은 역시 동서고금을 통틀어 최고의 소재다. 'No. 1'에서 달은 소녀와 그의 사랑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오랜 친구이자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슬픔을 모른 척 가려줄 수 있는 존재이며 그에게 못다 전한 사랑을 비춰주는 촛불이다. 밝고 신나는 곡의 분위기와 아련한 가사의 대비에서 달빛 아래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소녀의 뒷모습이 수채화처럼 번진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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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자두 - 대화가 필요해 (2002)

 

활동 시절 김과 밥처럼 달랐다는 둘은 커플 사이의 차이를 직관적이고 재치 있는 가사로 표현해왔다. 상대가 다정하길 바라는 자두와 무관심한 강두, 노랫말 속 캐릭터가 실제 가수와도 닮아 더 공감이 갔다. 팀의 곡 대부분을 써준 제작자 최준영은 명료하고 쉬운 이야기와 멜로디로 자두에게 여러 유행가를 선물했고, 후에는 노래 제목과 동명인 개그 프로의 삽입곡으로 사랑받았다. 대화 대신 티브이에 빠져있던 일요일 저녁 이 노래 뒤엔 늘 같은 대사가 나왔다. “밥 묵자.” (정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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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적 - 하늘을 달리다 (2003)

 

제목부터 고대 그리스의 이카로스 신화를 떠올리게 한다. 이적과 이카로스에게 하늘이란 통과해야 할 어려움이자 구원, 즉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다. 둘 사이에 다른 게 있다면 이적이 조금 더 거침없다는 점. 그에겐 두려움이 없다. 금방이라도 증기를 내뿜을 것 같은 전자 기타, 잘게 부서지는 드럼으로 만든 록 사운드가 이 무모한 선전포고를 돕는다. 그의 행동이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순수한 치기가 종종 이적(異蹟)을 일으키곤 한다. (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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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리 스파이스 - 고백 (2003)

 

여기에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우선 가사의 모티브, 야구의 탈을 쓴 순정 만화 <H2>에는 4명의 남녀 주인공이 등장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김민규가 부른 덕분에(?) 사람마다 다른 해석이 나오기도 했다. 친구를 좋아하지만 먼발치서 지켜본 이들과 열병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마음을 전달한 이들이 공감했던 '청춘 송'이자,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을 불러오는 곡. 만화를 보고 노래를 들으면 비로소 '고백'의 진가를 알게 된다는 솔깃한 후문도 있다.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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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 바람이 분다 (2004)

 

시와는 달리 노래 가사에는 주로 구어체가 쓰이는데, 이 곡은 독특하게도 몇몇을 제외한 문장 대부분을 '-ㄴ다'의 어미로 끝맺은 것이 특징이다. '나'의 시점에서 말하고 있긴 하지만, 관조적인 어투로 쓴 풍경 묘사가 선행해 마치 '나'의 이야기가 아닌 듯 짐짓 차분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추억을 다르게 적히”게 하는 짝사랑은 그 사랑 자체로 폭력이 된다. 그걸 깨달은 이는 마침내 그에게서 떠나 먼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그것이 버림받은 이의 마지막 배려일 테다.

사랑에 실패해 한없이 침잠하는 '나'의 우주와는 달리, 바깥은 따스한 공기와 재잘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내'가 없는 곳에서 그의 오늘은 어제와 같이 평화롭다. 고백하건대 나는 이소라를 즐겨 듣지 않는다. 이소라를 듣고 있으면 내 세상도 무너진다. 슬픈 음악이 나를 위로해줄 수 없다는 걸 그를 통해 배웠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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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Mot) - 날개 (2004)

 

이카로스가 좀 더 똑똑해진다고 해서 날기를 포기했을까. 함께하는 세상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을 것임을 알고서도 둘은 굳건했다. 그저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이를 부여잡고, 제 날개가 다 타버리도록 높고 뜨거운 곳으로 오른다. 이이언(eAeon)이 써 내려간 그리 길지 않은 문장 안에는 생의 마지막 사랑인 양 어떤 결말이든 받아들이겠다는 평온한 자세, 그리고 첫사랑처럼 맹목적인 태도가 공존한다. 체념한 후가 이토록 간절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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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 빙고 (2004)

 

('빙고'의 가사를 놓고 가로가 아닌 세로로 읽어보자. 터틀맨의 재치가 숨어있다.)

곡 자체는 가볍고 신나지만, 가사는 복무 신조와 십계명만큼이나 귀중하다. 쓸데없이 진지하지 않아 더 좋다. 듣기 편하고 따라 부르기 쉬운, 그야말로 대중적인 선율과 사운드를 만들어냈던 터틀맨은 매 곡마다 희망을 품은 공익적인 가사를 넣어 대중들을 고양했다. '사계'나 '비행기' 등 상당수의 가사들이 좋지만, 특히 '빙고'의 가사를 좌우명으로 삼고 살아간다면 정말 마지막 순간에 웃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요즘 따라 늘 좋은 노랫말을 부르던 거북이가 그립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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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요정역정만루홈런 - 절룩거리네 (2004)

 

이 노래에 울컥해보지 않은 사람은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아닐까. 막다른 골목 그러니까 가장 비관적이고 상처를 감당하기 힘들 때 찾아보게 되는 노래다. 타인의 따뜻한 위로가 아무 소용이 없을 때 그저 주저앉아 한없이 울게 만드는 가사. 구구절절 내 얘기라고 들릴만큼 그 몰입력이 크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7년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씁쓸하고 소중해져버린 노래.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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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픽 하이- Fly (2005)

 

사실 굳이 한두 문장을 뽑을 것도 없이 구구절절 마음에 드는 가사다. 안타까운 나의 상황을 있는 그대로 펼쳐내고 어른스러운 위로가 아닌 젊은이의 강단 같은 어조로 '너는 날 수 있다!' '세상이 뭐라고 말해도, 너는 날 수 있다'는 외침에 가슴 뜨거운 에너지를 얻은 건 나뿐만이 아니리라! 2005년 발매로 벌써 세상에 나온 지 12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노래의 가치는 생생하다. 지치고 힘든 날, 외롭고 고된 날. 몇 번이고 에픽 하이의 'Fly'를 꺼내 듣는다면 당신은 그때도 지금도 젊고 그때도 지금도 날 수 있는 존재다. '때론 낮게 나는 새도 멀리 본다' 하지 않던가?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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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EX) - 잘 부탁드립니다 (2005)

 

"아시다시피 장기화된 경기 침체로 인해 청년실업 40만 명에 육박하는 이때 미래에 대한 철저한 준비 없이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겠습니까? 제발 좀 조용히 해 주십시오!"

시트콤 '논스톱 4' 만년 고시생 '앤디'의 대사가 유행할 무렵, 취업난이 그 당시보다 더욱 악화할지 예상했을까. '취준생'이 40만을 넘어 100만까지 돌파하며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금, 비슷한 시기에 등장했던 유행어와 이 노래의 가사가 맞물려 떠오른 건 우연은 아닐 것이다. 2005년 MBC 대학가요제 대상을 받은 익스의 '잘 부탁드립니다'에는 입사 면접에 떨어진 날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셨던 실제 에피소드가 노랫말로 담겨있다. 취중에 토로하는 씁쓸함과 어리광은 구어체로 표현되며 구직에 실패한 심정을 있는 그대로 대변한다. 후렴구에 이르러 선 야속함을 넘어 초연함까지 보인다. 불확실한 미래를 앞둔 젊은이들의 출구는 좁은 취업 틈새가 아닌 '욜로'였다. 12년이 지난 2017년, '인생은 한 번뿐이다'를 외치는 젊은 날의 초상은 그저 '웃는 광대'일지도 모르겠다. (노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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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나믹 듀오 - 고백 (Go Back) (Feat. 정인) (2005)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랩 구절이 아닐까 싶다. 속되게 말하면 '나한테 까불면 X 돼'와 '나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XX놈'을 적확하고도 쉬운 비유를 얹어 표현했다. 가벼운 멜로디의 인트로 직후 날카롭게 치고 나오는 개코의 래핑과 이에 실린 무지막지한 구절은 대중에게 강력한 인상을 새겼고, 이후 힙합에서 등장하는 트럭은 온통 8톤짜리라는 재밌는 공식을 만들어냈다. 이 이후로 수많은 특유의 '힘겨루기' 가사들이 등장했지만, 그 아무리 속되고 센 표현이 가미되었어도 이만큼의 임팩트를 남기진 못했다.

사실 8톤 트럭의 첫 운전수는 개코가 아닌 은지원이다. 역사 깊은 8톤 트럭은 타이거 JK가 작사하고 은지원이 부른 '8t. Truck'에서 '브레이크가 고장 난 8톤 트럭'이란 구절로 처음 등장했고, 이후에 타이거 JK가 '60 Percenta Zen'에서 직접 8톤 트럭을 운전하기도 했지만 대중적으로 히트한 건 역시 다이나믹 듀오의 '고백'이 결정적이었다. 이젠 힙합 가사의 클리셰가 된 8톤 트럭은 이후 빈지노가, TK가, 아이콘(iKON)의 바비가 그 운전대를 잡기도 했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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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B - 나는 나비 (2006)

 

'아주 작은 애벌레'에서 '상처 많은 번데기'를 거쳐 '아름다운 나비'가 되기까지.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성장 드라마를 나비의 일생에 빗대 참신함을 획득했다. 인고 끝에 나비가 되었다고 마냥 행복할쏘냐. 거미줄 피하랴, 사마귀 피하랴, 꽃을 찾아 날아다니랴. 기대했던 나비의 삶도 순탄치는 않다. 그럼에도 나비가 아름다운 것은 세상을 자유롭게 날기 때문 아닐까. 우리 사회의 애벌레, 번데기, 나비 모두가 마음 깊이 공감하며 위로를 얻었다. 이 노래로 YB가 국민 밴드의 자리를 다시 한 번 공고히 한 것은 물론이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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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넛 - 룩셈부르크 (2006)

 

마이크를 테스트하는 동료 뮤지션을 보고 만든 유쾌한 노래. 세계 평화를 지향하는 가사에 따라 다양한 나라의 특징을 잘 살렸다. 그중 압권은 '전쟁을 많이 하는 아메리카' 이 한 줄이다. 모두가 알지만, 함부로 말하지 못했던 그 속을 크라잉 넛이 과감하게 질러버렸다. 여행처럼 신나는 분위기의 내용과는 다르게 직설적으로 표현한 비판임에도 위화감 따위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특히 미국과 우리나라의 깊은 우호적 관계를 생각하면 그리 평범한 가사가 아닐 수 없었다. 결국, KBS에서는 이 곡을 출연 금지곡으로 선정했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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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 - 비밀번호 486 (2007)

 

삐삐 세대의 은어가 휴대폰 세대로 넘어왔다. '사랑해'의 글자 획수로 만들어진 번호 '486'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그 의미를 확장했다. '하루에 네 번 사랑을 말하고/여덟 번 웃고 여섯 번의 키스를 해줘/날 열어주는 단 하나뿐인 비밀번호야'로 작사를 한 휘성은 단순한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며 삐삐 세대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사랑을 전하던 방식이 숫자에서 문자로 변한 것처럼 사랑하는 방식도 바뀌고 있음을 '비밀번호 486'으로 잘 표현했다. 정작 노래의 주인공인 윤하는 자신의 취향과 맞지 않아 부르기를 꺼렸지만, 이 곡을 통해 그는 확실하게 이름을 알렸다. 많은 이들이 음악을 듣고 추억을 떠올리거나, 가사 때문에 오글거렸다. 숫자든 문자든 형태가 변하고, 아무리 유치해도 사랑 앞에서는 달콤할 뿐이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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넬 - 기억을 걷는 시간 (2008)

 

잊었다고 생각했으나 문득 예고 없이 떠오르는 게 있다. 내겐 '기억을 걷는 시간'이 그렇다. 당시 아이돌도, 발라드 가수도 아닌 밴드가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 1위를 차지한 곡이면서 동시에 대중에게 그리고 나에게 보인 '넬'의 첫인상이기도 하다. 보컬 김종완의 시적 표현, 중의적인 단어로 이어진 이야기와 마치 바스러질 듯한 그러나 이내 담담한 가성이 극대화되는 끝부분은 오래도록 여운을 남겼다. 그것도 아주 긴긴 기억의 잔상으로.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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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너마저 - 이웃에 방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2008)

 

이만큼 음악과 가사 사이에 틈이 벌어진 곡이 있을까. 듣는 사람의 마음을 산들거리게 만드는 찰랑이는 멜로디와 꾸밈없는 보컬, 명랑한 사운드 덕에 이 노래는 7년 전 '국민 남동생' 유승호가 누나(들)에게 고백하는 CF 배경에 놓이기도 했다.

하지만 가사는 보편적 일상어로 씁쓸한 진실을 말한다. 바로 타인이 나의 고통에 무지한 것처럼 나 역시 그의 쓰라림에 무감한 사람일 수 있다는 것. 누군가를 마음에서 보내는 과정이 이웃에게는 '방해'가 될 수 있고, 나에게도 '출근'은 찾아온다. 마음껏 슬퍼할 수도 없는 시대. 이 노래가 옆에 남아 위로를 건넨다. (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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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 폴 - 고등어 (2009)

 

고등어를 소재로 선택한 신선한 시선은 물론이고 사고와 재고의 기회를 준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다. 자칫 난해한 가사와의 첫 만남을 뒤로하고 '튼튼한 지느러미로 잡아먹히기 위해 나를 원하는 곳으로 헤엄친다'고 반복해 말하는 고등어를 보며 생각하게 된다. 희생당하면서도 '날 골라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고등어를 보며 고민하게 된다. 대체될 수 있는 화자는 누구일까. 그건 어쩌면 부모님, 또 어쩌면 선생님, 또 어쩌면 모든 것을 거리낌 없이 내어주는 누군가일 수도 있다. 잔잔한 멜로디와 나긋한 루시드 폴의 보컬과 어우러져 따뜻하고 포근한 울림을 주는 노래.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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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하와 얼굴들 - 달이 차오른다, 가자 (2009)

 

달이 무엇이기에. 도대체 어디로. 소년의 행동을 재차 되새김질해보지만 밀려드는 것이라곤 그저 무의미뿐이다. 장기하의 가사가 발휘하는 힘은 기이하고 또 대단하다. 당위만이 존재하는 코러스, '달이 차오른다, 가자'를 곡의 초입에서 주문처럼 뱉어내 관객을 끌어들이고서는, 풍성하게 긁어모은 어휘와 세밀하게 얽어낸 묘사,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서사를 동원해 별 의미 없는 이야기에 충직하게 따라오게 만든다. 심지어 연유와 종착지 모르는 이 여정, 주변에 말을 해봤자 아무도 못 알아들을지 모른다는 지점에서 장기하는 소년의 처지나 우리의 처지나 피차일반으로 만든다. 결국 가야 하는 곳은 아무도 알아내지 못한 채, 달을 보고는 왜 떠나야 하는 지도 모른 채, 소년과 우리는 기어코 맥거핀으로 가득한 유랑 `길에 오르기로 마음먹는다. 기묘한 가사는 너무나 떨리도록 차오르는 저 달에 모두가 홀리게 만들어버렸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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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 교류의 한걸음을 내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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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만 같은 날씨 속 장충체육관은, 우중충한 하늘과 별개로 전례 없는 행사 준비에 분주한 기색을 띠었다. 국내 음악 축제에 일본 팀이 알음알음 참가한 적은 있었지만, ‘한일 록 페스티벌’을 슬로건으로 내건 공연을 좀처럼 보지 못했기에 필자의 반가움이 더했던 것 같다. 지난 7월 1일에 있었던, 양국 5개팀이 참가하는 <한일 Super Rock Great Meeting>은 그렇게 설렘을 동반한 낯섦과 함께 그 개막을 기다리고 있었다. 흔히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라고 언급하는 일본이다. 이미 공중파에서도 제이팝을 온에어 할 수 있게 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건만, 국민감정을 이유로 선곡을 꺼릴 수밖에 없는 현실. 그런 상황이기에, 이러한 ‘교류’의 의미를 지닌 한걸음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오는 건 필자만의 감상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본 행사를 실현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는 주관사 관계자의 이야기는 첫 개최에 대한 고충과 부담을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긴 공연시간을 배려한 전 좌석 지정석 세팅, 공연이 시작되기 전 각 팀들의 인사멘트를 담은 동영상과 더불어, 인상적이었던 것은 참여하는 팀 모두가 연대의식을 가지고 한 뜻으로 모여 서로를 리스펙트하는 자세 하에 공연이 진행되었다는 사실이다. 자신의 무대가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떠버리는 일각의 에피소드가 무색할 정도로, 전체 러닝타임동안 현장에 체류하고 세팅 체인지 시간 동안 인터뷰에 응하며 관객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모습은 해당 행사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었다.

 

관록무장의 팀, 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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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에 단독공연이 예정되어 있던 코도모 드래곤이 오프닝으로 출격, 세 곡의 짧지만 강렬한 무대를 선보이며 다음 날에 대한 리허설을 성공리에 완수. 이어 최근에 컴백해 재시동을 건 이브의 차례가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스파이에어 팬들에게는 다소 낯설 수도 있는 팀일 터. 웅장한 현악세션이 인상적인 새 EP의 머릿 곡 「Muse」를 시작으로 의욕 넘치게 시작했지만, 음향문제로 인해 싱크가 맞지 않는 등 다소 불안한 출발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당황하지 않고 이내 제 페이스를 찾아 안정감 있는 라이브를 선사하는 그들에겐 오랜 경험에 따른 노련함이 느껴졌다. 신곡에 이어 「Mad about you」, 「아가페」 등을 지나 「너 그럴때면」과 「I「ll be there」을 듣고 있자니 학창시절 때 그들의 노래를 즐겨 들었던 필자로서는 감개무량할 따름. 마지막으로 「Lover」를 선곡. 좋은 노래는 시간을 초월한다는 것을 모두의 떼창으로 증명하며 아쉬운 30여 분간의 시간을 마무리했다.

 

미야비는 EDM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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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날의 가장 큰 수혜자는 사무라이 기타리스트 미야비였다. 찾아보면 많은 이들이 다른 팀을 보러왔다가 그에게 입덕했다는 후기가 줄을 이을 정도. 눈에 띄었던 것은, 지난 내한공연과 달리, 드럼/기타가 아닌 디제이/기타의 편성을 통해 본격적인 EDM 록 사운드를 들려주었다는 데 있다. 작년 선보인 <Fire Bird>의 결과물과 단독투어의 지향점을 고려했을 때 짐작 못할 부분은 아니었으나, 실제로 접했을 때의 그 임팩트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베스트 앨범에 새롭게 편곡되어 실린 「What’s my name」부터 전자 사운드와 기타의 매시업으로 정줄을 놓게 만들더니, 신들린 기타 속주로 혼을 빼놓는 「Fire bird」, 샤우팅과 함께 떼창을 유도한 「Strong」, 완급을 조절하며 그루브의 물결을 유도한 「Epic swing」을 통해 새로운 미야비 사운드의 완성을 모두 앞에서 천명했다. 이어 그가 하프코리안으로서 항상 제창하는 “양국간의 우호와 통합”을 주제로 한 「The others」로 본 페스티벌에 대한 의미 또한 놓치지 않으며 두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최고의 퍼포먼스를 선사했다. 이제나 저제나 기타를 손에 쥔 미야비는 무적이다 라는 명제를 다시 한 번 증명해 낸 셈. 그와 더불어 “미야비” 연호가 공연장에 울려 퍼지는 모습은 퍼포먼스가 내뿜은 카타르시스에 대한 보답이었다.

 

국내 라이브 무대에 대한 목마름을 조금이나마 해갈한 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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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것은 아무래도 에프티 아일랜드였다. 일본에서는 줄곧 라이브 무대를 중심으로 활동해 왔기에 실력에 대한 의문은 없었지만, 그 분위기나 완성도가 궁금했던 터였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이미 완성된 밴드였다. 국내에서 알려진 히트곡은 완벽히 배제하고, 5집 이후의 곡들과 일본에서 활동한 노래들로 채운 세트리스트엔 자신감과 여유가 배어있었다. 「Pray」에서는 숨막히는 박진감을 선사하는가 하면, 「Champagne」에서는 관객의 참여를 유도하며 분위기를 큰 어려움 없이 리드해갔다. 이홍기라는 스타성 있는 프론트맨의 매력도 매력이었지만, 이를 더욱 빛나게 하는 것은 멤버들의 완성도 있는 합주. 「Identity」와 「1, 2, 3, 4」, 더불어 스파이에어의 이케와의 듀엣을 선보인 「Orange days」까지. 일본 발표곡들을 보여줄 수 있어 본인들에게도 뜻 깊었던 시간이 되었을 듯 싶다. 순간의 폭발력으로 보면 어느 그룹보다도 뛰어났기에, 국내에서도 좀 더 본인들의 음악을 들려줄 기회가 많아졌으면 바람 또한 뒤따르는 기대 이상의 무대였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헤드라이너의 위엄, 스파이에어

 

어느덧 우리나라를 찾는다 하면 매진사례를 기록하는 팀이 되어버린, 그들의 한국 진출 사례는 그야말로 베스트 프랙티스로 꼽을 만하다. 이날도 공연장을 찾은 이들의 7할은 그들을 보기위해 찾아왔다는 것을 증명하듯, 등장과 함께 엄청난 환호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첫 곡 「Overload」부터 다소 지칠 수도 있는 관객들을 다시금 일으켜 세우더니, 「イマジネ?ション(Imagination)」과 「ファイアスタ?タ?(Fire Starter)」로 다시금 공연을 시작점을 돌려놓았다. 대중적인 멜로디와 흔들림 없는 이케의 보컬, 안정감을 자랑하는 연주멤버들의 합은 언제 봐도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하는 조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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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in’ out」과 「Rage of dust」에 이어 다시금 이홍기와 호흡을 맞춘 「現? ディストラクション(현상 Distruction)」에서는 한 소절씩 주고받으며 대결을 하는 듯한 구도로 팬들에게 기분 좋은 긴장감을 자아냈다. 손에 들고 있던 타올이 드디어 제 역할을 찾는 시그니쳐 「サムライハ?ト(Some like it hot)」를 끝으로 본 무대를 마친 그들은, 팬들이 앵콜을 갈구하며 합창한 「Singing」을 마지막 곡으로 간택,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엔딩으로 그 환호에 화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출연자가 한데 모여 기념촬영을 하고 나서야 기념비적인 한일 교류의 장은 막을 내렸다.

 

라이브에 참가한 팀들은 모두들 가깝고도 먼 양국 간의 관계를 이야기하며 그래도 음악으로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미야비의 “국경은 음악으로 넘을 수 있다”라는 한 마디가 괜시리 가슴에 남은 것은 그가 꼭 하프코리안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1회를 넘어 2회, 3회로 나아가기에 아직도 많은 장애물이 남아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 첫걸음이 참으로 감격스럽다. 단순히 다섯 팀이 순차적으로 공연하는 것을 넘어, 모두가 공연의 취지를 이해하고 진심으로 양국의 우호를 위해 노래하는 그 모습은 일본음악을 다뤄오는 필자에게도 많은 울림을 남겼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이러한 멋진 만남이 지속되기를 바랄 뿐이다. 그들이 강조했듯,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 모두가 공유할 수 있는 희노애락만이, 그 곳에 있을 뿐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격정의 목소리 체스터 베닝턴을 추모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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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20일(현지시간) 린킨 파크의 보컬 체스터 베닝턴이 세상을 떠났다. 불과 얼마 전 새 앨범 <One More Light>을 발표하고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던 시점에 그야말로 갑작스레 들려온 부고였다. 함께 동시대를 호흡하던 몇 안 되는 록 스타의 죽음에 수많은 젊은 록 팬들은 깊은 실의에 빠졌다. SNS 역시 그의 목소리를 들으며 청춘의 한 페이지를 넘긴 수많은 사람들의 추모 메시지로 가득 찼다.

 

우리에게 린킨 파크는 더욱 각별하다. 아직 인터넷이 세계의 거리를 완전히 없애기 전, 음악계의 변방을 살아가야 했던 우리는 사실상 이들에게서 뉴 메탈(Nu Metal)을 본격적으로 배웠다. 1990년대 한창 부흥하던 얼터너티브 록의 문법에 헤비메탈의 강력한 사운드로 힘을 주고 힙합, 인더스트리얼 등 다양한 장르의 요소를 섞은 생소한 음악 뉴 메탈은 린킨 파크가 데뷔한 2000년에 이미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 콘(Korn), 림프 비즈킷(Limp Bizkit) 등이 밀레니엄 젊은이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은 당대 대표적인 뉴 메탈 스타들이다.

 

그중 린킨 파크는 대중적으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밴드였다. 강한 메탈 기타 사운드와 유려한 선율의 대비, 랩과 스크리밍 보컬의 절묘한 조화, 불안한 내면에 내려앉는 감성적인 노랫말까지 새 시대의 정서에 정확히 들어맞는 음악으로 록과 거리가 멀었던 사람들마저 사로잡은 것이다. 특히 'In the end'가 수록된 데뷔앨범 <Hybrid Theory>(2000)와 <Meteora>(2003) 등이 큰 인기를 끌었고 영화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배경음악도 맡으며 대중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갔다.

 

강력한 음압과 그 아래 숨겨진 애달픈 감성으로 한 번쯤은 모두의 마음을 빼앗은 밴드. 뉴 메탈의 시대가 저물었음에도 언제나 실험과 진화를 거듭하며 꾸준히 활동해 온 구르는 돌. 그 중심엔 언제나 체스터 베닝턴의 불꽃같은 보컬이 굳건히 서 있었다. 신세대의 격정과 불안을 대변하던 한 뜨거운 목소리의 죽음을 추모하며 영원히 기억될 린킨 파크의 명곡 10곡을 선정했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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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 step closer (2000, <Hybrid Theory>)
데뷔와 전성기를 동시에 시작한 밴드의 묵직한 한 방. 육중한 일렉트릭 기타 톤을 따라 그의 폭발적인 샤우팅이 곡을 끌어간다. 서서히 끓어오르던 감정은 브리지에 이르러서 'Shut up!'이라는 가사에 맞춰 최고조로 폭발한다.

 

그는 강렬한 사운드와 매끄러운 멜로디의 적정선에서 두 가지를 모두 만족하게 했다. 부드러울 땐 부드럽고, 질러줄 땐 질러주며 밴드를 향한 하드코어와 팝 진영을 하나로 묶었다. 자연스럽게 밴드의 프런트맨 자리에 오르며 그 이상으로 짜릿했던 체스터 베닝턴의 보이스는 이제 뇌리에 박혀 잊히지 않는 영원으로 남았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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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awling (2000, <Hybrid Theory>)
다이내믹이 살아있다. 힙합의 리듬으로 시작한 음악은 곧 거친 메탈의 사운드를 드러낸다. 역시나 그 중심에는 베닝턴이 있다. 그의 주특기인 날카로운 스크리밍이 후렴구에서 일렉트릭 기타와 쌍두마차를 이루며 거침없이 달린다. 거기에 마이크 시노다의 랩과 조 한의 스크래칭이 빈 곳을 채우며 완벽한 합을 이뤘다.

 

마약 의존성을 노래하는 곡은 과거 힘든 시절을 마약에 기댔던 그의 모습을 투영하며 다소 진지하게 다가왔다. 그냥 소리만 지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진심이 담긴 외침이 음악을 더욱 진정성 있게 만들었다. 마침내 그는 마약을 떨쳐냈지만, 고통은 그리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떠난 그가 이제 편히 쉬길 바랄 뿐이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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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end (2000, <Hybrid Theory>)
항상 찬반은 있다. 어떤 잡지는 '뉴 메탈 클래식', '궁극적 뉴 메탈 믹스테이프'라고 추켜세운 반면 <뉴 뮤지컬 익스프레스>는 그 달달한 멜로디가 혐오스러웠던지 '먹이사슬의 밑바닥에서 나온 멍청한 MTV 랩 록의 한 판'이라고 혹평했다. 사실 베닝턴 자신도 2012년에 “난 애초 'In the end'가 끌리지 않았다. 솔직히 앨범에 넣는 것도 싫었다.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 이제는 'In the end'를 사랑하며 위대한 곡이라고 생각한다.”며 사고전향을 고백했다. 그게 앨범에서 (마땅찮게) 네 번째 싱글로 내놓은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린킨 파크 커리어의 최고히트이자 정점을 찍었고 공연 세트 리스트로도 으뜸 레퍼토리가 됐다. 제목대로 '결국에' 대중의 사랑을 어찌 무시하랴.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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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ewhere I belong (2003, <Meteora>)
소포모어 징크스는 없었다. <Hybrid Theory>로 단숨에 '핫' 밴드로 떠오른 이들은 'Somewhere I belong'으로 복귀를 알렸다. 정체성과도 같았던 메탈 사운드와 잘 들리는 멜로디, 공허감과 혼란을 토로하는 가사가 다시 한 번 라디오를 강타했다. '낫고 싶다'고, '느끼고 싶다'며 절규하고 '내가 속할 수 있는 곳을 찾고 싶다'고 울부짖는 체스터 베닝턴의 목소리에 많은 이의 마음이 움직였다. 기존 히트 공식을 충실히 따른 노래는 뒤이은 2집 <Meteora>의 흥행을 견인했고, 상승 가도는 'Faint', 'Numb', 'Breaking the habit'으로 이어졌다.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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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nt (2003, <Meteora>)
우리나라에선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리그 오프닝 곡으로 모두에게 각인된 노래가 아닐까. 2000년도 초반 스타크래프트가 대대적인 열풍을 일으키면서 게임을 즐기지 않던 사람들마저 호기심을 갖고 대회 중계를 보곤 했는데, 이 스타 리그에서 쓰인 곡들은 항상 인기를 구가했다. 수 많은 노래가 대회를 거쳐 갔지만 린킨 파크의 'Faint'만큼 그 시절을 대표할 수 있는 오프닝은 많지 않다. 뉴 메탈을 단숨에 메인스트림으로 끌어올린 그들은 세기말적인 감성과 랩코어, 림프 비즈킷(Limp Bizkit)에겐 없는 멜로디를 선보였고, 'I am a little bit of loneliness', 'Time won't heal this damage anymore' 등 상처와 외로움을 다룬 가사들은 반항기의 청(소)년들을 매료시키기 충분했다. 게임과 음악이 만나 한 세대를 휩쓴 기이한 문화현상이다. 아이옵스 배 스타리그 오프닝에서 체스터 베닝턴의 스크림이 흘러나오며 “임진록(임요환-홍진호 전)”의 두 주인공이 마주 볼 때, 그 감동이란. 적어도 한국에서 'Faint'가 갖는 의미는 단순한 노래 그 이상이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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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mb/Encore (2004, <Collision Course EP>)
2003년 <Meteora>에서 사랑받았던 넘버 중 하나다. 충격이었던 1집의 여세를 그대로 몰고 간 2집은 록의 새로운 대안 그 자체로 추앙되었다. 앨범 발표 다음해에는 제이지와 함께 매쉬업한 <Collision Course EP>를 발표했는데 서로 다른 장르가 만나 '하이브리드' 정체성을 더욱 구체화 시켰다. 특히 'Numb/Encore'의 경우는 그래미 최우수 랩송 콜라보레이션 상을 받으며 그 위세를 떨쳤다.

 

정신적 피로와 압박감은 전성기 때나 지금이나 전혀 그 무게가 줄지 않았나 보다. 날이 선 노래가사가 오늘은 더욱 아프게 다가온다. "네가 원하는 사람이 되는 것에 지쳤어. 믿음을 잃고, 표면 아래서 길을 잃은 기분이야. 네가 내게서 뭘 기대하는지 모르겠어. 네 식으로 살라는 압박감에 눌려." (I'm tired of being what you want me to be. Feeling so faithless, lost under the surface. Don't know what you're expecting of me. Put under the pressure of walking in your shoes.)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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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I've done (2007, <Minutes To Midnight>)
변화의 시작을 알린 곡. 뉴 메탈의 최선봉에서 지휘봉을 이끌던 밴드가 장르의 표식인 랩을 빼버리고 시대의 흐름과 타협점을 찾아냈다. 랩이 빠진 자리는 거침 대신 약간의 모던함과 사회적 시선이 담겼고 그 와중의 특징적인 비장한 멜로디는 과도기적 시점에서 그룹의 색채를 뚜렷하게 유지한다. 래핑이 사라진 시점에서 수문장인 체스터 베닝턴의 보컬은 더욱 빛이 났다. 힘주어 내질러도 갈라지지 않고 풍부한 감정으로 선율을 이끌던 체스터 베닝턴. 장르의 분수령에서 변화를 모색했음에도 외면당하지 않고 오히려 <트랜스포머>의 메인 사운드 트랙으로 선전한 데에는 분명 그의 목소리가 일조했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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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adow of the day (2007, <Minutes To Midnight>)
뉴 메탈 시대는 한순간의 번뜩임과 메탈의 마지막 부흥기라는 의미를 남긴 채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었다. 시류를 읽고 조망하는 데에 밝았던 밴드는 전작들의 소구력을 과감히 포기한 <Minutes to Midnight>로 변화를 포고했다. 음반엔 메탈도 없고 랩도 사라졌지만, 가벼워진 사운드와 무거운 주제의식이 밴드의 새로운 개성으로 자리 잡았다. 그중에서도 유한 사운드와 친숙한 보컬 멜로디를 지닌 'Shadow of the day'가 차트 입성에 성공, 린킨 파크가 굳이 뉴 메탈이 아니어도 전반적인 대중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힘을 지닌 밴드임을 증명했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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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 divide (2009, <Transformers: Revenge of the Fallen - The Album>)
진작 린킨 파크의 팬이라고 밝힌, 영화 <트랜스포머> 감독 마이클 베이는 지난 'What I've done'에 이어 이번엔 직접 영화를 위한 사운드 트랙을 제작하기에 이른다. 속편 <트랜스포머: 패자의 역습>의 엔딩 테마로 제작된 이 곡은 린킨 파크 특유의 강렬한 전자음을 바탕으로 기계전쟁의 싸늘한 기운을 은유함과 동시에 체스터 베닝턴의 감성 어린 보컬과 노랫말을 통하여 스토리의 감수성을 극대화시켰다. 영화 주제의식에 알맞춘 감각이 돋보이는 측면이다. 곡의 완성도를 위해 영화 음악계의 거장 한스 짐머와도 협업했다고 전해지는 이 곡은 빌보드 메인 차트 6위를 기록하며 'In the end' 이후 가장 높은 차트 성적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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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vy (Feat. Kiiara) (2017, <One More Light>)
매번 변화를 즐기던 밴드였다. 불과 두 달 전에 나온 새 음반은 오히려 낯설어서 더 린킨 파크다웠다. 'Heavy'는 부드러운 전자음을 주재료로, 비교적 차분한 혼성 보컬 듀엣이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일렉트로닉 록 트랙. 감정을 발산하고자 함은 여전하나, 외형은 분명 최신의 것이다. 2000년대 초반에 빛나는 시절을 기록했던 그들이 2017년에도 여전히 신선도를 유지하며 유행의 철로를 달리고 있다.
 


평범하지 않은 유년기를 보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몇 번의 고비를 겪었던 체스터 베닝턴은 치열하게 절규하는 음악으로써 현실의 통증을 모두 쏟아내고자 했다. 불안정한 청춘의 기로에 서 있던 많은 이들 또한 밴드에게서 해갈을 맛봤다. 이 곡을 처음 접했을 때 “Why is everything so heavy”(왜 이토록 모든 것이 버거울까)라는 문장이 비관적이지 않게 들렸던 것도 그 때문이었다. (홍은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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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범람하는 음악 페스티벌 속에서도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은 생소한 세계였다. 도심형 페스티벌의 중심지 잠실을 벗어나 한강 난지공원을 택했고, 해외 인디 씬의 기린아들로 구성된 라인업은 보편이 아닌 인디에 속해 있었다. 게다가 7월 29, 30일은'페스티벌 결전의 날'로, 터줏대감 <지산 록 페스티벌>부터 EDM의 <유나이트 위드 투모로우랜드(Unite With Tomorrowland)>, 힙합의 <워터밤 2017(Waterbomb 2017)> 모두가 겹쳐있었다.

 

이 모든 유혹을 이겨내고 꿋꿋이 이틀 동안 한강 난지공원 행을 택한 필자의 소망은 '제발 나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기를…' 하나뿐이었다. 마르고 닳도록 들었던 나오(Nao), 썬더캣(Thundercat), 샘파(Sampha), 이어스 앤 이어스(Years & Years), 오 원더(Oh Wonder), 더 엑스엑스(The XX)를 보러 누가 올 것인가 하는 걱정과 그들이 들려줄 라이브에 대한 기대를 반반 정도 갖고, 한강공원을 따라 7월의 마지막 홀리데이로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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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 조망


소규모 페스티벌에 걸맞게 아담한 광경과 아담한 무대가 눈에 띄었다. 양일간 전체적으로 한산한 느낌이었으나 메인 스테이지에서 공연이 펼쳐질 때는 사람들로 꽉 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한적한 페스티벌은 의외의 장점을 안겨줬는데, 어느 부스든 5분에서 10분 이상의 줄이 생기지 않았고 화장실, 흡연 부스 등 편의 시설 이용에도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경우는 거의 없어 상대적으로 불편을 느낄 새가 없었다. 항상 망원경으로, 앞에 있는 사람의 스마트폰 화면으로나 봐야 했던 헤드라이너들도 가까운 거리에서 볼 수 있었다. 무리한 운영 대신 규모에 맞는 작은 설계가 효율적이었다.

 

아티스트 무대


토요일 첫날 메인 스테이지를 장식한 서사무엘과 김아일은 적은 관객 수에도 아랑곳 않고 파워풀한 무대를 보여줬다. 'Samuel, Last Name Seo'와 같은 서사무엘의 커리어와 최근 합동으로 발매한 EP <ELBOW>의 트랙들을 중심으로 공연을 펼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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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아티스트 중 첫 번째로 무대에 선 이는 재즈와 고전 소울을 기막히게 배합한 베이시스트 썬더캣(Thundercat)이었다. 드럼, 키보드, 베이스 3인조 밴드 구성으로 무대에 오른 썬더캣은 왜 자신이 2017년 호평의 주인공인지를 압도적인 무대로 증명해냈다. 깔끔한 사운드 세팅과 쉴틈 없는 테크닉 연주의 폭격, 보컬과 즉흥의 적절한 경계는 처음 접하는 사람도 대단하다는 걸 금방 느낄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감상 난이도는 재즈 음악이라 조금 높은 편이었으나 오히려 이 장르적 특성만 아니었다면 웬만한 페스티벌의 메인 헤드라이너로 설 자격이 있음을 만천하에 인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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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출신 신스팝 듀오 오 원더(Oh Wonder)의 무대는 사랑스러웠다. 맑고 선선해진 날씨에 조세핀 가셰(Josephine Gachet)와 앤서니 웨스트(Anthony West)의 잔잔한 목소리가 곁들여진 공연장의 분위기는 최고였다.'Without you', 'All we do'처럼 잔잔하다가도 신보의 메인 싱글 'Ultralife'처럼 활기찬 무대를 보여주며 총천연색 무대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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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의 최고 공연은 지난해 <For We All Know>로 올해의 작품 후보를 휩쓸었던 나오(Nao)의 무대였다. 가녀리지만 숨겨진 유혹의 힘을 갖춘 최고의 보컬 컨디션과 더불어 역동적인 무대 퍼포먼스까지 선보이자 스테이지의 모든 관객들은 그 진한 그루브에 중독될 수밖에 없었다. 곡에 대한 완벽한 이해로 뿜어내는 천부적인 리듬 감각은 경이로운 수준으로 왜 자신이 대세의 자리를 넘보는 신세대 디바인지를 제대로 보여줬다. 'Inhale Exhale', 'Girlfriend', 'Bad Blood' 등 데뷔 앨범 히트 퍼레이드를 모두 포함한 데다 무라 마사(Mura Masa)와의 콜라보 'Firefly'까지 더해 더욱 완벽했던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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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무대는 런던 출신 일렉트로니카 트리오 이어스 앤 이어스(Years & Years). 그 전의 호응도 대단했지만 이들의 무대는 필연 마지막으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정말 엄청난 반응이 따라 나왔다. 섹시한 보컬 올리 알렉산더(Olly Alexander)의 몸짓과 노래 하나하나에 <프로듀스 101>을 방불케 하는 엄청난 비명이 터져 나왔고, 'Desire'와 'King','Shine'의 히트곡에는 한국 관객들의 기본기라 할 수 있는 '떼창'을 선사해줬다. 아이돌 콘서트장 부럽지 않았던 열광적인 팬들 앞에 올리는 거듭 '사랑해!'라 외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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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보다 더 한산해 보였던 일요일의 페스티벌을 깨운 건 샘파(Sampha)의 목소리였다. 개인적 아픔을 건조하면서도 짙은 보컬로 잔잔하게 담아낸 로 2017년 최고의 앨범 한 자리를 예약한 그의 퍼포먼스는 말 그대로 대세라는 게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공연 도중 런치패드가 고장 나고, 드럼 패드 위치가 자꾸 엇나가고 드러머 폴 러브조이(Paul Lovejoy)가 채를 놓치는 등 엔지니어가 분주하게 돌아다니며 위기를 수습하는 모습이 산만했지만 그조차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4인의 밴드원들이 모두 드럼 스틱을 잡고 드럼 세트를 두드리면서, '(No One Knows Me) Like the piano'에선 건반과 단 둘이서, 'Plastic 100 ?C'에서는 극강의 몽환을 보여주면서 무대를 지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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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방한하여 서교동 Yes24 무브 홀에서 공연을 펼쳤던 라이(Rhye)는 너무 잔잔한 공연 구성과 라이브 문제로 한 번 얘기가 나온 터라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그런 염려는 쓸데없다고 말하듯,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메인 스테이지의 관객들은 음원을 아득히 뛰어넘는 아우라의 늪에 빠져들고 말았다. 메인 싱어 밀로쉬(Milosh)의 깊은 목소리와 우아한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첼로와 바이올린, 그리고 바이브는 잔잔하면서도 본능적인 움직임을 유도했다. 지루했다는 평을 의식했는지 중간중간 브레이크를 넣으며 파워풀한 첼로 독주, 바이올린 독주를 포함하여 열광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밀로쉬의 말대로 '로큰롤 밴드일지도'하는 생각이 들면서, 하늘하늘 우아한 라이의 세계가 펼쳐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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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마지막 차례, 페스티벌의 진짜 주인공 더 엑스엑스(The XX) 의 무대가 다가왔다. 한눈에 봐도 관객 수는 제일 많았고 다들 엄청난 기대에 사소한 화면 전환에도 함성이 터졌다. 이윽고 몽환적인 인트로를 깔아놓은 다음 'Crystalised'의 기타 리프가 울려 퍼지자 스테이지는 말 그대로 폭발했다. 로미(Romy Croft)와 올리버(Oliver Sims)의 짙은 보컬에 관객들은 탄성을 내질렀고, 마치 전지전능한 듯 디제이 셋 뒤에서 비트를 주조해내는 제이미(Jamie XX)의 디렉팅에 모두들 몸을 흔들 수밖에 없었다.

시크하면서도 도도한 이 트리오는 이틀 전 후지 록 페스티벌의 셋 리스트를 전개하면서도 'A Violent Noise', 'Brave for you'를추가하고 순서를 약간씩 수정하는 등 한국을 위한 공연을 이어나갔다. 'Dangerous'와 물 흐르듯 이어졌던 'I dare you', 제이미의 솔로 앨범에 수록된 'Loud Places'는 단연 최고. 인디 씬의 루키로부터 어엿한 메이저의 위치에 오른 그들의 성장을 확실히 체감할 수 있었다. 마지막 앵콜 곡 'Angels'에서의 실수도 웃어넘길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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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올 사람만 올 라인업, 적당한 편의시설, 한적해서 그런지 몰라도 쾌적했던 환경, 여유로운 분위기 등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은 모든 면에서 기대 이상의 모습을 보여줬다. 대형 페스티벌에 지친 이들에게 여유로운 난지 한강공원은 거의 천국 같은 모습이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힘들이지 않고 가까이서 볼 수 있는 데다 편의시설도 쾌적하고 날씨도 좋았으니 말 그대로 금상첨화.

 

물론 미숙했던 셔틀버스 운용, 공연 후 귀가 수단 조치 미흡으로 단 한 대의 시내버스에 수많은 사람들이 줄을 섰던 등 불편한 점도 있었다. 페스티벌이 같은 날짜에 몰리다 보니 스폰서 업체들도 규모가 작았고, 그와 관련된 이벤트도 적어 페스티벌의 소소한 재미를 느끼기 어렵기도 했다. 라인업 격차도 상당해 일요일 낮 시간 스테이지는 너무 한산했고, 전체적으로도 그리 많은 관객이 들어온 것 같진 않았다.

 

약간의 불편함과 어색함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특히 음악적인 면에서 그렇다. 한국 팬들에게 어필하기 힘든 라인업을 꾸렸음에도 그들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매우 진지했다. 한창 활동하는 해외 젊은 아티스트들의 무대는 그간 우리가 봐왔던 슈퍼 록 스타들과 사뭇 달랐는데, 더 엑스엑스가 10분 정도 늦긴 했지만 타 아티스트들은 정확히 정시에 무대에 올랐고, 할 수 있는 자신의 모든 커리어 노래를 동원해 최고의 퍼포먼스를 쏟아냈다. 컨디션은 모두 최고였고 음향 부분에서도 거의 완벽에 가까워 모든 소리를 선명하게 들을 수 있었다.

 

페스티벌은 늘어가지만 정작 그 주체인 음악 대신 유흥이 앞서는 최근 흐름에서 여유로웠던 <홀리데이 랜드 페스티벌>은 '음악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소규모 페스티벌만의 강점을 더 다듬는다면 매 휴가철, 범람하는 페스티벌 열풍 속에서도 신선하고 젊은 흐름을 만들어 훌륭한 대안으로 자리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Fake Virgin Seoul
Photo Credit : Hospital Photograph / Kaipaparazzi / Stillm45

김도헌(zener1218@gmail.co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성공한 가수의 뒤에는 프로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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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는 실연자의 역량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지휘력을 갖추어야 한다. 재능을 단박에 알아보는 안목 또한 필요하다. 작품에 대한 책임은 물론, 머릿속엔 항상 풍부한 영감과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겸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프로듀서는 그들이 맡은 광범위한 직무와 그 가치에 비해 대중에게 비추어지지 않는, 숨은 예술가이다. 프로듀서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뉴밀레니엄의 팝은 다양한 형식과 내용들로 구성되어있다. 현재까지 흐름을 이어오고 있는 힙합부터 꾸준히 강세를 보이는 댄스 팝까지, 현재의 우리는 훌륭한 프로듀서 덕에 여러 가지 스타일과 각기 다른 개성의 결과물들을 즐길 수 있다. 그렇다면 가수의 뒤에서, 곡의 그늘에서 21세기 팝을 견인해온 프로듀서는 누가 있을지 한번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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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루빈 (Rick Rubin)

 

그의 커리어에 감히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학 시절 4트랙 레코더 하나만으로 직접 설립한 데프 잼(Def Jam)을 힙합 레이블의 굵직한 기둥으로 키워내고, 아메리칸 레코딩스(American Recordings)와 콜롬비아를 거치며 빚어낸 수많은 별들로 팝의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은 전설적 프로듀서. 당장 그가 제작한 음반 목록을 훑기만 해도 명반들이 주르륵 걸린다. 비스티 보이즈의 <Licensed To Ill>과 런 디엠씨의 <Raising Hell> 등 기념비적 힙합 명반들과 슬레이어의 <Reign In Blood>을 비롯한 메탈 마스터피스들,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이름을 널리 알린 <Blood Sugar Sex Magik> 같은 얼터너티브 록까지 셀 수 없는 록과 힙합의 명반들이 그의 손을 거쳤다. 하드코어와 힙합에 관한 그의 깊은 애정은 두 장르의 융합형인 뉴메탈의 탄생을 견인하기도 했다.

 

록과 힙합만이 아니다. 컨트리의 영웅 조니 캐쉬를 다시 대중 앞에 불러낸 것도 그였으며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2006년 작 <Futuresex/Lovesounds>나 레이디 가가의 <Artpop>같은 댄스 음악에도 손을 뻗었다. 데미안 라이스와 라나 델 레이와도 작업했으며 최근에는 아델의 <21>, 에드 시런의 <X>를 프로듀싱하기도 했다. 다양한 활동으로 두 번이나 그래미 베스트 프로듀서 상을 수상한 팔방미인이자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명장! 불필요한 악기를 최대한 줄이고 작업 시 아티스트의 재량을 한껏 보장해 잠재력을 120% 끌어내는 그의 프로듀싱은 가끔 음압을 극한까지 올리는 경향인 '라우드니스 워(Loudness War)'의 주범으로 비판받기도 하지만, 그의 손끝에서 탄생한 수많은 보석들의 묵직한 무게감을 그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조해람)

 

비스티 보이즈(Beastie Boys) - 'No sleep till brooklyn'
레드 핫 칠리 페퍼스(Red Hot Chili Peppers) - 'Dani california'
아델(Adele) - 'Don't you remem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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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팀벌랜드(Timbaland)

 

2000년대 절대 빼놓아선 안될 미다스의 손. 1971년 생으로 본명은 팀 모슬리(Tim Mosley). 미시 엘리엇의 데뷔 앨범이 홈런을 날리면서 정상급 프로듀서 반열에 올랐는데 넵튠스, 카니예 웨스트와 함께 뉴 히트메이커로 급부상했다. 전성기의 그는 '비트의 마법사', '비트 과학자'라고 불릴 정도로 독창적인 비트 주조가 특기였다. 팀벌랜드의 스타일은 곧 하나의 장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기존의 블랙뮤직 판도를 뒤흔들기도. 알리야, TLC, 저스틴 팀버레이크, 알리샤 키스, 데스티니스 차일드 등 거물들이 그와의 작업을 위해 줄을 섰고, 사람들은 팀벌랜드가 누구와 작업을 하는지 만으로도 크게 관심을 가졌다. 프로듀싱에만 머물지 않고 직접 음반을 내고 활동하기도 했는데 정작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한 노래는 거듭 고배를 마셨다. (김반야)

 

알리야(Aaliyah) - 'Try again'
저스틴 팀버레이크(Justin Timberlake) - 'SexyBack'
제이 지(Jay-Z) - 'Dirt off your should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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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스 마틴(Max Martin)

 

스웨덴 출신의 프로듀서 맥스 마틴은 팝 마니아들에게 가장 익숙한 이름 중 하나다. 2000년대 이후 팝은 그의 영향권 아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듀싱 한 노래들 중 빌보드 1위만 20곡, 10위 안에 랭크된 노래까지 합치면 60곡 이상이다. 폴 매카트니와 존 레논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1위곡을 만든 작곡가이자, 비틀스의 다섯 번째 멤버로 통하는 조지 마틴 다음으로 많은 1위 곡을 프로듀싱 한 '능력자'다. 1990년대 중반에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그가 2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히트곡을 배출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21세기의 진정한 '팝 히어로'다.

 

흥행 신화는 2000년을 전후로 백스트리트 보이스, 엔싱크,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함께 시작됐다. 맥스 마틴 작법, 프로듀싱의 핵심은 '보편성'이다. 당대의 가장 인기 있는 사운드를 재료로, 세계 어디서도 먹힐만한 최강의 멜로디 펀치를 구사한다. 특히 함께 작업해본 가수들이 입을 모아 칭찬하는 그의 강점은 완벽을 기하는 보컬 디렉팅. 실제로 맥스 마틴이 프로듀싱에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지점은 '가수가 어떻게 노래를 하느냐'라고 한다. 대표적 히트 메이커답게 그를 거친 가수 명단만으로도 두 문단은 더 채울 수 있을 정도. 본 조비, 켈리 클락슨, 핑크, 에이브릴 라빈, 케이티 페리, 마룬 파이브, 아리아나 그란데, 위켄드 등이 그의 마법을 경험했다. (정민재)

 

백스트리트 보이스(Backstreet Boys) - 'As long as you love me'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 '...Baby one more time'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 - 'Since u been g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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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론슨(Mark Ronson)

 

뭐 길게 얘기할 것 없이 그에 대한 소개는 딱 두 가지 사실만 명기하면 된다. 하나는 복고 시류의 대중적 완결이라 할 2008년 에이미 와인하우스 앨범 <Back To Black>의 프로듀서라는 점, 다른 하나는 2015년 차트를 싹쓸이한 스매시 'Uptown funk'의 주인공이라는 점. 두 작품으로 마크 론슨은 공히 그래미상 '올해의 레코드'상을 수상했다. 전작의 'Rehab'은 프로듀서로, 뒤 곡은 퍼포머로 받는 '기록'도 전리품으로 챙겼다. 큰 신장만큼이나 대중성에 대한 포착력도 크다. 영국이 자랑인 대중문화 부분에서 괜히 이 시대의 특급 명사 운운하는 게 아니다. (여덟 살 때 미국 뉴욕으로 이주하긴 했지만)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아델, 나스, 큐팁, 두란 두란, 폴 매카트니, 브루노 마스, 레이디 가가 등 고객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캐치해 구현하는 것이 비교불허의 특장. 흑인음악과 록이 전문영역이다. 에이미 와인하우스 음악은 당(糖)으로 코팅된 고통 없는 노스탤지어로 비판받기도 했고 'Uptown funk'는 나오자마자 프린스(Prince) 표절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처럼 창의적 측면의 지적이 없지는 않다. 그래도 '스토너 록'의 진골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조쉬 호미가 'Uptown funk'에 푹 빠져 합작을 열망한 것처럼 당분간 음악적 존재감을 얕보기는 어렵다. 당연 올해 그들의 앨범 <Villains>의 프로듀서는 마크 론슨이다. (임진모)

 

에이미 와인하우스(Amy Winehouse) - 'Rehab'
마크 론슨(Mark Ronson) - 'Uptown funk' (Feat. Bruno Mars)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 - 'N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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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다프트 펑크 옆에서 노래 부르던 그 가수' 혹은 '해피 부르던 그 가수' 정도로 각인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퍼렐 윌리엄스는 앞의 문구들로 수식하기엔 상당한 업적을 가진 프로듀서다. 채드 휴고(Chad Hugo)와 함께한 프로듀싱 팀 넵튠스(The Neptunes)부터 샤이 헤일리(Shay Haley)가 합류한 너드(N.E.R.D.)까지. 팀으로 활동한 그는 미니멀한 신시사이저 루프와 변칙적인 리듬을 이용한 작법으로 브리트니 스피어스와 제이 지, 버스타 라임스, 어셔 등 많은 스타들의 주가 상승에 실질적인 요인을 제공했다. 넵튠스와 너드의 이름으로 발매된 작품들 또한 큰 성과를 기록, 시대의 사운드 메이커로 자리매김한 그는 대중에게 쉽게 먹힐만한 힙합과 펑크는 물론, 타율이 낮은 록까지 시도하기도 했다. 특히 넵튠스의 음반 <The Neptunes Present... Clones>와 너드의 <Fly Or Die>에 수록된 록 넘버들은 장르의 융합을 넘어 '흑인의 록'이라는, 흐름의 도외에 해당하는 것이었기에 더욱 큰 의미를 가진다.

 

솔로 퍼렐 윌리엄스는 어떨까. 매끈하고 감칠맛 나는 사운드를 필두로 한 그는 'Blurred Lines'로 로빈 시크(Robin Thicke)를 차트 정상에 올려놓았고, 'Sing'으로 에드 시런(Ed Sheeran)에게 섹시함을 선물했다. 힙합 신의 떠오르는 왕,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에게 그래미를 선사한 'Alright'도 그의 작품이다. 이뿐이었을까. '프로듀서'에서 '가수'로의 이미지 변신도 성공적, 이미 다수의 히트곡에 피처링으로 이름을 올린 그는 애니메이션 <슈퍼배드>의 주제곡이자 바이럴 히트를 달성한 'Happy'로 전 세계를 춤추게 했다. 최근에는 영화 <히든 피겨스>의 음악 작업, 심지어는 아디다스와 동업관계를 맺고 패션계에서도 활동한다고 하니, 과연 퍼렐 윌리엄스 앞에 누가 '만능 엔터테이너'로 불릴 수 있을까. (이택용)

 

브리트니 스피어스(Britney Spears) - 'Boys'
에드 시런(Ed Sheeran) - 'Sing'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 'Alr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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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아이엠(will.i.am)

 

윌아이엠의 프로듀싱에는 잠금장치가 없다. 그가 조타수를 잡은 미국의 인기 힙합 그룹 블랙 아이드 피스를 보자. 팝적인 멜로디라인을 지닌 대중적 힙합곡으로 세간의 관심에 들어서더니 더 높은 등급으로 올라선 건 국내에도 익숙한 클럽튠의 'Boom boom pow'다. 예상치 못한 장르 선회도 놀라운데 새로 꺼내 든 무기로 자그마치 빌보드 1위를 12주간 이어가고 연이은 싱글로 장장 28주간 정상을 차지하니 당시 세계 음악의 흐름이 그를 타고 흐른 건 당연지사.

 

그뿐만 아니다. 피아노 선율만으로 짙은 첫인상을 남긴 존 레전드의 'Ordinary people'도, 심지어는 투애니원에게도, 싸이에게도 그의 표식이 남아있다. 강점은 트렌드를 읽는 눈이고 장점은 장르에 상관없이 강점을 녹이는 센스. 윌아이엠표 마크에 특기할 만한 새로움은 없지만 이질감 없이 대중의 입맛을 맞출 조미료는 확실하다. 몇 해 전 표절 논란과 부진한 성적의 솔로 활동으로 기세가 꺾이긴 했지만 발걸음을 넓힌 스크린에서, 또 새로운 싱글 곡에서 기민한 촉감의 그는 계속 유영하고 있다. (박수진)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 - 'Boom boom pow'
에스텔(Estelle) - 'American boy'
존 레전드(John Legend) - 'Ordinary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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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다 페리(Linda Perry)

 

린다 페리라는 이름이 낯설다면 1990년대 초반 인기를 얻은 'What's up'의 주인공 포 넌 블론즈의 리더 혹은 핑크의 Get the party started', 크리스티나 아길레라의 'Beautiful', 그웬 스테파니의 'What you waiting for?'의 작곡가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What's up'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밴드에 애착이 없었던 린다 페리는 팀을 해산하고 1990년대 중반부터 노래를 부르는 직접 생산자에서 작곡가와 프로듀서라는 간접적인 음악 생산자로 탈바꿈했고 그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체구는 작지만 목소리가 큰 라틴 혈통의 린다 페리는 어렸을 때부터 다채로운 음악을 들으며 감수성을 키웠고 이 탄탄한 바탕은 다양한 가수들의 깐깐한 요구를 온전하게 흡수하며 팝계의 대표적인 여성 프로듀서로 우뚝 섰다. 포크를 기반으로 한 제임스 블런트와 쥬얼, 록 싱어 코트니 러브와 그웬 스테파니, 개빈 로스데일, 알앤비 가수 알리샤 키스와 비욘세의 동생 솔랜지 노울스, 아이돌 그룹 슈가베이브스와 블라크, 라틴 팝의 영웅 엔리케 이글레시아스까지 그의 매직 터치는 여러 스타일에 어울리는 맞춤형 제작으로 그 음반에 화려한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여장부 린다 페리는 섬세한 프로듀서다. (소승근)

 

핑크(Pink) - 'Get the party started'
그웬 스테파니(Gwen Stefani) - 'What you waiting for?'
크리스티나 아길레라(Christina Aguilera) ? 'Candy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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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그리스 신화 속 미다스 왕이 21세기에 음악을 한다면 아마 카니예 웨스트 쯤 되지 않았을까. 음악, 패션,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그에게 프로듀서라는 한정된 의미를 가진 타이틀은 부족할지도 모르겠다. 일찍이 랩 대신 음악 작업 스태프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며 커리어를 시작했다. 그는 제이 지의 역작 <The Blueprint>에 참여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곡에서 선보인 독특한 샘플링 기법은 자신의 단독 앨범을 제작하면서 더욱 발전했다. 샤카 칸의 목소리를 가볍게 비틀어 담은 그의 첫 싱글 'Through the wire'에는 고전 소울을 재해석해 활용하는 그만의 작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성공적인 데뷔에 힘입어 상승한 유명세와 함께 작업량 또한 크게 늘었다. 자넷 잭슨부터 존 레전드, 비욘세, 비교적 최근에는 마돈나, 리한나, 위켄드까지 이름을 대면 알법한 아티스트들의 작품에 직, 간접적으로 참여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재기 넘치는 고속 샘플링, 내면의 자아를 표현하기 위한 보코더 활용, 장르를 넘나드는 실험적 구성 등 앨범마다 선보이는 다양한 프로듀싱 방법은 그가 단순히 성공법칙에 머무르지 않는 제작자임을 보여준다. (노태양)

 

제이 지(Jay-Z) - 'Takeover'
커먼(Common) - 'Be (Intro)'
알리샤 키스(Alicia Keys) - 'You don't know my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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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인저 마우스(Danger Mouse)

 

비틀스의 '화이트 앨범' <The Beatles>와 제이 지의 <The Black Album>을 섞어 만든 2004년의 기작 <The Grey Album>, 이 한 장이 발단이었다. 팝과 록의 고전에서부터 힙합과 인디 록의 현황까지 꿰는 너른 스펙트럼과 이를 독특하게 조합해내는 독창성은 데인저 마우스에게 음악가와 음악 팬들의 신뢰를 단번에 가져다주었다. 2000년대 팝 신의 매드 사이언티스트 데이먼 알반은 자신의 피조물, 고릴라즈를 위한 프로듀서로 데인저 마우스를 초청해 <Demon Days>라는 걸작을 만들어냈고, 구디 맙 이후 솔로 커리어를 시작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던 씨로 그린은 다시 날스 바클리라는 2인조 그룹을 만들어 빈티지와 트렌드를 기민하게 오가는 소울 넘버 'Crazy'와 앨범 <St. Elsewhere>를 선보였으며, 개러지 록, 블루스 신에서 주목받고 있던 블랙 키스는 자신들의 컬러에 흥행성을 더한 싱글 'I got mine'을 레퍼토리에 추가하고서는 이후의 모든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겼다. 결과는? 차트 대박 혹은 그래미 수상. 그것도 아니라면 최소한 평론의 찬사. 데인저 마우스와 함께 한다면 손해볼 일은 결코 없다.

 

시장성으로 대표되는 팝의 법칙을 잘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레트로 사운드나 사이키델릭 컬러와 같은 마이너 영역의 문법을 능숙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늘 데인저 마우스의 터치가 닿은 작품들은 정석에서 살짝 벗어나 있지만 충분히 소화 가능하다는, 무시 못 할 장점을 획득한다. 특히 몽환감을 듬뿍 선사하는 공간감 어린 믹싱은 데인저 마우스 표 프로듀싱에 방점을 찍는 주요한 장치. 블랙 키스 표 사이키델릭 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한 <Turn Blue>나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펑크 록에 우주적인 색채를 입힌 <The Getaway>, 사운드 실험을 덧댄 아델의 <25>만을 위한 현대적인 가스펠 트랙 'River Lea', 제임스 머서와 함께 만든 자신의 그룹, 브로큰 벨스의 네오 사이키델리아-디스코 트랙 'After the disco'과 같은 곡들에서 프로듀서의 장기가 특히 잘 드러난다. 이외에도 포르투갈. 더 맨의 인디 팝, 마이클 키와누카의 몽롱한 리듬 앤 블루스, <Songs Of Innocence>라는 이름 아래 내보인 2010년대 U2의 유일한 사운드 모두 데인저 마우스의 손을 거쳤다. (이수호)

 

고릴라즈(Gorillaz) - 'Feel good inc.'
날스 바클리(Gnarls Barkely) - 'Crazy'
블랙 키스(The Black Keys) - 'Weight of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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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테더(Ryan Tedder)

 

원 리퍼블릭의 리더이자, 베니 블랑코와 함께 대세 프로듀서로 각광받는 라이언 테더. 아리아나 그란데, 아델, 마룬파이브, 비욘세 등 슈퍼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세계적인 프로듀서로 거듭난 그가 처음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Apologize'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리드 싱글로 발매되었을 당시 큰 반응 없었던 이 곡이, 다음 해 팀벌랜드를 만나 그야말로 대박을 친 것. 그 전에도 타투(t.A.T.u)나 힐러리 더프와도 작업하는 등 꾸준히 크레딧에 이름을 올리긴 했지만, 팀벌랜드의 발견을 기점으로 라이언 테더는 솔로 커리어 뿐만 아니라 밴드의 명성까지 획득했다. 최근엔 그의 관심이 이디엠으로 쏠렸는지, 제드, 알레소(Alesso)와의 협업 등 장르의 경계를 뛰어넘는 참여가 눈에 띈다. 팝 멜로디와 록 위주의 공간감 있는 사운드로 노래에 무게감을 선사해주는 센스 덕분에 여러 곳에서 러브콜을 받는 라이언 테더. 이 정도면 (미국의) 국민 프로듀서가 아닐까. (정연경)

 

원 리퍼블릭(One republic) - 'Apologize' (Feat. Timbaland)
비욘세(Beyonce) - 'Halo'
마룬 파이브(Maroon 5) - 'Ma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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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폴 앱워스(Paul Epworth)

 

아델, 존 레전드, 콜드플레이, 브루노 마스, U2, 심지어 폴 매카트니까지. 쟁쟁한 이들이 폴 앱워스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인다. 이 중 가장 넓은 영역을 차지하는 건 분명 아델이다. 'Rolling in the deep'을 시작으로 'Skyfall', 앨범 <25>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그래미 트로피까지 선사했다.

 

이 위치까지 오르게 한 큰 강점이 있다. 바로 록, 팝, 알앤비, 펑크(Funk), 힙합, 크로스오버까지 다양한 스펙트럼 속에서도 특유의 소리빛깔을 잃지 않는 것. 그가 그리는 음악의 청사진은 상당히 말끔하다. 모든 것이 적소에 놓여 제 역할을 충실히 하고, 무엇 하나 모나지 않는다. 조화로운 사운드 밸런스나 쌓아올린 공간감 역시 멋지지만, 탄탄한 드럼 사운드가 발군이다. 사실 드럼뿐만 아니라 모든 악기들이 본연의 소리를 가장 '자연스럽게' 내고 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기본기다. (강민정)

 

아델(Adele) - 'Rolling in the deep'
콜드플레이(Coldplay) - 'Magic'
FKA 트윅스(FKA Twigs) - 'Pendul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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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 블랑코(Benny Blanco)

 

1988년생 베니 블랑코의 이름이 업계에서 알려진 계기는 브리트니 스피어스의 6집 <Circus>다. 스무 살의 신인 프로듀서였던 그는 베테랑 닥터 루크(Dr. Luke)와 짝을 이뤄 음반에 참여하며 주목을 받았다. 이후 콤비는 케샤의 'Tik tok', 케이티 페리의 'California gurls' 등을 히트 시키며 빠르게 지명도를 높였고, 닥터 루크와 결별 후에는 단독으로 마룬 파이브의 'Moves like Jagger', 'Payphone'을 차트에 올리며 역량을 입증했다.

 

리아나의 'Diamonds', 마룬 파이브의 'Maps', 저스틴 비버의 'Love yourself' 등이 그의 커리어를 대표한다. 최근에는 에드 시런의 <?> 앨범을 총괄 프로듀싱하며 절정의 기량을 뽐냈다. 알앤비와 밴드 음악, 댄스와 포크, 일렉트로니카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장르 이해도가 그의 원동력. 젊은 프로듀서답게 최신의 소리 동향을 파악하고 가수에 맞춰 도입하는 감각도 남다르다. 히트와 '힙'에 모두 민감한 이라면 그의 행보를 반드시 확인할 것. (정민재)

 

케이티 페리(Katy Perry) - 'Hot n cold'
에드 시런(Ed Sheeran) - 'Castle on the hill'
캐시미어 캣(Cashmere Cat) - 'Love incredible' (Feat. Camila Cabe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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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 베스커(Jeff Bhasker)

 

힙합, 알앤비, 록, 팝을 넘나들며 활동하는 '장르 혼합 시대' 최적의 프로듀서! 버클리 음대에서 재즈 피아노를 전공한 그는 카니예 웨스트의 <808s & Heartbreak> 공동 제작을 시작으로 앨리샤 키스, 브루노 마스를 비롯한 블랙 뮤직 아티스트들의 작품에 참여했다. 이후 펀(Fun.)의 <Some Nights>를 계기로 테일러 스위프트, 케이티 페리 등 더욱 다양한 뮤지션과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팝과 록에서는 리듬 섹션을 강조함으로써 흑인 음악적 요소를 더하고, 힙합에서는 건반 악기로 팝 친화적인 감각을 칠함으로써 곡에 잠재된 매력을 유도해낸다.

 

그는 또한 레트로 음악을 세련된 포장지로 감싸 대중 앞에 선보이는 제작자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1970년대와 1980년대 장르가 담긴 두 앨범, 마크 론슨의 펑크(funk) 파티 음반 <Uptown Special>과 소프트 록, 브릿팝을 녹인 해리 스타일스의 <Harry Styles>가 있다. 가스펠 풍의 코러스와 리버브 효과로 라이브 홀과 같은 공간감을 형성하고, 현대적인 전자음을 부여해 분명 과거의 것임에도 불구하고 세련된 멋을 느끼게 한다. 사운드의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시대에 빛을 발하는 프로듀싱 스타일! (정효범)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 'All of the lights'
펀(Fun.) - 'We are young'
해리 스타일스(Harry Styles) - 'Sign of th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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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윌 메이드 잇(Mike Will Made It)

 

“Mike will made it.” 미국의 힙합음악을 즐기다보면 마이크 윌 메이드 잇의 시그니처 사운드가 우릴 반기곤 한다. 힙합 대중화를 선도한 '트랩'의 대표 프로듀서인 그는 2007년 구치 메인의 믹스테이프 곡으로 데뷔해 퓨쳐, 투 체인즈, 릴 웨인 등 명명한 남부 래퍼들의 곡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스타 프로듀서 반열에 올랐다.

 

한정된 규격의 트랩 비트 안에서 캐치한 사운드를 계발하여 매력적인 사운드를 선사하는 그는 근래에도 비욘세의 'Formation'과 켄드릭 라마의 'Humble.'을 통하여 그의 녹록지 않은 내공을 증명하였다. 그에 대해 놓치지 말아야 할 점 중 하나는 마일리 사이러스의 히트송 'We can't stop'을 프로듀싱했다는 점이다. 팝 감성까지 겸비한 이 다재다능한 프로듀서는 트랩, 알앤비 장르를 넘나들며 그야말로 '이름값'을 하고 있다. (현민형)

 

릴 웨인(Lil Wayne) - 'Love Me' (Feat. Drake & Future)
마일리 사이러스(Miley Cyrus) - 'We can't stop'
켄드릭 라마(Kendrick Lamar) - 'HUM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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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틴 팝, 잘 나가던 월드 뮤직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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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상반기의 가장 큰 히트곡은 단연 루이스 폰시와 대디 양키의 'Despacito'였다. 얼마 전 싸이의 '강남스타일', 위즈 칼리파와 찰리 푸스의 'See you again'을 차례로 무너뜨리고 유튜브 최다 조회 뮤직비디오가 된 것에 이어, 16주 연속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머무르며 머라이어 캐리와 보이즈 투 멘이 오랫동안 지켜온 기록에 어깨를 나란히 했다. 흥행도 흥행이지만 이 열풍이 인상적인 건 노래가 1990년대 후반을 주름잡은 리키 마틴, 제니퍼 로페즈, 마크 앤서니 그리고 산타나의 라틴 팝의 줄기를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라틴 팝은 그 세기말은 물론, 따지면 20세기 내내 가장 잘 나가던 월드뮤직이었다. 'Despacito' 이전에 지구촌 인구에게 각인된 라틴 팝 명곡 18개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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냇 킹 콜(Nat King Cole) - Quizas, quizas, quizas (1958, < Cole Espanol > 수록)

키싸스(Quizas)는 스페인어로 '아마도'라는 뜻이다. 영화 < 화양연화 >에서 차우는 리첸에게 함께 떠날 것을 제안하며 아파트에서 그녀를 기다리지만, 리첸은 끝내 오지 않고 잔잔한 라틴 리듬 위를 걷는 냇 킹 콜의 목소리가 답을 대신한다. '언제나 당신에게 언제, 어떻게, 어디서라고 물으면, 당신은 항상 말해요. 아마도, 아마도, 아마도라고'. 단조로 진행되는 현악 사운드는 밝은 분위기로 전환되고 화자는 상대를 재촉하나, 원하는 대답은 끝내 나오지 않는다. 마치 영화 속 두 주인공이 서로에게 진심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또 다른 버전인 안드레아 보첼리와 제니퍼 로페즈의 듀엣은 조금 더 화려하고, 남녀가 “밀당”을 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한다.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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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토 푸엔테(Tito Puente) - Oye como va (1963, < El Rey Bravo > 수록)

맘보의 왕, 라틴 음악의 거장 '티토 푸엔테'의 대표곡이다. 그는 그래미상을 9번 수상하며 라틴 음악의 교과서로 불렸다. 경쾌한 차차차 리듬으로 노랫말이 더욱 흥을 돋운다. 신나는 템포에 수줍게 스탭을 밟다가도 'Oye como va mi ritmo (이봐, 내 리듬 어때?)'가 나오면 몸을 뒤흔들게 되는 것이다. 이 음악은 그동안 많은 아티스트에게 리메이크됐는데 특히 1971년 산타나(Santana)가 리메이크하여 빌보드 11위에 오르면서 글로벌 팝으로 승격했다. 이에 원작자인 티토 푸엔테는 곡을 널리 세상에 알린 산타나에게 공개적으로 감사를 전하기도 했다. (김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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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펠리시아노(Jose Feliciano) - Che sara(1971, 산레모 가요제 입상곡)

보컬과 기타의 거장 호세 펠리시아노의 한국 애청곡은 'Gypsy', 'Once there was a love', 'Rain' 그리고 'Feliz navidad' 등 부지기수지만 우리가 팝으로 들어가던 방식인 번안의 측면에서는 'Che sara'가 선두에 선다. 트윈 폴리오, 히식스 등 톱스타들이 대거 그 대열에 참여했다. 이유는 칸초네의 메카로 리즈 시절이었던 1971년 산레모 가요제에 다른 누구도 아닌 우리가 사랑했던 호세 펠리시아노가 참여해 노래한 핫한 노래였기 때문이다.

 

결과가 준우승이었으니 빠르게 국내 팬에게 전해졌을 수밖에. 아마도 도리스 데이의 '케세라 세라'와 제목이 유사한 탓에 곡 제목이 'Que sera', 혹은 'Que sara'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이탈리아어 원제를 영어로 번안하면 '될 대로 되라'가 아니라 '어떻게 될까(What will be)'다. 떠나는 자의 불안감과 그리움을 반영하고 있다. 훗날 라틴 팝의 지정학적 원조라고 할 푸에르토리코 출신으로 이탈리아 칸초네를 불렀지만, 이탈리아 역시 라틴이니 라틴 팝의 범주화가 하등 이상할 게 없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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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다데스(Mocedades) - 'Eres tu' (1973, < Eres Tu > 수록)

이처럼 아름다운 연가(戀歌)는 흔치 않다. 1973년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해서 2위에 입상한 스페인 그룹 모세다데스의 'Eres tu'는 서정성과 웅장함을 소유한 러브송으로 영어 제목 'Touch the wind'라는 부제를 달고 다른 언어에 배타적인 미국의 빌보드 싱글차트 9위까지 올라 세계적인 히트곡이 되었다. 'Eres tu'는 1978년에 쌍투스가 '그대 있는 곳까지'로 번안했고 모세다데스의 또 다른 노래 'Adios amor'는 여성 듀엣 현경과 영애가 '그리워라'로 불러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고풍스러운 'Eres tu'는 들을수록 아름답고,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해지는 마법 같은 노래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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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 - Nathalie(1982, < Momentos > 수록)

'이집트 사타트 대통령보다도 이집트 유목민에게 더 유명한' 그는 '50-60대 여성의 감성을 일깨운다'는 평가와 함께 그는 1980년대 초반 다시 한 번 전가의 보도인 라틴 음악에 주술을 걸었다. 위력적 재무장으로 갑자기 음악 판은 마이클 잭슨의 미국 팝과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의 라틴 팝으로 양분되었다. 열풍 광풍이 아니었음에도 쌓여져가는 그의 무게감은 무서웠다. 그 시작이 국내에서는 조금 늦게 소개된 곡 'Hey'(1980)였다.

 

바로 이어 'Nathalie'가 전파를 휩쓸면서 '라틴 팝의 황제'라는 수식이 자연스러워졌다. 팝 차트에 부재한 인물이면서도 앨범들이 잇달아 라이선스 되었으며 이 곡이 수록된 < Momentos >도 당연히 국내 발매되었다. 이 노래 후 2년이 지나 훌리오는 'To all the girls I've loved before'로 마침내 비(非) 라틴, 글로벌 스타로 비상했다. 실크처럼 한없이 부드럽지만 더러 강한 톤을 유지하는 그의 보컬은 해리 벨라폰테 이후 아마도 여성들을 가장 안심하게 그리고 아늑하게 만드는 성적 매혹(sexy)의 진수였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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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리아 에스테판 &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Gloria Estefan & Miami Sound Machine) - Conga (1985, < Primitive Love > 수록)

쿠바 이민자인 글로리아 에스테판과 그의 남편 에밀리오 에스테판이 결성한 마이애미 사운드 머신의 성공 신호탄이었던 'Conga'는 1986년에 빌보드 싱글차트 10위까지 밖에 오르지 못했지만 그들의 시그니처 송이 되었고 쿠바의 민속 악기이자 춤인 콩가를 세계적으로 알리는 터닝 포인트가 되었다. 흥겨운 혼 섹션과 격렬한 타악기로 비트를 한껏 끌어 올린 'Conga'는 흥겹고 낙천적인 라틴 문화를 전 세계에 전파했다. 1988년 5월에는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린 프레올림픽 쇼에 참여해 우리에게 멈출 수 없는 남미 특유의 흥을 선사했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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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돈나(Madonna) - La isla bonita (1986, < True Blue > 수록)

“라틴 팝에 웬 마돈나?” 의아한 조합이라 생각했다면 곤란하다. '아름다운 섬'이란 뜻의 노래는 발표 이래 그를 상징하는 히트곡 중 하나로 널리 불려왔기 때문. 특히 국내의 라디오에서는 'Like a virgin' 이상으로 청취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발매 당시에도 물론 인기를 누렸으나, 시간이 흐를수록 리퀘스트가 증가하며 애청곡이 된 특별한 케이스다. 스패니시 기타, 마라카스와 각종 퍼커션 등 장르의 색을 띠는 악기들과 생생한 선율이 듣는 이를 유혹하듯 끌어당긴다. 라틴 혈통이 아닌 가수가 부른 라틴 팝의 대표곡이자 마돈나의 살아있는 명곡.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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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 로보스(Los Lobos) - 'La bamba' (1987, < La Bamba Original Motion Picture Soundtrack > 수록)

'La bamba'는 멕시코의 베라크루즈 지역에서 주로 연주되던 결혼식 노래를 리치 발렌스(Ritchie Valens)가 로큰롤 특유의 속도감을 더해 재탄생시킨 곡이다. 로큰롤의 선구자 중 하나인 발렌스의 'La Bamba'는 그와 버디 홀리(Buddy Holly)의 비행기 사고, 엘비스 프레슬리의 군 입대, 제리 리 루이스(Jerry Lee Lewis)의 스캔들 등 사건들로 비롯된 로큰롤 시대의 후퇴기를 대표하는 트랙 중 하나이다.

 

곡은 약 30년 후인 1987년 여름, 리치 발렌스의 짧은 생애를 다룬 영화 < La bamba >에 수록된 라틴 록 밴드 로스 로보스 버전으로 더욱 유명하다. 원곡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후반부에 멕시칸 기타 독주를 삽입함으로써 라틴 특유의 멋을 더한 로스 로보스의 'La bamba'는 3주 연속 빌보드 차트 1위를 기록, 훌륭한 리메이크의 표본이 된다. 우리나라의 여러 CF나 방송 프로그램에서 주로 사용되었기에, 흥겨운 도입부만 들어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친숙한 라틴 팝이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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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세카다(Jon Secada) - If you go (1994, < Heart, Soul & a Voice > 수록)

라틴 디바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의 세션을 시작으로 라틴 팝에 입문했다. 이후 본격적인 데뷔를 하며 < Jon Secada >와 라틴어 앨범 < Otro Dia Mas Sin Verte >로 화려한 성공의 문을 열었다. 열기에 박차를 가하며 발매한 2집 < Heart, Soul & a Voice >도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특히 2집의 첫 싱글인 'If you go'는 미국을 넘어 국내에서도 인기를 끌었다. 고음에서 뻗어 나오는 허스키한 목소리, 매끄러운 선율, 흥겨운 리듬이 삼박자를 이루며 단숨에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신나는 리듬 속에서도 흠잡을 데 없는 그의 보컬은 더욱 완성도를 높였다. 덕분에 그는 1990년대 라틴 팝의 정상에 서 있었다. 그것도 잠시 2000년을 들어서며 세카다는 리키 마틴을 필두로 한 젊은 음악가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비록 그가 돌풍의 주역은 아니었지만, 90년대의 라틴 팝 왕은 틀림없이 세카다였다. (임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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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The Beatles) - Besame mucho (1995, < Anthology 1 > 수록)

멕시코 작곡가 '콘수엘로 벨라스케스(Consuelo Velasquez)'의 볼레로(라틴 댄스 음악의 한 장르) 곡으로 여러 아티스트가 각기 다른 개성으로 커버해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원곡인 스페인어 가사에서는 이별을 앞둔 연인의 감정을 격렬히 묘사하는 반면에 영어 가사에서는 달콤한 사랑의 언어를 되뇐다. 차차붐! 추임새와 함께 시작하는 비틀스의 베사메 무초에는 그들의 청춘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빠른 템포의 연주 속에 녹아든 저돌적인 보컬은 사랑을 마주한 젊은이의 고뇌가 뒤섞여 보다 직설적이다. 그간의 부드럽고 고혹적인 수많은 판과는 확연히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함부르크 일대를 전전하며 무대에 오르던, 평균 연령 20대 초반의 신인의 셋 리스트에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라틴 팝은 빠지는 일이 없었다. (노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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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레나(Selena) - I could fall in love (1995, < Dreaming Of You > 수록)

라틴 팝은 흥겹기만 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부드럽게 타파하는 팝 발라드 트랙. 하지만 노랫말에서 드러난 열정과 간주에 삽입된 스페인어가 라틴의 향기를 퍼뜨린다. 그가 건넨 마지막 선물이란 사실이 이 곡을 더욱 의미 깊게 한다. 그는 1995년 3월 31일 총격으로 23세의 생애를 마감했다(이 앨범은 그 후인 6월 발매됐다). 당시 사회적 충격은 대단했다. 주지사는 그의 사망일을 '셀레나의 날'로 지정했고, 그의 생애는 제니퍼 로페즈 주연의 < Selena >로 다시 스크린에서 재현됐다. 테하노 음악의 여왕이라 불리며 세상에 자신을 당당히 드러냈던 그. 미국에 뿌리내린 라틴계 이주민들의 긍지이자 희망이었다. (강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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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 - Bailamos (1998, < Cosas del Amor > 수록)

많은 이들이 라틴 팝 하면 리키 마틴이나 샤키라로 비롯되는, 넘쳐 흐르는 정열을 떠올릴 테다. 그럼에도 필자가 칠레에 잠시 거주할 때 감지했던 라틴 팝의 주된 감성은 그런 무지막지한 활기와는 약간 거리가 있었다. 바야흐로 지금은 빌보드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는 루이스 폰시와 대디 양키가 각각 'No me doy por vencido'와 'Llamado de emergencia'로, 월드와이드 EDM 스타가 된 핏불이 'I know you want me(calle 8)'로 스페인어권을 휩쓸던 2009년. 그 기저를 지배하던 것은, 여유를 바바리코트처럼 걸친 젠틀맨의 섹시한 몸짓이었다. 그 농염함의 정서를 관통하는 것이 바로 1999년 라틴 팝 열풍의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던, 엔리케 이글레시아스의 이 노래였다.

 

이미 같은 언어권에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그는, 리키 마틴이 앞서 일으킨 라틴 팝 붐의 물결을 타고 성공리에 미국 시장을 정복했다. 그 배후에 있던 것은 바로 윌 스미스. 1999년 그의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아 영화 <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 >에 수록될 노래를 부탁했고, 그때 간택된 것이 < Cosas del Amor >(1998)에 수록되어 있던 이 끈적거리는 춤곡. 셰어의 'Believe'를 합작했던 폴 베리와 마크 테일러가 만들어 낸 또 하나의 빌보드 1위 곡으로, 느긋한 비트 위를 타고 흐르는 플라멩코 기타, 숨소리 반 가창 반의 뇌쇄적인 보컬은 리키 마틴과는 또 다른 스타일의 궤적을 이국적으로 그려냈다. 그 감흥은 우리가 언제든지 음악을 통해 다시 느껴볼 수 있지만, 아쉽게도 그때 이후로 다신 볼 수 없는 것도 있다. 그게 뭐냐고? 바로 코 옆에 있던 그의 큼지막한 점!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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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 베가(Lou Bega) - Mambo No. 5 (A Little Bit of...) (1999, < A Little Bit of Mambo > 수록)

1950년대 전 세계적으로 맘보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페레즈 프라도(Perez Prado)의 원곡을 세련되게 각색한 곡이다. 독일 출신 아티스트 루 베가(Lou Bega)는 원곡에서 느껴지는 멕시코 본토의 쾌활함과 리듬감을 그대로 담아냄과 동시에 달짝지근한 멜로디로 노랫말을 가미하여 듣는 맛을 배가했다. 세기말, 더욱 풍성해진 브라스 사운드와 트렌디한 스크래치 전자음 구성으로 재탄생한 'Mambo No. 5 (A Little Bit of...)'는 다시금 전 지구를 강타하며 라틴 팝의 입지를 공고히 했다. (현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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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앤서니(Marc Anthony) - You sang to me (1999, < Marc Anthony > 수록)

정열의 댄스 리듬만이 라틴 팝의 모든 것은 아니다. 푸에르토리코 태생의 마크 앤서니는 감미로운 스탠더드에 뜨거운 로맨스를 실어 새천년 라틴 팝 시대를 호령했다. 3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간 동명의 미국 데뷔작의 쌍두마차 두 싱글 덕이었는데, 젠틀한 댄스 트랙 'I need to know'가 먼저 이름을 알렸다면 애절한 R&B 'You sang to me'는 깊은 매력으로 '진지한 라틴 팝 스타'도 있음을 보여줬다. 영원한 줄 알았던 전처 제니퍼 로페즈를 향한 사랑의 목소리가 감미로운 어쿠스틱 기타와 후반부 아코디언 연주로 풍성하게 감싸진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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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타나(Santana) - Maria maria (1999, < Supernatural > 수록)

라틴록 '지존' 산타나의 초히트곡! 둔탁한 힙합 톤 베이스를 시작으로 유려한 스패니쉬 기타가 잔잔하게 흐른다. 전체적으로 어쿠스틱한 분위기의 곡을 이끌어가는 세 주인공은 알앤비 그룹 프로덕트 지앤비(The Product G&B)의 애절한 보컬과 찰떡같은 랩, 라틴 속에 절묘하게 힙합을 녹여낸 푸지스(Fugees)의 와이클리프 진(Wyclef Jean)과 제리 듀플레시스(Jerry Duplessis)의 프로듀싱, 그리고 훅 찌르고 들어오는 산타나의 관능적인 일렉 기타다. 중남미와 이스트 코스트가 한데 뒤섞이며 뿜어내는 마성의 매력에 그래미는 베스트 보컬 듀오&그룹 퍼포먼스를 바쳤고, < Supernatural >은 주요 부분을 포함해 8개의 그래미 트로피와 거의 모든 차트 정상을 휩쓸며 '옛날 사람'으로 저물어가던 산타나를 단번에 팝의 중심에 우뚝 세웠다. 시간을 뛰어넘는 곡의 흡인력은 오늘날 디제이 칼리드의 재해석판 'Wild thought'의 히트가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조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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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 - Let's get loud (1999, < On the 6 > 수록)

1990년대 후반에 등장했던 라틴계 섹시 스타가 여전히 우리 안의 관능을 일깨우고 있다. 많은 이들의 첫 향수가 되었을 스테디셀러 '글로우 바이 제이로(JLO)', 여기서 제이로가 바로 'If you had me', 'No me ames' 등으로 메가 히트를 냈던 가수 제니퍼 로페즈를 뜻한다. 다만 그가 선보였던 음악은 은은한 비누 향과는 거리가 먼 열정의 라틴 팝. 특히 'Let's get loud'는 삼바 리듬의 빵빵한 브라스와 더불어 제목인 “Let's get loud”를 반복하는 확실한 훅이 인상적인 댄스곡이다. 1999년 발매 당시 리키 마틴의 'Livin' la vida loca'와 함께 국내 팬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한동안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댄스 신고식' 비지엠으로 애용하기도 했다. (홍은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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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키 마틴(Ricky Martin) - She bangs (2000, < Sound Loaded > 수록)

1999년 그의 거대 싱글 'Livin' la vida loca'는 빌보드 싱글 차트 5주 연속 1위를 거며 쥐며 라틴 팝을 대중 음악의 트렌드로 건져 올렸다. 잘생긴 외모와 섹시한 춤사위, 여기에 진입장벽을 낮춰 친절히 적은 영어 가사에 전 세계는 뜨겁게 끓어올랐다. 'She bangs'는 그 인기요소를 그대로 조합한 곡이다. 정열적인 라틴선율에 '그녀에게 빠졌음'을 에로틱하게 표현한 가사는 세상을 향한 그의 세일즈 포인트였다. 비록 전작에 비견해 큰 성공을 얻진 못했지만 '라틴 팝의 황제'란 타이틀을 이어가기에는 충분히 훌륭한 싱글이다. (박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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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키라(Shakira) - Whenever, wherever (2001, < Laundry Service > 수록)

국내에서는 < 주토피아 >의 인기 가수 '가젤'이 부른 'Try everything'으로 친숙한 뮤지션이지만, 그가 지닌 고유의 매력은 바로 이 곡에 담겨있다. 미국 시장 진출을 위해 경쾌한 라틴 리듬에 록적 요소를 가미한 첫 번째 영어 싱글 'Whenever, wherever'는 스페인어 버전인 'Suerte'와 함께 음반에 수록됐다. 노래는 20여 개국 이상의 음악 차트 정상을 가볍게 휩쓸며 세상 곳곳에 이름 세 글자를 알린 고마운 존재로 등극한다. 탄탄한 음악성과 듣는 이를 매혹하는 비음은 뮤직비디오 속 농염한 벨리 댄스와 어우러져 이목을 끌기에도 충분했다. 언제, 어디서 듣더라도 그곳을 흥겨운 무대로 만들어버리는 진정한 라틴 팝의 여왕! (정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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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의 별 탐 페티의 업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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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2일. 로큰롤의 별, 탐 페티가 갑작스러운 심장 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66세. 1976년에 결성된 탐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Tom Petty and the Heartbreakers)를 시작으로 거장들이 모인 슈퍼그룹 트래블링 윌베리스(Traveling Wilburys)를 거쳐 머드크러치(Mudcrutch)까지, 끊임없이 록의 발전에 기여했던 로커였기에 그 아쉬움이 크다. 이즘이 선정한 14곡과 함께 그의 업적을 기리는 시간을 가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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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girl (1976, <Tom Petty and the Heartbreakers> 수록)

 

빌보드 싱글차트 100위 안에 등장하지 못했지만 탐 페티를 대표하는 노래 중 하나다. 1960년대 활동한 포크록 밴드 버즈에게 영향을 받은 깔끔한 기타 소리와 초기 로큰롤 싱어 송라이터 보 디들리 스타일의 박자는 탐 페티가 어디에 음악적 뿌리를 대고 있는지 알려주는 명확한 증거다. 그 위에 1976년 당시 붐을 이루던 펑크의 분위기까지 우려낸 'American girl'은 활동 초기에 음반사의 눈치를 보지 않는 탐 페티의 결연한 결과물이다. 음악전문지 <롤링 스톤>에서 선정한 '위대한 기타 노래 100'에서 76위를 차지한 'American girl'의 오프닝은 개러지 록 밴드 스트록스의 'Last nite'의 도입부에 영향을 주었고, 그 인연으로 스트록스는 2006년도 탐 페티 공연에서 오프닝을 맡았다. 2009년에는 테일러 스위프트가 리메이크해서 미국을 상징하는 곡임을 확인시켰다. (소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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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akdown (1976, <Tom Petty and the Heartbreakers> 수록)

 

초장부터 야릇한 무드를 조성하는 전자 피아노, 여백을 채우는 마이크 캠벨(Mike Campbell)의 블루지한 기타 리프, 곡을 풍성하게 장식하는 알앤비풍의 백코러스, 곡은 좀처럼 시선을 한 곳에만 둘 수 없게 만든다. 롤링 스톤스의 섹시함을 겸비한 탐 페티의 거드럭거리는 보컬 또한 시대를 이을 록 스타의 탄생을 예고하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Tom Petty and the Heartbreakers>의 첫 번째 싱글 'Breakdown'엔 밴드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실히 담겨있었다. 2분 남짓한 짧은 러닝타임만으로 귀가 충분히 젖지 않는다면, <The Live Anthology>에 실린 7분짜리 라이브 버전을 들어보자. 길게 늘어지는 캠벨의 기타 솔로와 레이 찰스의 'Hit the road Jack'가 환상적으로 어우러지는 후반부가 가히 압권이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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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ugee (1979, <Damn The Torpedoes> 수록)

 

'Refugee'는 탐 페티가 얼마나 록의 통사에 충실한지 여실히 보여준다. 쓰리 코드를 중심으로 하는 단순한 골격, 버스와 코러스가 뚜렷한 진행 구조, 곡을 주도하는 블루지한 기타, 밥 딜런 풍의 보컬과 같은 'Refugee'의 주된 특징들은 1970년대 중후반 록 사운드가 지향하던 복고성과 큰 접촉면을 형성한다. 탐 페티 앤 더 하트브레이커스의 세 번째 앨범 <Damn The Torpedoes>의 두 번째 싱글로서 빌보드 싱글 차트 15위라는 높은 성적을 기록했으며 'Don't do me like that'과 함께 앨범을 히트작으로 만드는 데 큰 힘을 보탰다. 로킹한 사운드와 강렬한 에너지가 넘실대나 사실 'Refugee'는 밴드의 첫 레이블, 쉘터의 배포사 ABC 레코드가 MCA 레코드에 매각되는 상황에서 벌어진 계약 문제와 이에 대한 불만을 가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낸 곡이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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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do me like that (1979, <Dam The Torpedoes>)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등극하며 본격적인 히트 퍼레이드의 시작을 알린 더 하트브레이커스의 세 번째 앨범 <Damn The Torpedoes>의 첫 번째 싱글이다. 본래 탐 페티는 이 곡을 블루스에서 소프트한 면모를 갖춰가던 제이 가일스 밴드(The J. Geils Band)에게 선물하려 했으나, 브루스 스프링스틴의 <Born To Run>으로 명성을 얻어 앨범에 합류한 프로듀서 지미 러빈(Jimmy Iovine)의 만류로 본인의 노래가 되었다. 간결한 피아노 연주와 블루지한 기타 선율이 이끄는 명료한 멜로디는 향후 탐 페티 사운드를 대표하며 빌보드 싱글 차트 10위에 오르며 그들의 첫 탑 텐 히트곡이 되었다. 이후 제이 가일스 밴드는 뉴웨이브를 받아들여 1981년 'Centerfold'로 대히트를 기록하고, 이 곡은 2009년 낸시 마이어스 감독에 메릴 스트립, 알렉 볼드윈이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사랑은 너무 복잡해(It's Complicated)>에서 등장하며 생명력을 증명했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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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iting (1981, <Hard Promises> 수록)

 

우선 에피소드 하나. 네 번째 앨범인 <Hard Promises>를 녹음할 당시, 우리의 프론트맨은 몹시 설레던 상태였다. 그 이유인 즉슨, 존경해 마지않는 존 레논이 같은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할 예정이었기 때문. 이제나 저제나 'One of fab four'와의 만남을 고대했으나, 결국 이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갑작스런 우상의 죽음을 기리고자 완성된 마스터반 위엔 'WE LOVE YOU JL'이라는 문구가 새겨졌다. 이 시디의 첫 곡에서 그는 노래한다. “기다림은 어려운 것이에요.(The waiting is the hardest part)”라고.

 

덜 다듬은 것 같으면서도 군더더기는 전혀 없는 블루지한 기타 록 사운드를 토대로, 여느 히트곡 보다도 강한 훅을 펼쳐놓는 이 노래는 이렇듯 삶에 있어 기다림의 개념을 재고하게 만든다. 위 내용이 직접적인 계기였는지 정확히 알 순 없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어떤 표정으로 기다려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모두에게 공통임을 이 곡의 히트로 증명했다. 빌보드 싱글차트에서 19위, 메인스트림 록 차트에서 6주 연속 1위를 기록한 밴드의 대표곡 중 하나. 여담이지만, <심슨> 시즌 9에서 호머가 자신이 구입한 총기를 기다리는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쓰이기도 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사상 최악의 총기사고가 일어난 지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그는 세상을 떠났다.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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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p draggin' my heart around (1981, <Hard Promises> 수록)

 

좀처럼 듀엣을 하지 않는 그임에도 유독 한 사람과는 여러 번 호흡을 맞췄다.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플리트우드 맥의 멤버이기도 한 'Queen of Rock & Roll' 스티비 닉스는 이 프론트맨의 열렬한 팬임을 늘 강조해왔다. 심지어는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탐 페티가 자신을 설득했다면, 나는 플리트우트 맥을 떠나 밴드에 합류했을 거라고.

 

이를 계기로 시작된 우정은 작품으로 이어졌다. <Hard Promises>에 실렸던 'Insider'가 예행연습이라는 듯, 곧이어 친구를 위한 완벽한 헌화가를 만들어 비슷한 시기에 녹음한 것이 바로 이 듀엣 곡. 굴지의 싱어송라이터 스티비 닉스가 솔로 커리어의 시발점으로 이 노래를 선택한 사실이 그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여주고 있다. 달콤한 하모니를 그려내는 일반적인 사례와 달리, 이성간의 듀엣임에도 같은 키에서 가창을 겨루는 듯 펼쳐지는 보컬 퍼포먼스는 지금 들어도 흥미롭다. 빌보드지가 선정한 <The 40 Biggest Duets of All Time> 28위에 올라있기도. 지난 7월 9일, 영국 런던에서 있었던 <British Summer Time> 페스티벌이 그들의 마지막 퍼포먼스가 될 줄 누가 알았을까. (황선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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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Got Lucky (1982, <Long After Dark> 수록)

 

신디사이저 리프가 곡을 이끌고 드럼 루프가 뒤를 받친다. 곡의 중간과 끝에서는 트레몰로 암을 활용한 서프 록 풍의 기타가 등장한다. 1970년대 중후반과 1980년대 초, 건반 악기를 두고 다채로운 시험를 하던 뉴웨이브 식의 접근과 탐 페티가 가진 전통적인 로큰롤 터치가 만난 곡이다. 음악에서의 독특한 시도는 뮤직 비디오에도 이어졌다. 영화 <매드 맥스>로부터 영향을 받아 밴드는 영상에 미래 풍의 세계관과 구성 연출을 담아내며 뮤직 비디오 영역에서도 참신한 결과물을 낳는 데 성공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20위라는 높은 성적을 남겼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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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n't come around here no more (1985, <Southern Accents> 수록)

 

유리드믹스의 데이비드 A. 스튜어트와의 협업으로 탄생한 <Southern Accents>의 리드 싱글. 데이비드 A. 스튜어트의 가세로 세련미 넘치는 록이 탄생했다. 넓게 조성한 사운드 공간 속에서 큼지막하게 울리는 대담한 신디사이저로 1980년대 뉴 웨이브의 인자를 이식하고 끊임없이 윙윙거리는 일렉트릭 시타르로 사이키델릭 록의 성분을 확보했다. 루츠 록을 기반으로 아메리카나 스타일을 펼쳐온 그간의 탐 페티와는 궤를 달리하는 결과물. 빌보드 싱글 차트 13위에 오르며 1980년대의 탐 페티를 대표하는 곡으로도 남아있다.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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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st Night (1988, <Traveling Wilburys Vol.1> 수록)

 

그의 활동궤적 가운데 또 하나의 광채는 밥 딜런, 조지 해리슨, 제프 린 그리고 로이 오비슨과 함께한 프로젝트 트래블링 윌베리스(Traveling Wilburys)다. 어쩌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슈퍼그룹'이라 할 이 TF 팀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다.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은 그들의 첫 앨범에 수록된 이 곡은 탐 페티 지분으로 로이 오비슨와 함께 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 이상으로 그가 다채로운 감정을 다양한 장르로 표현하는 음악가임을 레게 터치의 이 곡은 증명한다. “어젯밤 만난 매력적인 여인과 놀아나다가 청혼했더니 갑자기 그녀는 총을 들이 댄다. '이제 파티는 시작이야! 돈과 목숨 중 뭘 택할래?” 탐 페티는 은근 재미를 좋아했던 사람이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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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on't back down (1989, <Full Moon Fever> 수록)

 

'Don't do me like that'이 탐 페티 앤 더 하트 브레이커스의 출세 싱글이라면 'I won't back down'은 솔로 탐 페티를 알리는 첫 싱글이다. 상업적으로도 평단으로도 호평 일색을 받았던 <Full Moon Fever>에는 'Free fallin''도 있고, 'Runnin' down a dream'도 있지만 처음 싱글 릴리즈 된 곡은 'I won't back down'이었다. 당대의 콤비 제프 린과 공동 작곡하였으며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이 백 보컬과 기타를 맡은 데다 뮤직비디오에는 링고 스타까지 등장하는 호화 속에는 간결한 기타 리프와 멜로디로 '세상이 계속 나를 밀어낸대도 / 나는 내 자리를 지키리 / 물러나지 않을 거야'라는 탐 페티의 굳건한 메시지가 있다. 그 의지로 인해 2001년 9/11 테러 당시 가장 사랑받은 노래 중 하나였으며 샘 스미스 'Stay with me'가 이 곡을 표절했다는 논란으로 더 유명해졌다. 샘 스미스 본인은 곡을 들어본 적은 없으나 유사성을 인정했고, 탐 페티도 고의는 없었을 거라고 했으나 어쨌든 수익의 12.5%가 탐 페티와 제프 린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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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ee fallin' (1989, <Full Moon Fever> 수록)

 

고속도로를 달리며 세상 가득 행복한 표정을 짓는 탐 크루즈가 부르던 노래. 롤링 스톤즈의 'Bitch'와 칩 테일러의 고전 'Angel of the morning', 그램 파슨(Gram Parson)의 'She'를 제친 <제리 맥과이어> 속 한 장면으로 우리의 기억 속 깊이 각인된 곡이다. 제프 린이 '쓰리 코드만 잡고 아무 가사나 불러보라'고 하여 만들어진 이 곡은 사랑하는 여인을 고향에 두고 성공을 쫓아 도시로 상경한 남자의 자유로움을 낭만적인 어쿠스틱 연주에 담아 캘리포니아의 방랑자 탐 페티를 완성했다. 소련이 해체되고 동구권의 공산주의가 무너지던 1980년대 말 '냉전은 끝났다!'의 자유로움을 상징했던 'Free fallin''은 미국의 자부심이자 전 세계의 부러움이었다. 빌보드 싱글 차트에서는 7위까지만 올랐음에도 가장 유명한 곡으로 드 라 소울, 스티비 닉스 등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커버했으며, 2007년 존 메이어의 라이브 버전이 또 다른 히트를 만들었고 2008년 미국의 상징 슈퍼볼 공연에서도 장관을 연출했다.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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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rning to fly (1991, <Into The Great Wide Open> 수록)

 

미국 냄새, 그중에서도 컨트리의 성분이 다분한 탓일까. 우리나라에서 탐 페티는 낯선 이름이다. 'Mary Jane's last dance', 'You don't know how it feels'와 함께 1990년대의 탐 페티를 대표하는 곡이자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의 제프 린(Jeff Lynne)과의 협업으로도 유명한 'Learning to fly'는 아마, 탐 페티 입문용으로 가장 최적의 곡일 것이다. 쉬운 코드 진행과 잘 들리는 멜로디, 정감이 깃든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에서 컨트리의 향취가 짙게 풍겨옴에도 이국적인 거부감이 전혀 없다. 신시사이저가 곁들여진 보니 타일러(Bonnie Tyler) 버전과 미니멀한 편곡의 레이디 엔터벨럼(Lady Antebellum) 버전과 비교해서 듣는 것도 곡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다. (이택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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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y Jane's last dance (1993)

 

이 노래가 나오자 다른 해석이 팬들의 편을 가르게 했다. 하나는 대마초에 관한 내용이라는 주장이었다. 제목에 쓰인 'Mary Jane'이 마리화나, 대마초를 일컫는 말인 데다가 '메리 제인과의 마지막 춤으로 고통을 한 번 더 날려 버렸네(Last dance with Mary Jane, one more time to kill the pain)'라는 가사가 한층 의혹을 부풀렸다. 어떤 이들은 탐 페티의 아내 제인 벤요와의 불화를 암시한 노래라는 입장을 취했다. 당시 부부에게서 세간이 주목할 만한 엄청난 문제가 불거져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노래의 여주인공과 부인의 이름이 같다는 점, 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 화자가 홀로 남겨졌다는 플롯을 두고 음악팬들은 비극의 징조를 읽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부는 1996년 22년간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탐 페티가 확실한 설명을 남기지 않은 터라 팬들의 의견은 어쩌면 더욱 분분해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해석은 아무래도 상관없다. 듣는 순간 변두리 작은 마을이 눈앞에 펼쳐지는 구수한 사운드, 버스에서의 음색과 대조돼 한층 예쁘게 들리는 후렴, 톤을 달리해 몰입도를 높이는 기타 솔로 등 음악적 외형이 멋스러운 사실은 많은 이가 동의할 것이기 때문이다. 노래는 기묘한 스토리, 킴 베이싱어의 연기가 돋보인 뮤직비디오로도 색다른 재미를 제공했다. (한동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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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s good to be king (1994, <Wildflowers> 수록)

 

밴드 하트브레이커스와 분리될 수 없는 사람이지만 일생에 걸쳐 '자유'를 탐한 그는 솔로 앨범도 3장이나 냈고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1994년 말에 발표한 릭 루빈 프로듀스의 앨범 <Wildflowers>은 그대로 하트브레이커스 멤버를 세션으로 썼으면서도 솔로로 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밴드앨범과 다른 '나만의 스타일'을 살리고자 했다고 나중 밝혔다. 곡은 앨범 세 번째 싱글로 빌보드 68위까지 올랐다. 처연한 기조 속에 그는 어떤 곡을 해도 컨트리 성향과 블루스 성향을 균등하게 드러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게 로큰롤이다. 1996년 동생이 운영하던 서울 신촌 소재의 카페에서 “한번쯤 왕이 되어 모든 걸 누리고 싶다”며 줄기차게 이 곡을 메모지에 써서 신청하던 손님, 이제는 탐 페티처럼 저 세상 사람이 된 당시 30대 초반 남(男)이 너무나 보고 싶다...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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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유닛’과 ‘믹스나인’, 아이돌의 동아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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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리부팅 프로젝트 : 더 유닛>과 <믹스나인>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이돌 산업의 핵심 작법으로 자리했음을 공인한다. 두 번의 시즌을 거친 <프로듀스 101>이 미디어 주도의 새로운 아이돌 육성과 데뷔, 활동을 거대한 성공으로 정의하면서 전통의 연습생 과정 - 선발 - 데뷔 - 홍보의 과정은 한데 집약되었고 그 영역은 신인을 넘어 기존 시스템 하의 그룹 멤버들까지 오디션으로 확장되었다. 지상파 KBS가 제작하고 거대 기획사 YG 엔터테인먼트가 주도하는 대규모 경연은 이제 완벽한 주류의 문법이다.

 

<프로듀스 101> 이전에도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은 있었다. JYP의 <식스틴>, YG의 <믹스 & 매치>, FNC의 <d.o.b : Dance or Band> 등 기획사가 케이블 채널(엠넷)의 플랫폼을 빌려 자사 연습생들을 홍보하고 데뷔 전 인지도를 끌어 모으는 포맷은 최근 몇 년간 아이돌 레드오션을 타개하고자 하는 새로운 시도로 주목 받았다. 그러나 <프로듀스 101>이 차별화시킨 것은 크게 세 가지가 있는데, 첫째로 소속사의 제한을 두지 않았고 둘째로 인원 제한을 크게 잡았으며 셋째로 연습생의 자격을 엄격하게 정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제 연습생들은 규격화되고 정해진 자사의 경쟁 시스템에서 벗어나, 심지어 데뷔 유무와도 관계없이, 오직 대중의 투표에 의해 희비가 엇갈리는 무한의 경쟁 시스템 속에서 모든 준비 과정을 콘텐츠화 당하게 됐다.

 

11개월 활동 기간 동안 100억에 가까운 수익을 올렸던 시즌 1의 아이오아이 열풍을 넘어 시즌 2의 워너원은 그야말로 가요계를 폭격하고 있다. 방송 기간 동안 다져진 각 멤버들의 견고한 팬층과 '꽃길만 걷게 해주겠다'는 그들의 충성심은 3개월 만에 밀리언셀링 데뷔 앨범을 안겨주며 급속한 새 권력으로 등극했다. 그런데 <프로듀스 101 시즌 2>에서 성공한 팀은 최종 선발자 워너원뿐만이 아니다.

 

멤버 다수가 데뷔조 상위권을 유지하다 황민현 한 명만이 살아남은 6년 차 보이그룹 뉴이스트는 2013년 발매한 '여보세요'가 차트를 역주행하더니 뉴이스트 W라는 이름으로 늦은 성공을 만끽하는 중이다. 워너원 하성운이 속한 그룹 핫샷은 2년 만에 싱글 'Jelly'를 발표하며 재시동을 걸었고 멤버 노태현은 역시 또 다른 <프로듀스 101 시즌 2>의 아이돌 JBJ로 새 활동을 시작했다. 오프로드에 속해있던 김남형은 AA라는 이름으로 재데뷔하였으며, 탑독의 김남형 역시 JBJ에 속해있다. 워너원에 합류하지 못한 상위권의 중고 신인들과 원 그룹들까지도 재도약의 계기가 주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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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아이돌 심폐소생술'의 효능을 경험한 결과물이 바로 <더 유닛>과 <믹스나인>이다. 타이틀부터 '리부트'와 '갱생', '재기'를 언급하는 <더 유닛>은 과거 데뷔를 경험했거나 현재 활동 중인 아이돌 멤버들까지 모두를 연습생의 단계로 되돌려 자본과 미디어의 힘을 통해 그들이 잡지 못했던 거대한 성공을 약속한다. <믹스나인>의 뒤에는 이름만으로 거대한 YG 엔터테인먼트와 <쇼미더머니>와 <프로듀스 101>의 한동철, 멜론과 네이버의 제작 지원이 있다.

 

앞서 언급했던 보이 그룹들 외에도 24K, 하이포, 마이틴, 로미오의 멤버들 다수가 이 두 프로그램에 참여하였으며 걸 그룹 역시 달샤벳, 스텔라 등 중견 팀들부터 드림캐쳐, 엘리스 등 데뷔한 지 채 몇 개월도 되지 않는 신인들까지 경쟁에 뛰어들었다. 인지도 부족한 중소 기획사와 과거의 노선 실패가 현재까지 발목을 잡는 구세대 아이돌들에게 이들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제 하늘에서 내려주는 동아줄 같은 존재가 됐다.

 

물론 열매가 달콤하다고 그 과정이 모두 옳진 않다. <프로듀스 101> 초창기부터 불거져왔던 부당 계약과 연습생들의 인권, 치열한 제로섬 무한 경쟁은 음지에 가려졌던 아이돌 육성과 제작의 현실을 상업화하며 그 모든 것을 일상적인 소비재로 만들었다. 그 문제조차 거대한 성공이 있으니 묻혀가지만 후속 프로그램들의 경우도 개선의 여지가 없거나 더욱 악화된 결과를 보여준다. 로리타적 판타지의 부정적 사례가 프로그램을 잠식한 <아이돌 학교>나 기획의 실패로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끝난 <소년 24> 같은 사례도 있었다. 보다 강한 권력을 갖게 된 <더 유닛>과 <믹스나인>의 경우 내부 심사 논란과 동시에 출연을 희망하지 않는 회사나 그룹에 방송 불이익의 압력을 행사했다는 갑질 논란이 국정감사에서 거론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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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제일 비극적인 건 선택의 여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이다. <더 유닛>의 양지원처럼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아름처럼 세간의 시선을 피해 정신과 치료를 받으면서도 가수의 꿈을 놓지 못하는 20대 중후반의 이들에겐 이런 오디션 프로그램이 거의 유일한 희망이다. 데뷔조 버스와 연습생 버스를 나눠 소속사를 방문하는 <믹스나인>의 투어에서 중소 기획사의 대표들과 연습생들에게선 일견 사운(社運)을 거는 엄숙함까지 보인다면 과장일까. 인지도를 위해, 인기를 위해, 꿈을 위해 대규모의 시스템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연습생들은 그곳에서 몇 년간 피나게 갈고 닦은 모든 것을 던진다. 방송은 그들을 길어야 몇 분 정도 잡아주고, 대중은 각자 선호에 따라 멤버들을 선택하면 된다. 거대한 자본 논리, 시장 논리가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다.

 

아이돌 시장과 가요계는 <프로듀스 101>을 기점으로 돌아갈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미디어가 잉태한 아이돌은 워너원의 사례에서 보았듯 타 기획 아이돌과 출발선 자체가 다르다. 특출한 기획, 개성 있는 콘셉트로 역전을 꿈꾸던 시대는 요원해지지만 방탄소년단처럼 특수한 경우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보장된 방식이기에 당장 급한 중소 기획사들과 연습생들은 리얼리티 쇼 참가 티켓을 끊는다. 더 많은 자본과 더 많은 권력이 이들을 유혹하고, 대중은 이들의 비참한 삶을 구해내리라는 신념으로 아낌없이 또 다른 성공신화를 만들어낸다. 이 '거대 아이돌 오디션의 시대'의 결말은 어디가 될 것인가. <더 유닛>과 <믹스나인>은 지난주에야 첫 화를 방영했을 뿐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페미니즘과 피부색을 드러낸 마녀, 비욘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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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그래미는 비욘세에게 또 하나의 레몬을 내밀었다. 9개 후보 중에 주요 부문을 뺀 ‘베스트 어반 컨템퍼러리 앨범’과 ‘베스트 뮤직비디오’상은 마치 노골적으로 선사한 모멸처럼 보인다. 그래미가 외면했어도 ‘누가 세상을 이끄는가? (Who Run The World? (이는 비욘세의 노래 가사기도 하다))’ 라는 질문의 답은 세계를 호령하고 있는 팝의 아이콘 ‘비욘세’다. 지난 20년 동안 그가 보여준 음악의 진보성과 확고한 신념, 스케일이 다른 퍼포먼스는 그를 살아있는 전설, 팝의 역사로 추앙하게 만든다.

 

중세부터 마녀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었다. 힘있는 다수의 기준과 다른 신념을 내비치고, 약한 소수의 편에 서게 되면 반대편에서 돌이 날아들기 시작한다. 비욘세도 이를 피할 수는 없었다. ‘섹시함’과 ‘건강함’을 발산하던 디바는 어느새 ‘페미니즘’과 ‘피부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가 기존의 유통 체계와 발매 방식을 거부하자 시스템과 언론이 발톱을 세운다. 보수적인 메커니즘을 거부하고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자 다른 이름을 갖다붙여 낙인을 찍는다. 시대가 아무리 변했어도 이땅에선 여전히 마녀가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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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perpower


데스티니스 차일드(Destiny’s Child)는 흑인 음악의 미래를 제시하는 여성그룹으로 데뷔했다. TLC와의 차별점도 작곡과 프로듀싱 능력을 보여주며 아티스트로서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 선두에는 비욘세가 있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음반기획자 겸 매니저였던 아버지에 의해 엄격한 가수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아왔다. 그의 가창력은 과격한 댄스에도 흔들리지 않게 단련되었다. 음역과 음색도 단단하고 표현력도 풍부하다. 「Listen」이나 「47);>XO」에서 내지르는 비욘세 보컬은 고음보다 더 짜릿하다. 음악을 컨셉, 댄스, 의상, 영상 등 비주얼로 구현해내는 능력은 가히 최고다. 육감적인 몸매와 화려한 외모는 단번에 이목을 집중시키면서도 흐트러짐이 없다. 탄탄하고 역동적인 건강미는 누구도 함부로 넘지 못하는 카리스마를 만든다.

 

음악으로도 새로운 시도와 발전을 거듭해왔다. 어떤 장르에 귀속되는 일 없이, 그렇다고 어려운 장벽 없이 대중을 매혹시키는 팝 그 자체이다. 그 스스로도 “내 음악은 알앤비도 아니고 전형적인 팝도 아니며 록도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섞은 모든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해왔다. 최근에 발매한 <Lemonade>의 경우 백인의 중심의 컨트리부터, 록, 힙합, 레게까지 그야말로 전 방위의 장르를 씹어먹는 위엄을 보여준다. 이런 진화가 그의 새앨범을 기대하고 열광하게 만드는 동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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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몸이 하나의 거대한 기업이다 보니 자기 중심의 주체적인 시장 접근을 모색하게 시작했다. 남편인 제이지(Jay Z)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 타이달(Tidal)을 열면서 앨범을 이곳에 독점 제공했다. 이런 비욘세의 판매 전략은 음악씬의 관행에 변화를 부추겼다. ‘그래미의 결과는 심사위원단의 보복’이라는 말도 이 때문에 나온 것이다. 그는 음반 제작사보다는 가수에게 더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하는데, 그래미의 심사위원단은 대부분 음반업계의 종사자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비욘세가 마케팅이나 매체의 입김이 닿지 않는 시스템 밖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별다른 홍보 없이 SNS로만 새앨범 소식을 올려도 하루 만에 40만 명이 다운을 받고, 「Formation」 에 언급된 레스토랑은 이미 인기가 폭발해버릴 정도다. 전주 40초만 듣고 넘겨버리는 시대에 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컨셉 앨범을 내놓는다. 백그라운드 뮤직이 아닌 제대로 집중해서 듣고 보지 않으면 그 진가를 알아채기가 힘들다. 이는 음악에 대한 강한 자신감이자, 시대를 역행하는 선전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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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n the World (Girls)


그는 데스티니스 차일드때부터 여성에 대한 노래를 불러왔다. 「Independent woman Part. 1」에서는 외모의 해방을 주장했고, 「Single ladies」에서 여성의 당당함, 「Run the world (girls)」 는 우먼파워를 표방한다. 그는 스스로를 현대판 페미니스트(Modern-Day Feminist)라고 칭하며,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차임 포 체인지 (Chime For Change)’를 구찌와 공동으로 설립했다. 슈가 마마(Suga Mama)라는 여성으로만 구성된 투어 백밴드를 만들 정도로 여성에 대한 관심과 행동이 두드러진다.

 

재밌는 점은 그녀가 독보적인 ‘섹스 심볼’이라는 것이다. 성행위가 연상되는 몸짓과 몸매를 다 드러낸 패션은 "예쁜 건 상처를 주지. 그 고통을 없앨 수 있는 의사나 약은 없어. 그 고통은 마음속에 있어. 수술이 필요한 건 바로 영혼이야" (「Pretty hurts」 중에서)라는 가사와 어울리지 않아보인다. 육체의 미를 내세운 퍼포먼스와 기존의 페미니즘 사상은 물과 기름처럼 대비된다. 하지만 이는 페미니즘에 대한 너무나 이분법적인 기조기도 하다. 긴 머리에서 해방되는 것이 반드시 삭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 아니면 이것이라는 구도를 깨는 것. 이것이 비욘세가 페미니즘 앞에 ‘모던’을 붙이는 이유다. 「Partition」에서도 “남자들은 페미니스트들이 섹스를 싫어한다고 생각해. 하지만 그것은 여자들이 좋아하는 아주 흥분되고 본능적인 행위야”라며 편협한 생각들을 따끔하게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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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변화는 블루를 낳으면서 더욱 가속화된다. 「Blue (Feat. Blue Ivy) 」에서 그는 “가끔은 이 벽들이 내 위로 무너질 것 같지만 너의 눈을 들여다보면 내가 살아있다는 게 느껴져”라며 딸에게 속삭인다. 노래의 영상은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흑인의 소박한 일상들인데, 평온한 비욘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는 자식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마주한다. 사실 미국 대중에게 비욘세는 흑인으로 인지되지 않았다. 백인과 비슷한 외모는 한 때 흑인 청소년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부정하게 만든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흑인 여성에 대한 관심은 자신을 들여다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자신과 같은 뿌리를 가진 여성들에게도 눈길을 돌린다. 「Don’t hurt yourself」에서 인용된 “미국에서 가장 방치되어 있는 존재는 바로 흑인 여성들이다.” 라는 말콤 엑스의 연설은 자각에서 튀어나온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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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unk In Love


“넌 우리 아버지를 떠올리게끔 하는 마법을 부렸지.” (「Pray you catch me」의 내레이션 중에서)

아버지인 매튜 노울스(Matthew Knowles)는 비욘세에게 지대한 영향과 끔찍한 상처를 남겼다. 그녀를 교육하고 후원하며 스타로 만들었지만 잦은 외도로 가족에게 수난을 주었다. 잔인하게도 그의 남편 제이지도 비슷한 스캔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Lemonade>는 그런 고통을 승화시키는 경로를 노래한다. 직감, 부정, 분노, 무관심, 허무, 책임, 개심, 용서, 부활, 희망, 구원의 단계적 변화는 비욘세의 처절한 성찰이 서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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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사랑받는 세계문학전집에는 『여자의 일생』이라는 소설이 있다. 남성의 배신을 인내하고 그 속에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자의 이야기. 사실 수십 년 전만해도 이는 현모양처의 당연한 숙명이었다. 단장의 고통이지만 이를 떳떳하게 드러낼 수도 없었다. 그의 2008년작 「If I were a boy」에서 이런 남성 중심의 가치관은 그대로 쓰여있다. "내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할거야. 그리고 나만의 원칙을 세울 거고. 왜냐하면 그녀가 나에게만 충실할 것을 아니까. 집에서 내가 오기를 기다리면서” 하지만 그저 참고 견디기에는 사랑의 배신은 영혼을 매몰시킨다. 「Hold up」에서는 “너를 사랑하는 여자에게 어떻게 그렇게 못되게 굴수 있니? (중략) 질투하는 거와 미친 거 중에 뭐가 더 창피하니?”라고 읊조린다. 그리고 뮤직비디오에서는 야구 배트를 들고 거리를 쑥대밭을 만드는 모습이 그려진다. 사랑은 천하의 비욘세도 미치게 만든다.

 

"만약 삶이 당신에게 레몬을 준다면, 그걸 레모네이드로 만들어내라."


그는 2006년 「Irreplaceable」에서부터 나쁜 남자에게 당당히 맞서라고 이야기 해왔다. 「Don`t hurt yourself」와 「6 Inch」를 통해 “나를 놓치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하지만 알다시피 비욘세는 제이지를 떠나지 않았고 쌍둥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음악을 통해서도 용서와 화해를 선택한다. 역시 인간의 삶과 사랑은 게임처럼 단순하지가 않다. 다만 확실한 건 우리가 시들 때까지 레몬은 계속 만들어진다는 것. 아픈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알 수 있다. 눈물과 땀으로 만든 레몬에이드는 레몬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이와 부딪힐 용기를 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새 시대의 팝 아이콘, 레이디 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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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22일,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넷플릭스'를 통해 레이디 가가의 다큐멘터리 영화가 공개됐다. <레이디 가가 : 155cm의 도발>이란 제목의 작품은 공개 즉시 음악 팬들의 관심을 받았다. 영화에는 앨범 <Joanne>과 슈퍼볼 하프타임 쇼 제작기, 엉덩이 부상과 섬유근육통으로 힘들어하는 모습 등이 가감 없이 담겼다. 팝 스타 레이디 가가와 인간 스테파니 조앤 저마노타를 동시에 조명한 작품 덕분에 <Joanne>은 발매 10개월이 지나 다시 한번 아이튠즈 차트 상위 10위에 들었다.

 

비틀스부터 마돈나, 비욘세 등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가수로서의 모습과 수더분한 일상을 함께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는 이미 수많은 선례를 가진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더욱 주목을 받은 것은 공개 방식 때문이다. 다큐멘터리 필름을 극장 개봉, 유료 케이블 채널 방영이 아닌 인터넷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 동시 공개한 스타는 그가 처음이다. 모바일 디바이스 시대에 발맞춰 최근 폭발적 성장을 기록 중인 넷플릭스와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제작, 배급까지 끌어낸 전략이 빛을 발했다.

 

돌아보면 그는 항상 스마트했다. 일렉트로닉 댄스가 주류 팝계에 등장하던 2008년, 복고적 신스 사운드를 활용한 댄스 팝으로 시장을 선점했고, 케샤와 케이티 페리 등에 한발 앞서 기상천외한 패션으로 개성파 스타의 선봉장이 됐다. 위기 대처 능력도 수준급이었다. 가가 표 댄스와 옷차림이 지루해질 즈음 거장 토니 베넷과 재즈 앨범을 취입해 보컬리스트로서 입지를 다지는가 하면, 댄스 가수의 색깔이 흐려지자 록과 컨트리를 도입한 음반으로 변신을 노렸다. 밀레니엄을 통틀어 그만큼 뚜렷한 캐릭터를 가진 가수는 손에 꼽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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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간해선 주목받기 어려운 팝 시장에서 레이디 가가는 등장부터 강렬했다. 전설적 밴드 퀸의 히트곡 'Radio ga ga'에서 착안한 예명부터 시선을 끌었다. 그레이스 존스(Grace Jones)를 연상케 하는 의상, 데이비드 보위의 <Aladdin Sane>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얼굴의 번개 문양, 카일리 미노그와 유사한 포즈 등 시각적 충격도 남달랐다. 비록 레퍼런스 논란에서는 자유롭지 못했지만, 앞선 아이콘들의 이미지를 과감히 재활용하는 패기에서 신인의 설익음은 찾기 어려웠다. 금발 뱅 헤어, 리본 모양 머리, 커다란 선글라스 등은 초기의 그를 빠르게 알리는 데 일조했다.

 

이렇듯 레이디 가가에게 패션은 떼어내기 어려운 주요 키워드가 됐다. 생고기로 만든 드레스, 테이프로 중요 부위만 가린 의상 등 그를 대표하는 아이코닉한 룩이 대거 탄생했고, 도나텔라 베르사체, 알렉산더 맥퀸 등 여러 디자이너의 뮤즈로 자리 잡았다. 옷 잘 입는 음악인, 맵시꾼은 많았지만, 음악만큼이나 패션, 특히 하이패션 분야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름을 각인시킨 이는 실로 오랜만이었다. 그는 언제나 거침없이 격식을 파괴했으며, 화려하고 비범했다. 갓 등장한 신인 시절부터 감히 데이비드 보위, 마돈나의 후예로 거론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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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의상만으로 현재의 위상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진정한 레이디 가가의 존재 가치는 음악에 있다. 레트로 신스 팝을 끄집어낸 데뷔에서 고딕 팝과 메탈, 파워 팝까지 폭넓게 소화한 소포모어, 다채로운 일렉트로니카의 변주를 시도한 '아트 팝'과 정통 재즈, 컨트리와 로큰롤까지. 다섯 장의 정규 앨범을 내는 동안 매번 다른 스타일을 오가면서도 결코 어설프게 흉내만 낸 적은 없다. 레드원(RedOne)과 디제이 스네이크(DJ Snake), 릭 루빈(Rick Rubin)과 마크 론슨 등 늘 당대 최고의 프로듀서와 완성도 높은 사운드를 디자인해 앨범을 채웠다. 그 덕에 'Poker face'와 'You and I', 'Perfect illusion' 등 대표곡 면면의 스펙트럼은 무엇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울 정도다.

 

팝송의 미덕은 무엇보다도 잘 들리는 선율에 기인한다. 가수 이전에 작곡가였던 레이디 가가는 이 지점에서도 우위를 점한다. 뛰어난 피아노 실력을 바탕으로 유려한 코드 진행을 펼치고 강한 인상을 남기는 코러스를 집어넣는다. 'Just dance', 'Bad romance', 'Telephone', 'Born this way', 'The edge of glory' 등 노래마다 후렴의 세기가 보통이 아니다. 올 초 그에게 오랜만에 톱 5 히트의 기쁨을 안긴 'Million reasons'는 어떤가.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없이 흘러가면서도 힘이 들어가는 부분이 명확하다. 근래의 팝 발라드 중 이보다 근사한 훅을 가진 노래는 많지 않다.

 

레이디 가가의 또 다른 힘은 보컬 퍼포먼스로부터 발휘된다. 날씬한 댄스 팝과 포근한 재즈에서 톡 쏘는 목소리로 컨트리 록까지 커버하는 다재다능한 가창은 단연 발군이다. 낭랑하게 비트 위를 넘실대며 곡을 전개하다, 하이라이트에서 소리를 짜내듯 목을 긁는 창법으로 감정을 터트리는 방식이 그의 시그니처. 즉, 레이디 가가는 옥구슬 굴러가는 산뜻함과 신경질적이면서 육중한 타격감을 동시에 구현할 수 있는 독특한 가수다. 그의 목소리는 장르의 제한이 없을 뿐 아니라, 한 곡 안에서도 여러 가수가 부르는 듯한 풍부한 표현까지 가능케 하는 특급 무기다.

 

탁월한 보컬리스트는 크로스오버에서도 존재감을 뽐낸다. 2015년 제87회 아카데미상에서의 <The Sound of Music> 헌정 공연과 이듬해 같은 시상식에서 부른 'Til it happens to you'가 대표적이다. 그는 드라마틱한 성량, 섬세한 테크닉으로 곡의 감정선을 훌륭하게 해석하며 시청자에게 감동을 안겼다. 올해 제59회 그래미상에서 메탈리카와 함께한 'Moth into flame'은 일명 '메탈 가가'라는 별명을 탄생시키며 또 하나의 시금석이 됐다. 휘트니 휴스턴과 엘튼 존의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그는 디바와 로커를 오가며 자신만의 하이브리드 보컬을 구사한다. 전통적 기교에서 나오는 감동과 송곳처럼 뾰족한 카리스마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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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선택한 방법은 그들이 섹시하거나 상큼한 걸 원하면 항상 그걸 기괴하게 비틀어서 적용하는 거였죠. 그럼 주도권이 여전히 내게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예를 들어서 <VMA>에서 섹시한 모습으로 파파라치에 대해 노래하라면 온몸에 피를 철철 흘리며 유명세 탓에 마릴린 먼로가 어떻게 됐나 상기시킬 거예요.”

레이디 가가는 자신의 말대로 한 번도 활동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았다. 페르소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다가도 주저 없이 바꿨으며, 때로는 가장 솔직한 본연의 모습까지 재료로 사용했다. “나에겐 뿔이 난다.”며 볼과 어깨 등지에 뿔을 달던 <Born This Way>와 어린 나이에 사망한 고모를 추모하며 본명을 걸고 나온 <Joanne>의 자아는 정반대에 위치한다. 내내 괴상한 차림새로 다니다가 “다들 화려한 제 모습을 거의 10년쯤 봐 왔잖아요. 지겹더라고요. 몹시 지루하게 느껴졌죠.”라며 미련 없이 평범함을 택하는 모습은 그래서 더욱 파격적이었다.

 

엄밀히 말해 그가 새롭게 창조해낸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거의 없다고도 볼 수 있다. 그의 지난 궤적에는 데이비드 보위와 엘튼 존, 그레이스 존스, 신디 로퍼와 마돈나, 카일리 미노그,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등의 흔적이 산재한다. 포스트 모더니즘과 현대 미술, 오트 쿠튀르의 요소들도 상당수 눈에 띈다. 레이디 가가의 정체성은 이러한 과거 유산들을 정리하고 배합해 재창조한 데 있다. 그 때문에 영국의 비평가 사이먼 레이놀즈는 자신의 저서 『레트로 마니아』에서 레이디 가가를 '궁극적인 재조합 아티스트'이자 복고와 현대의 가치를 동시에 꾀한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팝 우상'으로 정의했다.

 

모든 면에서 아이콘의 칭호를 얻는 데 부족함이 없다. 눈과 귀를 사로잡는 역량, 자신을 포장하고 알리는 전법, 민첩한 스탠스 변경까지 빠짐없이 영리하다. 똑똑한 아티스트에게 사회적 영향력이 따르는 것 또한 당연하다. 이는 앞선 브리트니 스피어스도, 저스틴 팀버레이크도 이루지 못한 성과다. 한참 선배인 비욘세 정도가 그와 대적할만한 유일한 상대다. 2008년 '따라뚜룹'으로 시작된 155cm 단신의 도발은 채 10년도 되지 않아 음악과 사회 곳곳에 불을 지피며 계속되고 있다.

 

 


정민재(minjaej9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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